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내용 바로가기하단 바로가기
상세검색
  • 디렉토리 검색
  • 작성·발신·수신일
    ~
신찬성씨록

나계사조(奈癸私造; 나키노키사이치베노미야츠코)

나계사조(奈癸私造; 나키노키사이치베노미야츠코)
 위와 같다.
 
【주석】
1. 나계사조(奈癸私造)
나계사(奈季私)라는 씨명은 나기사(奈氣私)·나귀사(奈貴私)·나귀사(那貴私)로도 표기하며, 씨명 중에서 나계(奈癸; 나키)는 율령제하의 산성국(山城國) 구세군(久世郡) 니가향(那紀鄕), 즉 현재의 경도부(京都府) 우치시(宇治市) 이세전정(伊勢田町) 주변의 지명과 관련이 있고, 사(私)는 사부(私部; 기사이베)의 반조씨족에서 비롯된 것으로 생각된다. 사부(私部)는 황후(皇后; 기사키)가 소유하는 부민이다.
나계사조라는 씨성을 가진 인물로는 나계사조천견매(奈癸私造川見賣, 天平 5년경 「山背國愛宕郡計帳」 1-518), 나기사조석도(奈氣私造石島, 天平 10년 「駿河國正稅帳」, 『대일본고문서』 2-108)가 있다. 천견매는 산배국(山背國) 애탕군(愛宕郡)에 속한 마을의 호주(戶主)인 진인광번동인(秦人廣幡東人)의 어머니로, 천평(天平) 4년(732) 9월 29일에 죽은 것으로 되어 있다. 석도는 육오국(陸奥國)의 화공(畫工)이었다.
사부(私部)에 대해서는 민달(敏達) 6년(577)에 일사부(日祀部)와 함께 설치하였다는 기사가 보인다(『日本書紀)』敏逹 6년 2월 갑진삭). 사부라는 명칭은 중국 한대(漢代)에 황후와 관련된 업무를 관장하는 관사를 사관(私官) 혹은 사부(私部)라고 한 데서 온 것으로 보는 설이 유력하다. 민달천황 이전에는 후비(后妃)의 사유민인 명대(名代)가 있었고, 그 거처의 이름을 따른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어 윤공(允恭)의 비인 인판대중희(忍坂大中姬)의 명대는 형부(刑部; 오사카베), 등원궁(藤原宮)에 거처한 의통랑희(衣通郞姬; 후지와라베)의 경우는 등원부(藤原部), 웅략(雄略)의 비인 초향반사희(草香幡梭姬)의 일하부(日下部; 구사카베)가 있다. 그러나 후비의 지위가 확립되면서 민달(敏達)·추고(推古) 시기에 사부로 제도화된 것으로 생각된다.
2. 동상(同上)
좌백유청(佐伯有淸)은 『신찬성씨록』 완본에는 ‘요속일명육세손이향아색웅명지후야(饒速日命六世孫伊香我色雄命之後也)’라고 되어 있었을 것으로 보았다.
오류접수

본 사이트 자료 중 잘못된 정보를 발견하였거나 사용 중 불편한 사항이 있을 경우 알려주세요. 처리 현황은 오류게시판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전화번호, 이메일 등 개인정보는 삭제하오니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나계사조(奈癸私造; 나키노키사이치베노미야츠코) 자료번호 : ss.k_0002_0010_0040_0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