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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倭)의 풍속, 문화을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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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倭)
땅은 벼, 모시[麻紵]주 001
각주 001)
麻紵: 모시만을 뜻하는지, 삼베를 짜는 大麻도 포함하여 모시와 대마를 뜻하는지 분명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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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양잠에 적합하며 [왜인들은] 천을 짜는 법과 실 잣는 법을 알아서 좋은 비단[縑]주 002
각주 002)
縑: 일반적으로 아주 가는 비단실로 짠 좋은 비단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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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 베를 만들었으며,주 003
각주 003)
『三國志』에는 “種禾稲紵麻, 蠶桑·緝績, 出細紵·縑緜”으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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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주(白珠)주 004
각주 004)
“白珠”를 井上秀雄 등은 眞珠라고 번역하였으나, 조개로 만든 작은 玉 종류라고 해석하는 사람도 있다(井上秀雄 등, 1977: 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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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푸른 옥이 산출되고주 005
각주 005)
『三國志』에는 “出真珠·青玉, 其山有丹”으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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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는 붉은 흙[丹土]주 006
각주 006)
丹土: 붉은색 안료의 원료가 되는 광물을 뜻한다. 적철광을 원료로 한 鐵丹(bengala)과 유화수은을 지칭하는 辰砂(cinnabar)로 크게 나누어진다. 진사는 朱砂, 丹砂, 丹朱라고도 하며, 심홍색의 육방정계 광물로서 덩어리로 산출되는 경우가 많다. 수은 제조나 적색 안료를 만드는 대표적인 광물이다. 그런데 일본열도의 경우는 후자인 진사를 의미할 가능성이 크다. 이 지역에는 佐賀県 多良岳부터 嬉野町, 松浦市로 이어지는 九州 西部 水銀鑛床群, 大分市 ‘坂ノ市(사카노이치)’부터 姶良郡 溝辺町 丹生에 이르는 九州 鑛床群, 阿波 吉野川 주변 若杉山遺跡地 일대의 阿波 鑛床群, 그리고 伊勢부터 ‘紀ノ川(기노카와)’에 이르는 大和 鑛床群 등이 존재한다. 또한 丹生, 丹生川과 지명과 丹生神社와 같이 수은광 산출과 관련된 신사들이 여기에 분포하고 있다. 일본열도에서 진사는 시신에 바르거나 묘광 안에 뿌리거나, 묘실의 벽면이나 관에 칠하는 등, 장례의례와 관련하여 다양하게 사용되었다. 우리 나라의 고분에서도 辰砂 및 朱砂의 흔적이 확인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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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난다. 기후가 온난하여 겨울과 여름에 채소[菜茹]가 생산된다.주 007
각주 007)
『三國志』에는 “倭地溫暖, 冬夏食生菜”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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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소,주 008
각주 008)
일본열도에서도 이미 繩文時代부터 소뼈 등이 출토되고 있어서, 소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중국과 같이 농경에 널리 쓰인 것이 아니라, 제사의례용으로 적은 수만을 사육하고 있었다. 따라서 이 서술은 중국 사신들이 보지 못한 탓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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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호랑이, 표범, 양 그리고 까치주 009
각주 009)
李賢은 “까치[鵲]는 어떤 곳에서는 ‘닭[雞]으로 씌어져 있다.”고 注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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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없다.주 485
각주 485)
『三國志』에는 “其地無牛馬虎豹羊鵲”으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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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로는 창, 방패, 나무로 된 활, 대나무로 된 화살이 있고, 뼈로 화살촉[鏃]을 만들기도 한다.주 011
각주 011)
『三國志』에는 “兵用矛·楯·木弓, 木弓短下長上, 竹箭或鐵鏃或骨鏃”으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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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모두 얼굴과 몸에 문신(文身)을 하는데, 왼쪽과 오른쪽, 크고 작음에 따라서 존비(尊卑)의 차이를 구별한다.주 012
각주 012)
『三國志』에는 “諸國文身各異, 或左或右, 或大或小, 尊卑有差”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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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 남자의 옷은 모두 가로의 폭이 넓은 천을 묶어서 서로 이었다. 여인은 머리카락을 풀어헤치거나 말아서 뒤로 묶었는데, 옷은 홑이불과 같고주 013
