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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대문궤

명(明)나라에서 왜적을 소탕하기 위해 군량(軍糧)과 마초(馬草)의 마련을 재촉하며 조선국왕에게 보낸 자문(咨文)

3. 李提督攻破平壤催集粮草
  • 발신자
    흠차제독계료보정산동등처방해어왜군무중군도독부도독 이(李)
  • 발송일
    1593년 1월 9일(음)(만력 21년 1월 9일)
발신: 흠차제독계료보정산동등처방해어왜군무중군도독부도독 이(李)주 001
각주 001)
이여송(李如松, 1549~1598)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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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 승세를 타고 깊이 들어가 왜적을 초멸해야 하니, 급히 군량과 마초를 마련하시기 바랍니다.
 
살펴보건대, 대군이 평양(平壤)을 공격하여 격파하고 왜노를 사로잡고 참하였는데 추장의 간담이 떨어져 나가 몰래 야반도주하였으니 반드시 왕경(王京)의 적들과 합세하여 다시 진격할 계책을 도모할 것입니다. 응당 속히 때맞추어 진격하여 초멸해서 후환을 끊어 내야 할 것입니다. 다만, 평양으로부터 왕경 사이의 600여 리에 이르는 지방은 오랫동안 적에게 함몰되었던 탓에 군량과 마초가 마련되지 않았으므로 속히 처리해야 마땅할 것입니다. 평양과 안정(安定)주 002
각주 002)
‘안정(安定)’은 지명으로 본래 안정참(安定站)이었다. 조선 태조 5년(1396) 도평의사사에서 서북면의 행정 구역을 조정할 때 순녕(順寧, 혹은 順和)과 합쳐서 순안현(順安縣)을 두었다. 이후 평안도 관할의 13관(館)의 하나인 안정관(安定館)이 이곳에 설치되었으며 참도 계속해서 유지되었다. 안정관은 조선과 명의 사행로에 위치했으며, 선조 25년(1592) 12월부터 이듬해 1월에 이르기까지 조선에 도착한 명군이 주둔했으며, 이후에도 여러 주요 거점의 하나로 기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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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나누어 주둔하면서 병마를 휴식시키는 것 외에도, 이에 마땅히 자문을 조선국에 보내니 속히 군량과 마초를 운반하여 날을 새워 평양부터 왕경에 이르는 주변 지역으로 옮겨 두고 관병(官兵)의 쓰임에 대비해야 합니다. 풍족히 하여 결핍되지 않도록 힘쓰고, 청컨대 지체하지 마십시오. 자문이 잘 도착하기를 바랍니다.
이 자문을 조선국왕에게 보냅니다.
 
만력 21년 1월 9일.

  • 각주 001)
    이여송(李如松, 1549~1598)을 가리킨다. 바로가기
  • 각주 002)
    ‘안정(安定)’은 지명으로 본래 안정참(安定站)이었다. 조선 태조 5년(1396) 도평의사사에서 서북면의 행정 구역을 조정할 때 순녕(順寧, 혹은 順和)과 합쳐서 순안현(順安縣)을 두었다. 이후 평안도 관할의 13관(館)의 하나인 안정관(安定館)이 이곳에 설치되었으며 참도 계속해서 유지되었다. 안정관은 조선과 명의 사행로에 위치했으며, 선조 25년(1592) 12월부터 이듬해 1월에 이르기까지 조선에 도착한 명군이 주둔했으며, 이후에도 여러 주요 거점의 하나로 기능했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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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明)나라에서 왜적을 소탕하기 위해 군량(軍糧)과 마초(馬草)의 마련을 재촉하며 조선국왕에게 보낸 자문(咨文) 자료번호 : sdmg.k_0001_0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