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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고대문화유산

마장리유적

  • 저필자
    황재훈(서울대학교)
  • 날짜
    1969
  • 시대
    신석기~철기
  • 위치
  • 원소장처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마장리
  • 시대
    상고사
  • 유형
    생활
입지
한국전쟁 때 미국 소령 맥코드가 참호를 파던 과정에서 유물이 출토되었고, 이때 맥 코드에 의해 긴급 조사되었다. 그 뒤 1969년 10월에 서울대학교 고고인류학과에서 다시 탐색구덩이를 넣어 유적의 범위를 확인한 바 있다.
유적개관
지표에서는 횡주어 골문이 시문된 빗살무늬토기편도 채집된다. 1.5m폭의 구덩이를 파서 드러난 것을 가지고 복원한 움집터 평면은 5x6.4m의 말각 장방형이다. 깊이는 노란 모래층의 두께인 38cm이다. 움집의 한쪽구석에는 지름 1.2m의 화덕자리가 있는데, 냇돌을 둥글게 돌려서 만들었다. 벽선의 형태나 기둥구멍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으나 같은 성격의 유적지인 춘천시 중도유적의 예를 보면 곧 바로 선벽과 기둥구멍이 바닥에 있어 이 움집도 기둥을 꽂아 지붕을 받쳤던 것을 짐작할 수 있다. 화덕자리 내부와 그 부근에서 토기조각들이 발견되었으며 그 위에서 길이 96cm, 지름 20cm 정도의 숯기둥이 나와 상당히 큰 재목으로 기둥을 세웠던 것을 알 수 있다. 움집터는 유구의 일부를 후기의 주거지가 파고들어가 서로 겹쳐 교란된 상태이다. 아래 움집터에서는 여러 점의 토기와 석기가 발굴되었으며, 이와 함께 제철찌꺼기와 철편이 나왔다.
출토유물
* 민무늬토기, 김해식토기, 토제시루, 밭벼
참고문헌
「가평군의 역사와 문화유적」, 강원대학교박물관, 1999.
해설
가평군은 경기도 동북부 북한강 중류의 산간지대에 위치한다. 군의 북쪽에 뻗어 있는 광주산맥의 주능선은 포천시과 가평군의 경계가 된다. 동쪽으로는 강원도 화천군과 춘천시, 서남쪽으로 경기도 포천시 및 양주시와 맞닿고 있다. 분지와 충적대지를 제외하고 면적의 80% 가량이 산지로 되어 있다. 북쪽의 광주산맥에는 해발 1,468m의 화악산을 비롯하여 1,000m 내외의 응봉, 촛대봉, 가덕산, 북배산, 계관산, 서쪽으로는 국망봉, 강씨봉, 현등산이 각각 강원도 및 포천시와의 경계를 이룬다.
가평군의 중앙에는 해발 1,267m의 현등산이 위치한다. 남쪽으로는 북한강이 동서로 흐르고 있다. 북한강과 그 지류인 가평천, 조종천변에는 작고 긴 분지형 평지들이 형성되어 있다. 북한강 남쪽 산지 지역은 동쪽에 장락산맥, 서쪽에 중미산, 동방산, 화야산 등이 있고 두 산지 사이에는 청평호 주변 지역을 중심으로 분지가 형성되어 있다. 마장리는 가평읍에서 가평천을 따라 북행하다가 약 7㎞ 정도 되는 지점으로 지방도와 가평천 사이에 위치한다. 주변은 비교적 낮은 구릉선 산지가 형성되어 있으며, 북쪽의 달전천과 동북쪽의 가평천이 각각 동류, 남류하며 북한강으로 흘러들면서 동쪽에는 비교적 넓은 충적대지가 형성되어 있다. 가평천 주변의 구릉과 충적평야에는 석장리 고인돌, 삼회리 유물산포지, 이곡리유적, 항사리유적, 대곡리유적, 조옥동 절터, 가평향교 등 신석기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많은 유적이 분포한다.
마장리유적은 한국전쟁 중인 1951년~1952년 미국인 장교 Howard A. Mac Cord가 군사 참호를 파던 중 이른바 야철 집자리를 비롯한 토기와 철기 등 여러 유물이 출토되면서 알려지게 되었다. 그는 마장리유적에 대한 조사 정황을 비롯한 고고학적 해석을 1958년 Asian PerspectiveⅡ지에 “The Able Site, Kapyang, Korea”라는 제목으로 발표하였고 출토된 유물들은 워싱턴 스미소니언 자연사박물관에 기증하였다. 이후 국립중앙박물관 한영희에 의해 자연사박물관 소장 마장리유적 유물에 대한 도면 및 사진 등 전반적인 내용이 1982년 간행된 〈중도 진전보고 Ⅲ〉에 부록으로 게재되었다. 마장리유적은 1969년 서울대학교 고고인류학과 김원용교수에 의해 탐색 구덩이조사가 이루어져 유적의 대략적인 범위가 파악된 바 있다.
마장리유적에서는 최소 5개의 집자리가 발견되었는데 평면은 장방형으로 규모는 대략 5~6m 내외이다. 내부에는 냇돌을 원형으로 돌려서 만든 화덕자리가 시설되어 있다. 송풍관과 제철 찌꺼지, 철편이 출토된 것으로 보아 집자리 내부에서는 사철(砂鐵)을 녹여서 선철(銑鐵)이 생산된 증거로 볼 수 있다. 또한 야철(冶鐵)의 흔적도 곳곳에서 발견되었다. 집자리의 크기로 미루어 보아 가내 수공업으로 철기를 생산하였고 철은 교역물자로서 이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유물은 빗살무늬토기를 비롯하여 손잡이 달린 토기, 경질민무늬토기, 시루, 회청색경질토기, 타날문토기, 낙랑토기, 원반형 토제품, 가락바퀴, 토제 송풍관, 소형 토제품 등의 토기류와 가락바퀴, 반달돌칼, 간돌도끼, 숫돌, 돌화살촉 등의 석기류, 제철 찌꺼지와 철편 등의 철기류가 출토되었다.
마장리유적은 정식으로 조사된 것은 아니지만 가평지역에서 처음 조사된 유적이라는 점에서 학사적 의미를 갖는다. 또한 한국에서 제철의 흔적이 처음 찾아진 철기시대 집자리 유적으로 줄곧 학계의 주목을 받아왔으며 여러 연구 논문의 주제와 근거로 사용되고 있다. 이와 같이 마장리유적은 중국에서 기원한 한계 제철과 회도문화(灰陶文化)의 영향을 살필 수 있으며 주변 이곡리유적, 덕현리유적, 중도유적, 신매리유적과 더불어 기원전 2세기 이래 변화해가는 한반도 중부지역 문화양상을 이해하는데 있어 중요한 자료이다. 추가적으로 Mac Cord가 미시간대학(The University of Michigan)에 의뢰하여 산출된 연대값(1700±250 BP)는 우리나라 고고 유적에서 최초로 실시된 방사성탄소연대 측정치라는 점에서도 학사적인 의미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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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장리유적 자료번호 : isea.d_0001_0030_0020_0080_0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