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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찬성씨록

관야조신(菅野朝臣; 스가노아오미)

관야조신(菅野朝臣; 스가노아오미)
 백제국(百濟國) 사람 도모왕(都慕王)의 10세손 귀수왕(貴首王)으로부터 나왔다.
 
【주석】
1. 관야조신(菅野朝臣)
관야(菅野)의 씨명은 대화국(大和國) 우타군(宇陀郡)의 관야촌(菅野村)이라는 지명과 관계가 있을 것이다. 관야 이전의 성은 왕(王), 진(津)이다. 이 씨족은 6세기 전반에 왜국에 온 왕진이(王辰爾)의 일족으로 『일본서기』 민달기(敏達紀) 3년(574) 10월조에 선사(船史) 왕진이의 동생인 우(牛)에게 진사(津史)의 씨성을 주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진사의 씨성에 대해서 『속일본기』 천평보자(天平寶字) 2년(758) 8월 병인조에는 외종5위하 진사추주(津史秋主) 등 43인이, 선(船), 갈정(葛井), 진(津) 3씨는 같은 조상에서 나온 일족인데 선씨와 갈정씨는 이미 연(連) 성을 받았지만, 자신들은 아직 사(史) 성에 머물러 있으니 연(連) 성으로 개성해 줄 것을 청원하여 승인받았다고 한다. 진련씨(津連氏)는 이후 관야조신(菅野朝臣)으로 개성한다. 『속일본기』 연력(延曆) 9년(790) 7월 신사조에 따르면, 진련진도(津連眞道)의 상표문에는 백제왕인정(百濟王仁貞) 등이 백제왕씨와 함께 자신들의 본계는 백제국 귀수왕으로부터 나왔으며 귀수왕이 손자인 진손왕(辰孫王)을 보냈는데, 이후 자신들의 가문은 문필의 업을 계승하고 교학의 직을 맡고 있어 천자의 은혜에 감사의 정을 술하고, 이어 조신(朝臣)으로 올려 줄 것을 상주하자, 칙을 내려 관야조신(菅野朝臣)의 성을 하사했다고 한다.
관야조신의 씨성을 받은 관야조신진도(菅野朝臣眞道)는 환무천황(桓武天皇)의 신임을 받아 동궁학사를 비롯하여 좌대변(左大弁), 좌병위독(左兵衛督), 좌위사독(左衛士督)등 문무의 요직을 역임하였고, 조궁량(造宮亮)이 되어 평안경의 천도 사업에도 깊게 관여하였다. 그는 승진을 거듭하여 연력 16년(787)에는 정4위하에 오르고, 동 13년(805)에는 참의가 되어 공경의 지위에 올랐다. 대동(大同) 4년(809)에는 종3위 동해도관찰사에 서임되었다. 특히 관야조신진도는 등원계승(藤原繼繩), 추조안인(秋篠安人) 등과 함께 『속일본기』 편찬에도 참여하여 연력 16년(797)에 전40권을 완성하였다. 『공경보임(公卿補任)』 연력 24년(805) 관야진도(菅野津道)조에 “그 조상은 백제인이고 처음에 진련(津連)의 성을 받았다”라고 하고, 동 홍인(弘仁) 3년(812)의 관야진도조에도 “그 조상은 백제인이다”라고 하여 조상의 출자를 백제로 기록하고 있다.
2. 도모왕(都慕王)
도모왕에 대해서는 일본 측 기록에만 보이는 용어로서 발음상의 유사성으로 인하여 고구려의 시조 추모(鄒牟), 주몽(朱蒙), 혹은 부여 시조인 동명(東明)으로 보기도 한다. 또 관야조신씨(菅野朝臣氏)가 자신의 시조를 백제왕씨에 부회하여 고구려 시조인 추모를 모델로 독자의 시조 신화로 만들었을 가능성이 있다. 이에 대해서는 좌경 제번(하) 「화조신(和朝臣)」 조(779) 도모왕 참조.
3. 귀수왕(貴首王)
백제 근초고왕의 왕자인 백제 14대왕 근구수왕(近仇首王)으로, 재위 기간은 375~384년까지이다.
『일본서기』 신공기(神功紀), 흠명기(欽明紀) 등에는 귀수왕(貴首王)으로 표기하고 있으며, 부왕인 근초고왕(近肖古王, 速古王)과 함께 기록되어 있다. 『속일본기』 연력(延曆)9년(790) 7월조에는 귀수왕(貴須王), 우경 제번(하) 「광진련(廣津連)」 조(871)에는 근귀수왕(近貴首王)으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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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야조신(菅野朝臣; 스가노아오미) 자료번호 : ss.k_0002_0020_0040_00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