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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찬성씨록

삼지부련(三枝部連; 사키쿠사베노무라지)

삼지부련(三枝部連; 사키쿠사베노무라지)
 액전부탕좌련(額田部湯坐連)과 같은 조상이다. 현종천황(顯宗天皇) 대에 여러 씨족의 사람들을 모아 연회를 열었는데, 그때 궁정에 세 줄기의 풀이 자랐다. 이를 따서 바치자 삼지부조(三枝部造)를 성(姓)으로 가지도록 하였다.
 
【주석】
1. 삼지부련(三枝部連)
삼지부련의 삼지부(三枝部; 사키쿠사베)는 복초부(福草部; 사키쿠사베)로도 표기된다. 복초부에 대해서는 『일본서기』 현종천황 3년 하4월 무진조에서 복초부를 설치하였다고 적고 있다. 이후 『일본서기』 천무천황 12년(683) 9월 정미조에서는 복초부조(福草部造; 사키쿠사베노미야츠코)에게 연(連; 무라지)을 사성하였다고 적고 있다. 그런데 삼지부련에 대해서는 『신찬성씨록』 이외에 보이지 않는다. 『신찬성씨록』 에 보이는 삼지부련씨는 현종천황이 설치한 삼지부(三枝部, 福草部로도 표기함)를 관할하던 삼지부조씨(三枝部造氏)의 후손일 것으로 추측된다.
2. 액전부탕좌련동조(額田部湯坐連同祖)
『신찬성씨록』 대화국 신별의 「삼지부련(三枝部連; 사키쿠사베노무라지)」 조에서는 “액전부탕좌련과 같은 조상이다. 천진언근명(天津彦根命)의 14세손 달기여명(達己呂命)의 후손이다.”라고 적고 있다. 따라서 본조에서도 완본에는 “액전부탕좌련(額田部湯坐連)과 같은 조상이다.” 다음에 “천진언근명(天津彦根命)의 14세손 달기여명(達己呂命)의 후손이다.”라는 내용이 있었을 것이다. 액전부탕좌련(額田部湯坐連)에 대해서는 좌경 신별(하) 「액전부탕좌련(額田部湯坐連)」 조(412) 참조.
3. 현종천황어세(顯宗天皇御世)
『신찬성씨록』 완본에서는 ‘현종’ 앞에 ‘홍계천황시(弘計天皇諡)’라는 글자가 있었고, ‘현종’ 다음에 ‘천황’이라는 글자는 없었을 것이다.
4. 삼지부조(三枝部造)
삼지부조에 대해 사료에서 보이지 않지만, 삼지부를 관할하던 씨족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삼지부에 대해서는 『일본서기』 현종 3년 하4월 무진조에서는 복초부(福草部; 사키쿠사베)를 설치하였다고 적고 있다. 복초부는 삼지부(三枝部; 사키쿠사베)로도 표기되므로, 5세기 말경에 삼지부가 설치되었음을 알 수 있다.
삼지부씨 일족은 사서에는 보이지 않지만 고문서에 보인다. 즉 양로 5년(721) 「하총국(下總國) 갈식군(葛餝郡) 대도향(大島鄕) 호적(戶籍)」(『대일본고문서』 1-225)에 삼지부고여리매(三枝部古與理賣)를 비롯하여 삼지부견매(三枝部犬賣, 동 1-231), 삼지부아니매(三枝部阿尼賣, 동 1-244), 삼지부의비등매(三枝部意比等賣, 동 1-244), 삼지부이양매(三枝部伊良賣, 동 1-249)가 보이고, 양로 5년 유재(類載) 「육오국호적(陸奧國戶籍)」(『대일본고문서』1-306)에 삼지부모지(三枝部毛知), 삼지부제인(三枝部諸忍)이 보이므로, 8세기 전반에 삼지부씨가 하총국과 육오국에 살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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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지부련(三枝部連; 사키쿠사베노무라지) 자료번호 : ss.k_0002_0010_0010_01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