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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찬성씨록

청해숙녜(淸海宿禰; 기요미노스쿠네)

청해숙녜(淸海宿禰; 기요미노스쿠네)
 당인(唐人) 종5위하 심유악(沈惟岳)으로부터 나왔다.
 
【주석】
1. 청해숙녜(淸海宿禰)
『속일본기』 보귀(寶龜) 11년(780) 12월조에, 당인(唐人) 종5위하 심유악(沈惟岳)에게 청해숙녜(淸海宿禰)의 씨성을 주었다고 한다. 청해숙녜의 옛 성은 심(沈)이다. 청해숙녜씨의 후손으로는 청해길측(淸海吉則, 延喜 21년 7월 4일 「左衛門府堪申」, 『政事要略』 81)이 보인다.
한편 화천국 신별 「청해기촌」 조(766)에는 심유악과 같은 시기에 온 심정욱(沈庭勗)의 후예씨족으로 청해기촌(淸海忌寸)이 있다. 또 『속일본기』 천평보자(天平寶字) 5년(761)3월조에 백제인 사알국족(斯﨟國足) 등 2인에게 청해조(淸海造)의 성을 주었다고 기록되어 있듯이 백제인 청해조씨도 보인다. 보귀 11년 5월조에는 좌경인(左京人) 종6위상 사알행마려(斯﨟行麻呂)에게 청해조의 성을 주었다고 하여 사알씨(斯﨟氏) 일족인 사알행마려라는 인명도 나온다. 『일본후기』 연력(延曆) 24년(805) 2월조에는 황별계(皇別系)인 청해진인(淸海眞人)도 나온다. 다양한 계통의 동일 씨명을 갖는 씨족이 나오고 있어 어느 시점에서 출자의 개변이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2. 심유악(沈惟岳)
『속일본기』 천평보자(天平寶字) 5년(761) 8월조에 의하면, 제13차 일본의 견당사 일행이 귀국할 때 당의 관인인 심유악이 수부의 감독관으로서 일본에 왔다. 이후 당으로 귀국하려고 했으나 기후 사정으로 대재부에 머물다 일본에 귀화한 것으로 보인다. 보귀(寶龜) 11년(780)에 정6위상에서 종5위하로 서임되고, 동년 12월에는 청해숙녜(淸海宿禰)의 씨성을 받아 좌경에 편호되었다. 연력(延曆) 8년(789) 3월에는 미작국(美作國) 국사 미작권연(美作權掾)에 보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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