각주 013)
單被: 원래 홑이불인데, 여기에서는 그들의 옷이 안감이 없는 하나의 천으로 만들어졌음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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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를 넣어서 입는다.주 014
각주 014)
『三國志』에는 “其衣横幅, 但結束相連, 略無縫. 婦人被髪屈紒, 作衣如單被, 穿其中央, 貫頭衣之.”라고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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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가루를 몸에 바르는데, 중국에서 분(粉)주 015
각주 015)
粉: 일반적으로 여자가 단장할 때 쓰는 가루분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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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쓰는 것과 같다.주 016
각주 016)
『三國志』에는 “以朱丹塗其身體, 如中國用粉也”로 되어 있다. 『三國志』에서는 주단을 몸에 바른다고 하였는데, 『後漢書』에서는 뿌린다고 하여 서로 다르게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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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라에는] 성책(城柵)주 017
각주 017)
城柵: ‘城’은 흙을 版築法으로 쌓아 견고하게 만든 것이고, ‘柵’은 나무로 빽빽하게 만든 울타리를 말한다. 그러나 이 시대에 일본열도에는 城이 없었다. 현재 발굴된 유적을 통해서도 木柵과 구덩이만 확인될 뿐이다. 부여나 진한의 경우도 성책은 토벽을 두른 것이 아니라 나무로 만든 柵인 것으로 추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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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 옥실(屋室)주 018
각주 018)
屋室: 집을 뜻하는 말이지만, 단순히 집이 있다는 것은 왜인 사회의 특성으로 적합하지 않다. 따라서 집이 있고 그 안이 개별적인 방으로 나누어져 있는 사실을 지적한 것이거나, 『論語』 「先進編」에 나오는 “昇堂矣, 未入於室也”의 용법처럼 ‘屋’은 평지에 건축된 가옥(수혈식 주거), ‘室’은 高床式 가옥을 나타내는 것으로도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일반인의 가옥은 수혈식 주거였던 데 대하여, 집회장소나 공적인 건물 등은 다층의 누각식 건물이 존재하였다(吉野ヶ里遺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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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있다.주 019
각주 019)
『三國志』에는 “有屋室, 父母兄弟臥息異處.”라고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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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와 형제는 거처하는 곳을 달리 하지만, 단 한 곳에 모일 때에는 남녀의 차별은 없다.주 486
각주 486)
『三國志』에는 “其會同坐起, 父子男女無別.”이라고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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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시고 먹을 때 맨손으로 하지만, [음식을 담는 것은] 대나무와 나무로 만든 그릇주 021
각주 021)
籩豆: ‘籩’은 대나무로 만든 그릇으로 굽이 높고 뚜껑이 있어 주로 과일을 담는 데 쓰며, ‘豆’는 나무로 만든 굽이 높은 접시로 고기를 담는 데 주로 쓴다고 한다. 굽이 높은 접시는 일상적으로 좌식생활을 하므로 음식을 먹기 편하도록 고안된 것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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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이용한다.주 022
각주 022)
『三國志』에는 “食飲用邊豆, 手食”이라고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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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속은 모두 맨발로 다니고, 양 무릎은 꿇고 허리를 낮추는 것[蹲踞]주 023
각주 023)
蹲踞: 漢字 語義는 ‘웅크리다’이지만, 井上秀雄(1977: 286)은 위와 같이 해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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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 공경을 나타낸다. [이] 사람들은 천성적으로 술을 즐긴다. 대부분이 장수(壽考)하여, 1백여 세가 된 자도 대단히 많다.주 024
각주 024)
『三國志』에서는 “其人壽考或百年或八九十年”이라고 하여 사람들의 수명이 8~90년에서 100세에 이른다고 하였으나, 야요이시대 인골을 통해서 확인된 왜인의 평균 수명은 4~50세에 불과하였다. 『魏略』에서는 “其俗不知正歲四節, 但計春耕秋收爲年紀”라고 하였으므로, 이 시대의 왜인들은 현재의 1년 동안 나이를 두 살 먹는 것으로 셈하였다고 해석하는 견해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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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라에는 여자가 많아서, 대인(大人)주 025
각주 025)
