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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찬성씨록

양인(椋人; 구라히토)

양인(椋人; 구라히토)
 아조사주(阿祖使主; 아소노오미)의 아들 무세(武勢)의 후손이다.
 
【주석】
1. 양인(椋人)
양인의 씨명은 장인(藏人), 창인(倉人)이라고도 쓴다. 대화정권에서 재정을 담당하는 창(倉), 양(椋), 장(藏)과 관련된 직명에서 유래한다.
양인씨(椋人氏)의 일족으로는 등원궁(藤原宮) 출토 목간(奈良國立文化財硏究所, 1975, 『飛鳥藤原宮發掘調査出土木簡槪報』 2)에 양인족도(椋人足島)가 보이고, 평성경 출토 목간(奈良國立文化財硏究所, 1969, 『平城宮發掘調査出土木簡槪報』 6)에도 양인대전(椋人大田)이 명기되어 있다. 『정창원문서』 천평보자(天平寶字) 6년(762)부의 「작금당소해안(作金堂所解案)」(『大日本古文書』 16-315)에는 양인심만려(椋人深万呂)가 ‘작금당소(作金堂所)’에서 94일간 주공(鑄工)으로 작업한 상황을 기록하고 있다. 장인, 창인에 대해서는 섭진국(攝津國) 제번 「장인(藏人)」 조(964) 참조.
2. 아조사주(阿祖使主)
이 인명에 대해서는 기타의 사료에 보이지 않는다. 『일본서기』 응신기(應神紀) 20년 9월조에 “왜한직(倭漢直)의 조상 아지사주(阿知使主)와 그의 아들 도가사주(都加使主)가 그들이 이끄는 무리 17현을 데리고 내귀하였다”라고 한 아지사주(阿知使主)의 오기라고 생각된다.
3. 무세(武勢)
이 인명에 대해서는 기타의 사료에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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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인(椋人; 구라히토) 자료번호 : ss.k_0002_0020_0030_02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