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령에서 감계사와 청국 관원 진영(秦煐)방랑(方朗)이 서로 논의하였으나 타협점을 찾지 못함
□ [1887년] 5월 15일 회령에서 청국 관원 진영을 찾아가 만나다
○ 내가 말하기를, “장백산의 강물들을 지금 두루 조사하고 돌아와서 국경의 한계를 서로 논한 지도 30여 일이나 되었습니다. 귀하의 생각에 대도문강은 어떤 강물로 정하는 것이 좋겠습니까?”라고 하였다.
진영이 말하기를, “대도문강(大圖們江)은 상세히 알 수가 없습니다. 회본(繪本)주 426이 갖추어지기를 기다려서 다시 상의하여 결정하는 것이 마땅합니다”라고 하였다.
내가 말하기를, “『황조여도』로 살펴보면 대도문강을 증명하기가 어렵지 않습니다. 그런데 귀하의 뜻은 끝내 『 여도』로 근거를 삼지 않는 것입니까?”라고 하였다.
진영이 말하기를, “『황조여도』는 신뢰할 수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내가 말하기를, “연전(年前)에 토문(土門)을 변정할 때에 귀국처의 전후 조회(照會)와 필담(筆談) 속에 반드시 『황조여도』를 제일의 확거한 증거로 삼는다고 하였습니다. 금일에 이르러서 폐사(敝使)주 427가 『황조여도』를 증거로 삼고자 하면 귀국처는 매양 『여도』는 증거로 충분하지 않는다고 하니 이는 무슨 까닭입니까?”라고 하였다.
진영이 말하기를, “지난날[前日]은 귀국이 해란하(海蘭河)를 다투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여도』로 증거를 삼은 것이고 오늘은 일이 지난날과 같지 않기 때문에 증거로 삼을 수 없는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내가 말하기를, “이와 같이 말한다면 마땅히 다시 분변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이쯤에서 돌아가겠습니다”라고 하였다.
진영이 말하기를, “회본(繪本)이 완성되기를 기다린 후에 다시 상의하여 결정하는 것이 좋겠습니다”라고 하였다.
내가 말하기를, “주된 생각[主意]이 이미 합치되지 않았은즉 회본 또한 반드시 합치되지 않을 것입니다. 어찌하여 꼭 회본이 완성되기를 기다려야 합니까?”라고 하였다.
진영(秦瑛)이 말하기를, “회본이 만일 서로 부합하지 않는다면 서로 조회하고 돌아오는 것이 좋겠습니다”라고 하였다.
내가 말하기를, “그렇다면 조금 더 머물러야겠습니다”라고 하였다.
○ 내가 말하기를, “장백산의 강물들을 지금 두루 조사하고 돌아와서 국경의 한계를 서로 논한 지도 30여 일이나 되었습니다. 귀하의 생각에 대도문강은 어떤 강물로 정하는 것이 좋겠습니까?”라고 하였다.
진영이 말하기를, “대도문강(大圖們江)은 상세히 알 수가 없습니다. 회본(繪本)주 426이 갖추어지기를 기다려서 다시 상의하여 결정하는 것이 마땅합니다”라고 하였다.
내가 말하기를, “『황조여도』로 살펴보면 대도문강을 증명하기가 어렵지 않습니다. 그런데 귀하의 뜻은 끝내 『 여도』로 근거를 삼지 않는 것입니까?”라고 하였다.
진영이 말하기를, “『황조여도』는 신뢰할 수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내가 말하기를, “연전(年前)에 토문(土門)을 변정할 때에 귀국처의 전후 조회(照會)와 필담(筆談) 속에 반드시 『황조여도』를 제일의 확거한 증거로 삼는다고 하였습니다. 금일에 이르러서 폐사(敝使)주 427가 『황조여도』를 증거로 삼고자 하면 귀국처는 매양 『여도』는 증거로 충분하지 않는다고 하니 이는 무슨 까닭입니까?”라고 하였다.
진영이 말하기를, “지난날[前日]은 귀국이 해란하(海蘭河)를 다투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여도』로 증거를 삼은 것이고 오늘은 일이 지난날과 같지 않기 때문에 증거로 삼을 수 없는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내가 말하기를, “이와 같이 말한다면 마땅히 다시 분변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이쯤에서 돌아가겠습니다”라고 하였다.
진영이 말하기를, “회본(繪本)이 완성되기를 기다린 후에 다시 상의하여 결정하는 것이 좋겠습니다”라고 하였다.
내가 말하기를, “주된 생각[主意]이 이미 합치되지 않았은즉 회본 또한 반드시 합치되지 않을 것입니다. 어찌하여 꼭 회본이 완성되기를 기다려야 합니까?”라고 하였다.
진영(秦瑛)이 말하기를, “회본이 만일 서로 부합하지 않는다면 서로 조회하고 돌아오는 것이 좋겠습니다”라고 하였다.
내가 말하기를, “그렇다면 조금 더 머물러야겠습니다”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