大人: 일반적으로 한 사회집단의 長老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나 문장의 내용에 따라서는 한 집단 세력의 族長, 部落長 나아가 部族長을 가리킬 수도 있다. 중국 고대 사서에 기재되어 있는 大人에 관한 보다 상세한 내용은 松田壽男의 논문(1986: 327~332)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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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모두 4~5명의 처를 두고 있고, 그 나머지 남자들도 [처를] 2명 혹은 3명 두고 있다. [그러나] 여인들은 간음(姦淫)을 하지 않고 투기(妬忌)도 하지 않는다.주 026
각주 026)
『三國志』에는 “其俗, 國大人皆四五婦, 下戸或二三婦, 婦人不淫不忌.”라고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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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풍속이 도둑질을 하지 않으며, 다투고 소송(訴訟)하는 일이 적다. 범법자는 그 처와 자식들을 몰수하고, [좌가] 무거운 자는 그 가문의 사람들이나 일족을 족멸(族滅)한다.주 027
각주 027)
『三國志』에는 “不盗竊, 少諍訟. 其犯法, 軽者没其妻子, 重者没其門戸.”이라고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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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죽으면 10여 일 동안 매장하지 않고, 그 집안사람[家人]들은 곡을 하며 울고, [죽은 사람에게] 술과 음식을 바치지 않으며,주 028
각주 028)
『三國志』에서는 “當時不食肉”라고 하여, 장례를 치르는 집안사람들이 고기를 먹지 않는다고 하였으나, 『後漢書』에서는 죽은 사람에게 음식을 바치지 않는 것으로 기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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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등류(等類)’주 029
각주 029)
喪主 및 그 가족들의 친구들이나 같은 연배의 사람들을 가리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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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노래하고 춤추면서 즐겁게 논다.주 488
각주 488)
『三國志』에는 “始死停喪十餘日, 當時不食肉, 喪主哭泣, 他人就歌舞飲酒.”라고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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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를 불로 지져서 점복(占卜)을 치는데, 그것으로써 길흉(吉凶)을 결정한다.주 031
각주 031)
『三國志』에서는 보다 상세하게 “其俗擧事行來, 有所云爲, 輒灼骨而卜, 以占吉凶. 先告所卜, 其辭如令龜法, 視火坼占兆.”라고 기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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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행[行]이 바다를 건너서 [중국으로] 올 때에는 한 사람에게 머리를 빗거나 목욕하지 못하도록 하고, 고기[肉]를 먹거나 여자와 가까이 하지 못하도록 하는데, [그를] ‘지최(持衰)’주 032
각주 032)
持衰: ‘衰’는 喪服을 말한다. 상복을 벗는 것을 ‘解衰’라고 하기 때문에, “持衰”는 아마 상복을 입는 것이나 喪事를 치루는 것을 가리키는 듯하다.(石原道博, 2005: 46~47). 『三國志』에는 이 기사가 “其行來渡海詣中國, 恆使一人, 不梳頭, 不去蟣蝨, 衣服垢汚, 不食肉, 不近婦人, 如喪人, 名之爲持衰”라고 기재되어 있어 조금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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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하였다. 만약 [여행] 도중에 좋은 일과 이로운 일이 있으면, 재물을 가지고 그에게 보답한다. 만약 질병이 생기거나 재해를 만나면, 지최(持衰)가 삼가하지 않았다고 여겨서 곧 함께 그를 죽였다.주 033
각주 033)
『三國志』에는 이 기사가 “若行者吉善, 共顧其生口財物, 若有疾病, 遭暴害, 便欲殺之, 謂其持衰不謹”라고 기재되어 있어 다소 차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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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1)
    麻紵: 모시만을 뜻하는지, 삼베를 짜는 大麻도 포함하여 모시와 대마를 뜻하는지 분명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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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2)
    縑: 일반적으로 아주 가는 비단실로 짠 좋은 비단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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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3)
    『三國志』에는 “種禾稲紵麻, 蠶桑·緝績, 出細紵·縑緜”으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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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4)
    “白珠”를 井上秀雄 등은 眞珠라고 번역하였으나, 조개로 만든 작은 玉 종류라고 해석하는 사람도 있다(井上秀雄 등, 1977: 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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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5)
    『三國志』에는 “出真珠·青玉, 其山有丹”으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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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6)
