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서(後敍)
서문은 다음과 같다. 내가 대당 현경 5년(660) 3월 12일 계축일에 병주 태원현 염평리에서 낮잠을 잤다. 옛 성인 공자께서 옷을 입고 관리가 집무하는 청사의 당상에 앉아 있는 꿈을 꾸었다. 나는 자리 앞에 엎드려서 그에게 물었다. “선생께서는 무엇 때문에 『춘추』를 지으셨습니까?” 내 형 월석이 옆에 있다가 말하였다. “선생께서는 기린이 잡힌 일에주 001 감응하여 지으셨을 따름이다.” 내가 대답하였다. “선생께서는 단지 기린이 잡힌 일에 감응하였다는 것을 명분으로 삼았을 뿐입니다. 그 깊은 뜻이 어찌 반드시 기린이 잡힌 일에 있었겠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그렇다. 당시에 정사와 도는 점차 쇠퇴하였고주 002 예와 음악은 쇠락하였다. 그러므로 당시의 일로 인하여 잘한 것을 칭찬하고 잘못한 것을 꾸짖어서 한 왕의 법을 보여주었으니, 어찌 오로지 기린[이 잡힌 일]에 있겠는가?” 내가 또 물었다. “『논어』에서 ‘기수에서 목욕하고 무우에서 바람쐬며 시를 읊고 돌아간다’고 하였는데, 감히 묻건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또한 각각 그 뜻을 말한 것이다.” 내가 또 물었다. “사람이 태어나서 일찍 죽고 장수함이 있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그대는 옛 성스러움과 지금의 어리석음을 장수한다고 말하는가? 일찍 죽는다고 말하는가?” 대답하였다.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죽으니, 누가 그 일찍 죽고 장수함을 알겠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그렇다. 대체로 죽지도 않고 살지도 않는 것이 저절로 사라져서 생사의 영역에 살고 있다고 한다면, [장수한] 팽조와 단명한 사람도 차이가 없는 것이다.” 내가 또 물었다. “선생님께서는 주나라 때 사람인데 어째서 여전히 존재하고 계십니까?” 선생님께서 크게 웃으며 말하였다. “그대가 도달할 바가 아니다.” 내가 또 물었다. “선생님께서는 성인이신데, 또한 살고 계시는 곳이 있습니까?” 곧 동쪽으로 난 창 아래를 가리키며 말하였다. “나는 여기에 거처한다.” 내가 동쪽으로 난 창 앞을 돌아보니, 평상 위에 검은 무늬 없는 비단과 붉은 색의 안감이 있어 붉은 요를 펴 놓은 것 같았다. 두 명의 시자가 있어 앞에 서 있었는데, 말이 끝나자 잠에서 깨었다. 걱정하며 일어나서 한숨 쉬며 탄식하고 말하였다. “옛날에 선생님께서는 큰 성인이셨는데도 오히려 ‘나는 쇠퇴하고 오래되었다. 다시 꿈에서 주공을 뵐 수 있겠는가?’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보잘 것 없는데 선생님께서 어찌 [나를] 아셨겠는가? [타고나신] 성현을 신령함으로 뵈었다.” 감응하여 서술했으니, 마침내 이 책을 저술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