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녜(路宿禰; 미치노스쿠네)
노숙녜(路宿禰; 미치노스쿠네)
판상대숙녜(坂上大宿禰; 사카노우헤노오스쿠네)와 같은 조상이다.
【주석】
1. 노숙녜(路宿禰)
노(路)의 씨명에 대해서는 분명하지 않다. 천평승보(天平勝寶) 원년(749)의 「조동대사사해(造東大寺司解)」 에 보이는 노충마려(路虫麻呂)라는 인물은 ‘대왜국첨상군인(大倭國添上郡人)’(『大日本古文書』 25-115)이었기 때문에 노숙녜씨(路宿禰氏)의 원래 본관은 대화국 첨상군이고, 노(路)는 이 군(郡)의 지명일 가능성이 있다. 이에 대해서는 좌경 황별의 「노진인(路眞人)」 조(006) 참조.
『속일본기』 연력(延曆) 6년(787) 6월 신축조에 정6위상 평전기촌장마려(平田忌寸杖麻呂), 노기촌천마려(路忌寸泉麻呂) 등 4인이 기촌의 성을 고쳐 숙녜로 사성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노숙녜의 옛 성은 직(直), 기촌(忌寸)이다.
일족으로는 『일본서기』 천무(天武) 원년(672) 6월 갑신조에 노직익인(路直益人)이 있다. 그 밖에 무성(無姓)의 노씨(路氏)로는 천평 20년 7월 5일부 「노도포상장(路稻布上狀)(『大日本古文書』 10-304)에 노도포(路稻布), 천평승보(天平勝寶) 원년(750)의 「조동대사사해(造東大寺司解)」(동 25-115)에 노충마려(路虫麻呂) 등이 나온다.
노(路)의 씨명에 대해서는 분명하지 않다. 천평승보(天平勝寶) 원년(749)의 「조동대사사해(造東大寺司解)」 에 보이는 노충마려(路虫麻呂)라는 인물은 ‘대왜국첨상군인(大倭國添上郡人)’(『大日本古文書』 25-115)이었기 때문에 노숙녜씨(路宿禰氏)의 원래 본관은 대화국 첨상군이고, 노(路)는 이 군(郡)의 지명일 가능성이 있다. 이에 대해서는 좌경 황별의 「노진인(路眞人)」 조(006) 참조.
『속일본기』 연력(延曆) 6년(787) 6월 신축조에 정6위상 평전기촌장마려(平田忌寸杖麻呂), 노기촌천마려(路忌寸泉麻呂) 등 4인이 기촌의 성을 고쳐 숙녜로 사성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노숙녜의 옛 성은 직(直), 기촌(忌寸)이다.
일족으로는 『일본서기』 천무(天武) 원년(672) 6월 갑신조에 노직익인(路直益人)이 있다. 그 밖에 무성(無姓)의 노씨(路氏)로는 천평 20년 7월 5일부 「노도포상장(路稻布上狀)(『大日本古文書』 10-304)에 노도포(路稻布), 천평승보(天平勝寶) 원년(750)의 「조동대사사해(造東大寺司解)」(동 25-115)에 노충마려(路虫麻呂) 등이 나온다.
2. 판상대숙녜동조(坂上大宿禰同祖)
〈판상계도〉에 인용된 『신찬성씨록』 일문에는 “아지사주(阿智使主)의 아들 도하사주(都賀使主)가 대박뢰치무천황(大泊瀨稚武天皇, 시호는 雄略) 치세에 사주(使主)라는 성을 직(直)으로 고쳤다. 자손들이 이를 성으로 삼았다. 아들 산목직(山木直)은 형복(兄腹)의 조상이다”라고 하고, “산목직(山木直)은 민기촌(民忌寸), ……곡숙녜(谷宿禰), ……노기촌(路忌寸), 노숙녜(路宿禰) 등 25성의 조상이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즉 노숙녜씨는 도하사주의 아들, 산목직을 시조로 하고 있다. 본조의 완본에는 “곡숙녜(谷宿禰)와 조상이 같고, 도하직(都賀直)의 4세손인 우지직(宇志直)의 후손이다”라고 되어 있었을 것이다.
〈판상계도〉에 인용된 『신찬성씨록』 일문에는 “아지사주(阿智使主)의 아들 도하사주(都賀使主)가 대박뢰치무천황(大泊瀨稚武天皇, 시호는 雄略) 치세에 사주(使主)라는 성을 직(直)으로 고쳤다. 자손들이 이를 성으로 삼았다. 아들 산목직(山木直)은 형복(兄腹)의 조상이다”라고 하고, “산목직(山木直)은 민기촌(民忌寸), ……곡숙녜(谷宿禰), ……노기촌(路忌寸), 노숙녜(路宿禰) 등 25성의 조상이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즉 노숙녜씨는 도하사주의 아들, 산목직을 시조로 하고 있다. 본조의 완본에는 “곡숙녜(谷宿禰)와 조상이 같고, 도하직(都賀直)의 4세손인 우지직(宇志直)의 후손이다”라고 되어 있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