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유년(乙酉年) 3월의 조회(照會) 등록
□ 을유년(乙酉年)주 107 3월 일 시작하는 조회(照會)주 108 등록
定界事[조선(朝鮮)과 청국(淸國) 사이의 국경(國境)을 결정하는 일]
『감계사등록(勘界使謄錄)』주 109
定界事[조선(朝鮮)과 청국(淸國) 사이의 국경(國境)을 결정하는 일]
『감계사등록(勘界使謄錄)』주 109
편자주 109)
조선과 청국간에 이루어진 양국 간의 국경선 조사에 파견한 堪界使 이중하(李重夏)가 감계의 과정에서 작성한 문서와 회담내용을 기록한 책이다. 감계회담은 1885년(고종 22) 1차 회담과 1887년 2차 회담의 두 차례에 걸쳐 거행되었다. 조선과 청국은 두 차례의 감계회담에서 백두산과 인근 지역의 지도를 작성하는 것으로 큰 성과 없이 회담을 마쳤다. 2차례에 거행된 감계회담이 별다른 합의 없이 끝나게 된 것은 양측의 주장이 상이하여 접점을 찾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당시 조선측은 백두산 정계비(白頭山定界碑)에 기재된 내용대로 송화강(松花江)으로 흘러가는 토문강(土門江)을 강역(疆域)으로 보았던 반면, 청국은 정계비에 나오는 토문강을 두만강과 동일한 강으로 보아서 양국간의 경계를 압록강과 두만강으로 획정(劃定)하려고 했다. 『감계사등록』은 1차와 2차의 감계회담 내용을 싣고 있어서 책의 명칭과 같이 등록의 역할을 하고 있다. 등록은 조선시대 각 관청에서 진행하려는 일의 전례나 과정을 기록하여 사안을 보고하는 문서의 자료 역할을 함과 동시에 다음 행사의 참고자료로 이용하기도 했다. 이 책의 번역본으로 삼은 것은 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이다.
- 편자주 107)
- 편자주 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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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자주 109)
조선과 청국간에 이루어진 양국 간의 국경선 조사에 파견한 堪界使 이중하(李重夏)가 감계의 과정에서 작성한 문서와 회담내용을 기록한 책이다. 감계회담은 1885년(고종 22) 1차 회담과 1887년 2차 회담의 두 차례에 걸쳐 거행되었다. 조선과 청국은 두 차례의 감계회담에서 백두산과 인근 지역의 지도를 작성하는 것으로 큰 성과 없이 회담을 마쳤다. 2차례에 거행된 감계회담이 별다른 합의 없이 끝나게 된 것은 양측의 주장이 상이하여 접점을 찾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당시 조선측은 백두산 정계비(白頭山定界碑)에 기재된 내용대로 송화강(松花江)으로 흘러가는 토문강(土門江)을 강역(疆域)으로 보았던 반면, 청국은 정계비에 나오는 토문강을 두만강과 동일한 강으로 보아서 양국간의 경계를 압록강과 두만강으로 획정(劃定)하려고 했다. 『감계사등록』은 1차와 2차의 감계회담 내용을 싣고 있어서 책의 명칭과 같이 등록의 역할을 하고 있다. 등록은 조선시대 각 관청에서 진행하려는 일의 전례나 과정을 기록하여 사안을 보고하는 문서의 자료 역할을 함과 동시에 다음 행사의 참고자료로 이용하기도 했다. 이 책의 번역본으로 삼은 것은 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