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내용 바로가기하단 바로가기
상세검색
  • 디렉토리 검색
  • 작성·발신·수신일
    ~
신찬성씨록

양잠조신(良岑朝臣; 요시미네노아소미)

양잠조신(良岑朝臣; 요시미네노아소미)
 종4위하(從四位下) 양봉조신안세(良峯朝臣安世; 요시미네노아소미야스요)는 황통미조천황(皇統彌照天皇; 아마츠히츠기이야테라스노스메라미코토)[시호는 환무(桓武; 간무)이다.]이 다스릴 때, 종7위하(從七位下) 백제숙녜지계(百濟宿禰之繼; 구다라노스쿠네나가츠쿠)가, 여유(女嬬)가 되어 천황을 받들어 낳았다. 연력(延曆) 21년(802) 12월 27일에 특별히 양잠조신이라는 성을 내리고 우경(右京)에 편제하였다.
 
【주석】
1. 양잠조신(良岑朝臣)
양잠(良岑)은 양봉(良峯; 요시미네)이라고도 표기하며, 산성국(山城國) 을훈군(乙訓郡) 양봉(良峯)에서 유래된 것으로 생각된다. 양봉은 현재의 경도시(京都市) 서경구(西京區)대원야(大原野) 소염정(小鹽町) 일대이다. 현재 이곳에 선봉사(善峯寺; 요시미네데라) 선봉천(善峯川; 요시미네가와) 등의 지명이 남아 있다.
양잠조신은 환무천황(桓武天皇)과 백제숙녜지계 사이에서 태어난 안세왕(安世王)이왕족으로부터 신하의 신분이 되면서 받은 씨성(氏姓)이다.
2. 양봉조신안세(良峯朝臣安世)
환무천황의 아들로 어머니는 여유(女嬬) 종7위하 백제숙녜영계(百濟宿禰永繼; 구다라노스쿠네나가츠쿠)이고 중납언(中納言)을 지낸 등동사조신(藤冬嗣朝臣)의 동모제(同母弟)이다. 영계는 정5위상 비조부나지환(飛鳥部奈止丸)의 딸이다. 안세는 연력(延曆) 4년(785) 을축년에 태어났으며, 어릴 때 매와 개를 좋아하고 기사(騎射)를 즐겨하였으며, 다른 기예에도 모두 재능이 있었다고 한다. 장성한 때 이르러 처음 『효경』 을 읽었는데 다 읽고 나서 “명교(名敎)의 지극함이 이 책 속에 있는가.”라고 탄식하였다고 한다. 연력 21년(802) 12월 27일에 특별히 양봉조신이라는 성을 하사받았고, 우경에 편제되었다. 양봉조신안세가 정5위하에서 종4위하가 된 것은 홍인(弘仁) 5년(814) 2월 을묘이다(『유취국사(類聚國史)』 敍位). 천장(天長) 3년(826)에 동모형인 좌대신(左大臣) 등원동사(藤原冬嗣)가 죽자 병을 칭하고 궁중에 들어가지 않았다(『공경보임(公卿補任)』 袖書). 『일본기략(日本紀略)』 천장 7년(830) 7월 무인조에 대납언(大納言) 정3위 양잠조신안세가 죽었으므로 종2위를 추증하였다는 내용이 보인다. 『공경보임』 천장 7년조에 7월 6일에 죽었는데, 7일에 정2위를 추증하였으며 두(頭) 6년, 참의(參議) 6년, 중납언 8년, 대납언 3년, 우대장(右大將) 8년을 지냈다는 내용이 보인다.
3. 황통미조천황(皇統彌照天皇)
연력(延曆) 25년(806) 4월 1일에 정한 환무천황(桓武天皇)의 일본식 시호로 정확하게는 일본근자황통미조존(日本根子皇統彌照尊)이다.
4. 백제숙녜지계(百濟宿禰之繼)
지계(之繼)는 영계(永繼)라고도 표기하였다. 비조부나지환(飛鳥部奈止丸)의 딸로 처음에는 등원내마려(藤原內麻呂)와 혼인하여 진하(眞夏)와 동사(冬嗣)를 낳았다. 그녀의 아버지인 비조부나지환은 백제안숙공나등마려(百濟安宿公奈登麻呂)로도 표기하며 천평신호(天平神護) 원년(765)에 정6위상에서 외종5위하로 올랐다(『속일본기』). 『만엽집(萬葉集)』에는 찬기수(讚岐守) 안숙왕(安宿王)이 출운연(出雲掾) 안숙나저마(安宿奈杼麿)의 집에 모여서 지은 연가(宴歌) 2수가 전한다. 안숙왕이라는 이름이 안숙(安宿, 飛鳥)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면, 안숙왕의 유모가 안숙공(비조부) 출신일 가능성이 있다.
『정창원문서(正倉院文書)』에는 백제안숙공광성(百濟安宿公廣成)이라는 인물이 보이는데, 그는 그 밖에도 안숙부(安宿部), 안숙호(安宿戶), 백제비조호기미(百濟飛鳥戶伎美)등으로 씨성명을 표기하였다. 그는 하내국(河內國) 안숙군(安宿郡) 사람이므로, 지계의 아버지 나지마(奈止磨, 奈登麻呂)도 하내국 안숙군이 본관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일본후기』 홍인(弘仁) 3년(812) 정월 신미조에 우경인(右京人) 정6위상 비조호조선종(飛鳥戶造善宗) 하내국인(河內國人) 정6위상 비조호조명계(飛鳥戶造名繼)에게 백제숙녜라는 성을 주었다는 기사가 보이므로, 이보다 다소 앞서는 시기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백제숙녜씨의 계보에 대한 기록은 『신찬성씨록』에 보이지 않으나, 우경(右京) 제번(하) 비조호조(飛鳥戶造)나 하내국(河內國) 제번(諸蕃)의 비조호조가 백제숙녜씨에 해당할 것이다. 비조호조는 동성왕과 무령왕의 아버지인 곤지(昆支)를 시조로 한다.
5. 여유(女嬬)
여유(女孺)라고도 표기하며 후궁(後宮) 중궁(中宮)에서 근무하는 하급 여관(女官)이다. 『양로령(養老令)』 후궁직원령(後宮職員令)에 의하면 내시사(內侍司) 100인, 장사(藏司)에 10인, 서사(書司)에 6인, 약사(藥司)에 4인, 병사(兵司)에 6인, 위사(闈司)에 10인, 전사(殿司)에 5인, 소사(掃司)에 10인이 배정되어 있었다. 각 씨족이 13세 이상, 30세 이하의 씨녀(氏女)를 바치면 이를 여유로 삼았다.
6. 관어우경(貫於右京)
양봉조신안세가 좌경(左京)으로 이관(移貫)된 것은 홍인(弘仁) 6년(815) 6월 무오의 일이다. 따라서 양잠조신이라는 성을 받은 연력 21년(802) 12월부터 좌경으로 이관된 홍인 6년까지는 우경(右京)을 본적으로 하였다.
따라서 양잠조신의 조항이 좌경 황별(皇別)에 수록된 것은 안세가 우경에서 좌경으로 이관된 홍인 6년 6월 19일부터 『신찬성씨록』 의 상표문이 작성된 홍인 6년 7월 20일 사이라고 할 수 있다.
오류접수

본 사이트 자료 중 잘못된 정보를 발견하였거나 사용 중 불편한 사항이 있을 경우 알려주세요. 처리 현황은 오류게시판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전화번호, 이메일 등 개인정보는 삭제하오니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양잠조신(良岑朝臣; 요시미네노아소미) 자료번호 : ss.k_0001_0030_0060_0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