    丹土: 붉은색 안료의 원료가 되는 광물을 뜻한다. 적철광을 원료로 한 鐵丹(bengala)과 유화수은을 지칭하는 辰砂(cinnabar)로 크게 나누어진다. 진사는 朱砂, 丹砂, 丹朱라고도 하며, 심홍색의 육방정계 광물로서 덩어리로 산출되는 경우가 많다. 수은 제조나 적색 안료를 만드는 대표적인 광물이다. 그런데 일본열도의 경우는 후자인 진사를 의미할 가능성이 크다. 이 지역에는 佐賀県 多良岳부터 嬉野町, 松浦市로 이어지는 九州 西部 水銀鑛床群, 大分市 ‘坂ノ市(사카노이치)’부터 姶良郡 溝辺町 丹生에 이르는 九州 鑛床群, 阿波 吉野川 주변 若杉山遺跡地 일대의 阿波 鑛床群, 그리고 伊勢부터 ‘紀ノ川(기노카와)’에 이르는 大和 鑛床群 등이 존재한다. 또한 丹生, 丹生川과 지명과 丹生神社와 같이 수은광 산출과 관련된 신사들이 여기에 분포하고 있다. 일본열도에서 진사는 시신에 바르거나 묘광 안에 뿌리거나, 묘실의 벽면이나 관에 칠하는 등, 장례의례와 관련하여 다양하게 사용되었다. 우리 나라의 고분에서도 辰砂 및 朱砂의 흔적이 확인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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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7)
    『三國志』에는 “倭地溫暖, 冬夏食生菜”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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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8)
    일본열도에서도 이미 繩文時代부터 소뼈 등이 출토되고 있어서, 소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중국과 같이 농경에 널리 쓰인 것이 아니라, 제사의례용으로 적은 수만을 사육하고 있었다. 따라서 이 서술은 중국 사신들이 보지 못한 탓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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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9)
    李賢은 “까치[鵲]는 어떤 곳에서는 ‘닭[雞]으로 씌어져 있다.”고 注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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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485)
    『三國志』에는 “其地無牛馬虎豹羊鵲”으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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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11)
    『三國志』에는 “兵用矛·楯·木弓, 木弓短下長上, 竹箭或鐵鏃或骨鏃”으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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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12)
    『三國志』에는 “諸國文身各異, 或左或右, 或大或小, 尊卑有差”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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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13)
    單被: 원래 홑이불인데, 여기에서는 그들의 옷이 안감이 없는 하나의 천으로 만들어졌음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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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14)
    『三國志』에는 “其衣横幅, 但結束相連, 略無縫. 婦人被髪屈紒, 作衣如單被, 穿其中央, 貫頭衣之.”라고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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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15)
    粉: 일반적으로 여자가 단장할 때 쓰는 가루분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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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16)
    『三國志』에는 “以朱丹塗其身體, 如中國用粉也”로 되어 있다. 『三國志』에서는 주단을 몸에 바른다고 하였는데, 『後漢書』에서는 뿌린다고 하여 서로 다르게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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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17)
    城柵: ‘城’은 흙을 版築法으로 쌓아 견고하게 만든 것이고, ‘柵’은 나무로 빽빽하게 만든 울타리를 말한다. 그러나 이 시대에 일본열도에는 城이 없었다. 현재 발굴된 유적을 통해서도 木柵과 구덩이만 확인될 뿐이다. 부여나 진한의 경우도 성책은 토벽을 두른 것이 아니라 나무로 만든 柵인 것으로 추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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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18)
    屋室: 집을 뜻하는 말이지만, 단순히 집이 있다는 것은 왜인 사회의 특성으로 적합하지 않다. 따라서 집이 있고 그 안이 개별적인 방으로 나누어져 있는 사실을 지적한 것이거나, 『論語』 「先進編」에 나오는 “昇堂矣, 未入於室也”의 용법처럼 ‘屋’은 평지에 건축된 가옥(수혈식 주거), ‘室’은 高床式 가옥을 나타내는 것으로도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일반인의 가옥은 수혈식 주거였던 데 대하여, 집회장소나 공적인 건물 등은 다층의 누각식 건물이 존재하였다(吉野ヶ里遺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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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19)
