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육왕사(阿育王寺)의 탑에서 사리를 꺼냄
이에 앞서 대동(大同) 3년(537) 8월에 고조(高祖) [양무제(梁武帝)]가 아육왕사(阿育王寺)주 001의 탑(塔)주 002
각주 002)
을 고쳐 세우면서, 구탑(舊塔) 아래에서 사리(舍利) 및 부처의 손톱과 머리카락을 꺼내었다. 머리카락은 청감색(靑紺色)이었다. 많은 승려들이 [제각기] 손으로 머리카락을 펴보았는데, 손의 힘에 따라 늘어나기도 하고 줄기도 하였으며, 놓으면 돌돌 말려서 나선형이 되었다. 살피건대, 『승가경(僧伽經)』에 이르기를, “부처의 머리카락은 푸르고 가늘어 마치 연(蓮)의 줄기로 만든 실[藕莖絲]과 같다.”라고 하였다. 『불삼매경(佛三昧經)』주 003에 이르기를, “내가 옛날에 궁에서 머리를 감으면서 자로 머리카락의 길이를 잰 적이 있는데, 길이가 1장 2척이었으며 [잡았다가] 놓으면 오른쪽으로 돌면서 나선형 모양으로 돌아갔다.”라고 하였으니, 고조가 얻은 것과 같다.스투파(塔): 나까무라 하지메는 스투파(탑)와 그 숭배에 관하여 대략 다음과 같이 정리하였다. 스투파란 원래 ‘포개어 쌓은 것’을 의미한다. 구체적으로는 분묘이며, 따라서 이것은 화장 의식과 관련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체를 화장하는 관습은 물론 불교 이전의 것이지만, 화장한 유골을 스투파 속에 모시고 예배의 대상으로 삼은 관습이 불교 이전의 것이라는 확증은 없다. 그러나 석존이 입멸하여 화장된 다음, 그 유골(사리라: 사리, 舍利)이 스투파에 모셔져 숭배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마하파리닙바나 숫탄타」(대반열반경)에 나오는 이른바 불사리 여덟 등분의 전승은 역사적 사실로 믿어도 좋을 것이다. 이 경전에서는 석존의 입멸 직전에 시자인 아난다가 사리의 숭배에 관하여 묻는 장면이 있다. 이에 대하여 석존은 불탑 숭배는 재가 신자가 해야할 일이지 수행자(비구)가 관여할 일이 아니라고 가르치고 있다. 이 전승의 사실성 여부는 확실치 않다. 그러나 적어도 이 전승이 만들어져서 「마하파리닙바나 숫탄타」로 집성되었을 시점에는 탑 숭배가 재가 신자의 신앙양식으로서 비구가 관여할 문제가 아니라는 사고 방식이 교단의 지도자들 속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불타의 입멸 후 아쇼카왕이 여덟 개의 불사리탑에서 불사리를 모아서 이것들을 다시 나누어 8만 4천개의 탑을 세웠다는 전승도 불탑 숭배가 불교도 사이에 정착되었음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나까무라 하지메, 1984: 356).
- 각주 001)
-
각주 002)
스투파(塔): 나까무라 하지메는 스투파(탑)와 그 숭배에 관하여 대략 다음과 같이 정리하였다. 스투파란 원래 ‘포개어 쌓은 것’을 의미한다. 구체적으로는 분묘이며, 따라서 이것은 화장 의식과 관련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체를 화장하는 관습은 물론 불교 이전의 것이지만, 화장한 유골을 스투파 속에 모시고 예배의 대상으로 삼은 관습이 불교 이전의 것이라는 확증은 없다. 그러나 석존이 입멸하여 화장된 다음, 그 유골(사리라: 사리, 舍利)이 스투파에 모셔져 숭배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마하파리닙바나 숫탄타」(대반열반경)에 나오는 이른바 불사리 여덟 등분의 전승은 역사적 사실로 믿어도 좋을 것이다. 이 경전에서는 석존의 입멸 직전에 시자인 아난다가 사리의 숭배에 관하여 묻는 장면이 있다. 이에 대하여 석존은 불탑 숭배는 재가 신자가 해야할 일이지 수행자(비구)가 관여할 일이 아니라고 가르치고 있다. 이 전승의 사실성 여부는 확실치 않다. 그러나 적어도 이 전승이 만들어져서 「마하파리닙바나 숫탄타」로 집성되었을 시점에는 탑 숭배가 재가 신자의 신앙양식으로서 비구가 관여할 문제가 아니라는 사고 방식이 교단의 지도자들 속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불타의 입멸 후 아쇼카왕이 여덟 개의 불사리탑에서 불사리를 모아서 이것들을 다시 나누어 8만 4천개의 탑을 세웠다는 전승도 불탑 숭배가 불교도 사이에 정착되었음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나까무라 하지메, 1984: 356).
- 각주 003)
색인어
- 이름
- 고조(高祖), 양무제(梁武帝), 고조
- 서명
- 승가경(僧伽經), 불삼매경(佛三昧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