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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서기

백제의 성명왕이 고구려를 쳐서 한성을 차지하고 평양을 침

이 해에 백제 성명왕이 친히 백제의 군사[衆]와 두 나라[두 나라는 신라와 임나를 말한다.]의 병사를 거느리고 고구려를 쳐서 한성(漢城) 주 001
번역주 001)
웅략천황 20년조에 인용된 『百濟記』에는 尉禮로 나온다. 漢城은 현 서울지역으로 백제의 초기 도읍지가 있던 곳이다. 현재 백제의 초기 도읍지로 거론되고 있는 곳은 강동구 풍납토성, 송파구 몽촌토성 등이 있는데, 풍납토성이 유력시되고 있다. 그런데 본조의 한성에 대해서는 몽촌토성 또는 몽촌토성을 포함한 한강 이남지역 일대를 통괄하여 지칭하는 것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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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땅을 차지하였다. 또한 진군하여 평양(平壤) 주 002
번역주 002)
平壤은 오늘날의 평양이 아닌 서울 북한산 일대를 중심으로 한 南平壤을 가리킨다. 한편 최근 발굴조사된 아차산의 보루들이 바로 남평양의 외곽을 방어하던 시설로 이해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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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쳤다. 모두 6군(郡)주 003
번역주 003)
漢城과 平壤(남평양)을 중심으로 한 옛 백제의 영역이다. 『日本書紀』 흠명천황 13년(552) 시세조에 의하면 백제는 다시 이곳을 신라에 빼앗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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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땅은 고지를 회복한 것이다주 004
번역주 004)
백제의 한성 수복 관련기사는 『삼국사기』 백제본기에는 보이지 않고, 고구려본기와 신라본기에 간단하게 언급되어 있다. 이에 의하면 551년 백제의 한성 수복은 신라와 연합작전을 통해서 실현하였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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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번역주 001)
    웅략천황 20년조에 인용된 『百濟記』에는 尉禮로 나온다. 漢城은 현 서울지역으로 백제의 초기 도읍지가 있던 곳이다. 현재 백제의 초기 도읍지로 거론되고 있는 곳은 강동구 풍납토성, 송파구 몽촌토성 등이 있는데, 풍납토성이 유력시되고 있다. 그런데 본조의 한성에 대해서는 몽촌토성 또는 몽촌토성을 포함한 한강 이남지역 일대를 통괄하여 지칭하는 것으로 이해하기도 한다.바로가기
  • 번역주 002)
    平壤은 오늘날의 평양이 아닌 서울 북한산 일대를 중심으로 한 南平壤을 가리킨다. 한편 최근 발굴조사된 아차산의 보루들이 바로 남평양의 외곽을 방어하던 시설로 이해되기도 한다.바로가기
  • 번역주 003)
    漢城과 平壤(남평양)을 중심으로 한 옛 백제의 영역이다. 『日本書紀』 흠명천황 13년(552) 시세조에 의하면 백제는 다시 이곳을 신라에 빼앗긴다.바로가기
  • 번역주 004)
    백제의 한성 수복 관련기사는 『삼국사기』 백제본기에는 보이지 않고, 고구려본기와 신라본기에 간단하게 언급되어 있다. 이에 의하면 551년 백제의 한성 수복은 신라와 연합작전을 통해서 실현하였음을 알 수 있다.바로가기

색인어
이름
성명왕
지명
한성(漢城), 평양(平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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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성명왕이 고구려를 쳐서 한성을 차지하고 평양을 침 자료번호 : ns.k_0032_0130_0020_0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