    『三國志』에는 “有屋室, 父母兄弟臥息異處.”라고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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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486)
    『三國志』에는 “其會同坐起, 父子男女無別.”이라고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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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21)
    籩豆: ‘籩’은 대나무로 만든 그릇으로 굽이 높고 뚜껑이 있어 주로 과일을 담는 데 쓰며, ‘豆’는 나무로 만든 굽이 높은 접시로 고기를 담는 데 주로 쓴다고 한다. 굽이 높은 접시는 일상적으로 좌식생활을 하므로 음식을 먹기 편하도록 고안된 것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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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22)
    『三國志』에는 “食飲用邊豆, 手食”이라고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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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23)
    蹲踞: 漢字 語義는 ‘웅크리다’이지만, 井上秀雄(1977: 286)은 위와 같이 해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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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24)
    『三國志』에서는 “其人壽考或百年或八九十年”이라고 하여 사람들의 수명이 8~90년에서 100세에 이른다고 하였으나, 야요이시대 인골을 통해서 확인된 왜인의 평균 수명은 4~50세에 불과하였다. 『魏略』에서는 “其俗不知正歲四節, 但計春耕秋收爲年紀”라고 하였으므로, 이 시대의 왜인들은 현재의 1년 동안 나이를 두 살 먹는 것으로 셈하였다고 해석하는 견해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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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25)
    大人: 일반적으로 한 사회집단의 長老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나 문장의 내용에 따라서는 한 집단 세력의 族長, 部落長 나아가 部族長을 가리킬 수도 있다. 중국 고대 사서에 기재되어 있는 大人에 관한 보다 상세한 내용은 松田壽男의 논문(1986: 327~332)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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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26)
    『三國志』에는 “其俗, 國大人皆四五婦, 下戸或二三婦, 婦人不淫不忌.”라고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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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27)
    『三國志』에는 “不盗竊, 少諍訟. 其犯法, 軽者没其妻子, 重者没其門戸.”이라고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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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28)
    『三國志』에서는 “當時不食肉”라고 하여, 장례를 치르는 집안사람들이 고기를 먹지 않는다고 하였으나, 『後漢書』에서는 죽은 사람에게 음식을 바치지 않는 것으로 기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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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29)
    喪主 및 그 가족들의 친구들이나 같은 연배의 사람들을 가리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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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488)
    『三國志』에는 “始死停喪十餘日, 當時不食肉, 喪主哭泣, 他人就歌舞飲酒.”라고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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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31)
    『三國志』에서는 보다 상세하게 “其俗擧事行來, 有所云爲, 輒灼骨而卜, 以占吉凶. 先告所卜, 其辭如令龜法, 視火坼占兆.”라고 기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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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32)
    持衰: ‘衰’는 喪服을 말한다. 상복을 벗는 것을 ‘解衰’라고 하기 때문에, “持衰”는 아마 상복을 입는 것이나 喪事를 치루는 것을 가리키는 듯하다.(石原道博, 2005: 46~47). 『三國志』에는 이 기사가 “其行來渡海詣中國, 恆使一人, 不梳頭, 不去蟣蝨, 衣服垢汚, 不食肉, 不近婦人, 如喪人, 名之爲持衰”라고 기재되어 있어 조금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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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33)
    『三國志』에는 이 기사가 “若行者吉善, 共顧其生口財物, 若有疾病, 遭暴害, 便欲殺之, 謂其持衰不謹”라고 기재되어 있어 다소 차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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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倭)의 풍속, 문화을 설명 자료번호 : jo.k_0003_0115_0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