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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정사외국전

만(蠻)에 대한 풍속과 문화를 설명

  • 국가
    남만(南蠻)
예기(禮記)』에서 “남방[에 사는 사람을] 만(蠻)이라고 하니, 이마에 문신을 새기고,주 001
각주 001)
李賢註에서는 ‘題’란 이마를 뜻한다, 이것을 새긴다는 것은 그 살갗을 새겨 붉고 푸른 물을 들이는 것을 말한다고 하였다(題, 額也. 雕之, 謂刻其肌以丹靑涅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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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가) 다리를 서로 엇걸고 잔다.”주 002
각주 002)
‘南方曰蠻, 雕題交阯’: 『禮記』 「王制」에 나온 말로, 남녀가 함께 자고 목욕하는 것을 설명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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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하였다. 그들의 풍속에서는 남녀가 한 개울에서 목욕을 하니 그래서 ‘교지(交阯)’라고 한다. 그 서쪽에 담인국(噉人國)이 있는데, 첫아이를 낳으면 갈라 먹는데, 이를 ‘의제(宜弟)’라고 한다.주 003
각주 003)
噉人國, 宜弟: ‘사람을 잡아먹는 나라’라는 의미로 구체적인 실체는 불투명하다. 중국의 史書에서는 『後漢書』에 유일하게 나타나고, 『通典』 등에서 이를 인용하고 있을 뿐이다. 다만, 이와 관련된 내용을 언급하고 있는 『後漢書』 이전의 문헌으로는 『墨子』가 있다. 『墨子』 권6 「節葬」下 제25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옛날에 월나라의 동쪽에 輆沐이라는 나라가 있었는데 첫째 아이가 태어나면 해부해서 그것을 먹는데 이것을 ‘宜弟’라고 한다.” 한편, 『墨子』 권13 「魯問」 제49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노나라의 陽文君이 墨子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초나라의 남쪽에 ‘橋’라고 하는 啖人國이 있는데 그 나라에서는 첫째 아이가 태어나면 해부해서 먹으니 이를 ‘宜弟’라고 한답니다. 맛이 좋으면 그 임금에게 갖다 바치는데 임금은 기뻐하며 그 아비에게 상을 줍니다. 사악한 풍속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이처럼 전자에서는 輆沐國에 宜弟의 풍습이 있다고 했고 후자에서는 啖人國에 의제의 풍습이 있다고 하여 같은 책 안에서도 내용이 서로 일치하지 않는다. 하지만 啖은 噉과 통하므로 『後漢書』에서 말한 噉人國은 바로 墨子에서 말한 啖人國을 뜻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啖人國과 관련된 전승은 墨子에서 처음 언급된 이후 위진시대에 편찬된 『博物志』 권2 異俗, 남북조시대에 성립된 『列子』 권5 湯問 등에서도 연용되고 있다. 따라서, 劉宋代에 范曄이 『後漢書』를 찬술하면서 당시에 유전되고 있던 啖人國과 宜弟 관련 전승을 참고하여 이를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 ‘宜弟’는 한자의 의미에서 나온 것은 아닌 것으로, 당시 이 지역사람들의 말을 音寫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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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이 좋으면 그 군장에게 보내는데, 군장은 이를 기뻐하여 그 아비에게 상을 내린다. 아름다운 처를 얻게 되면 그 형에게 양보한다. 지금의 오호인(烏滸人)주 004
각주 004)
烏滸人: 李賢注에서는 萬震의 『南州異物志』를 인용하여 설명하고 있는데, 여기에 의하면 ‘烏滸’는 지명으로 廣州의 남쪽 交州의 북쪽에 위치하고 있는데, 항상 다니는 길가에 염탐하는 자를 배치하였다가 [지나는 사람이 있으면] 갑자기 공격하여 사람을 잡아 먹는데 재화는 탐하지 않았다. 그 인육은 젓을 담고 두개골은 깨트려 이를 이용해 술을 마시며, 사람의 손과 발가락으로서는 진기한 음식을 만들어 이를 장노들에게 먹게 한다(萬震南州異物志曰: “烏滸, 地名也. 在廣州之南, 交州之北. 恆出道閒伺候行旅, 輒出擊之. 利得人食之, 不貪其財貨, 並以其肉爲肴葅, 又取其髑髏破之以飮酒. 以人掌趾爲珎異, 以食長老.”). 史書의 기록으로는 『後漢書』 권8, 「靈帝紀」, 建寧 3년(170) 鬱林의 烏滸民이 내속하였다는 기록이 처음 나타나, 唐代까지 그 종족의 존재가 확인된다. 劍南道 貴州 鬱平縣(현재 廣西狀族自治區 貴港市)에 자식을 잡아 먹고 남녀가 혼거하는 풍속을 가진 烏滸人이 거주하고 있음을 설명하고 있다(『舊唐書』 권41, 「地理志」 4.). 그 이후에는 이에 관한 기록이 나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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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이 이들이다.

  • 각주 001)
    李賢註에서는 ‘題’란 이마를 뜻한다, 이것을 새긴다는 것은 그 살갗을 새겨 붉고 푸른 물을 들이는 것을 말한다고 하였다(題, 額也. 雕之, 謂刻其肌以丹靑涅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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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2)
    ‘南方曰蠻, 雕題交阯’: 『禮記』 「王制」에 나온 말로, 남녀가 함께 자고 목욕하는 것을 설명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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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3)
    噉人國, 宜弟: ‘사람을 잡아먹는 나라’라는 의미로 구체적인 실체는 불투명하다. 중국의 史書에서는 『後漢書』에 유일하게 나타나고, 『通典』 등에서 이를 인용하고 있을 뿐이다. 다만, 이와 관련된 내용을 언급하고 있는 『後漢書』 이전의 문헌으로는 『墨子』가 있다. 『墨子』 권6 「節葬」下 제25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옛날에 월나라의 동쪽에 輆沐이라는 나라가 있었는데 첫째 아이가 태어나면 해부해서 그것을 먹는데 이것을 ‘宜弟’라고 한다.” 한편, 『墨子』 권13 「魯問」 제49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노나라의 陽文君이 墨子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초나라의 남쪽에 ‘橋’라고 하는 啖人國이 있는데 그 나라에서는 첫째 아이가 태어나면 해부해서 먹으니 이를 ‘宜弟’라고 한답니다. 맛이 좋으면 그 임금에게 갖다 바치는데 임금은 기뻐하며 그 아비에게 상을 줍니다. 사악한 풍속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이처럼 전자에서는 輆沐國에 宜弟의 풍습이 있다고 했고 후자에서는 啖人國에 의제의 풍습이 있다고 하여 같은 책 안에서도 내용이 서로 일치하지 않는다. 하지만 啖은 噉과 통하므로 『後漢書』에서 말한 噉人國은 바로 墨子에서 말한 啖人國을 뜻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啖人國과 관련된 전승은 墨子에서 처음 언급된 이후 위진시대에 편찬된 『博物志』 권2 異俗, 남북조시대에 성립된 『列子』 권5 湯問 등에서도 연용되고 있다. 따라서, 劉宋代에 范曄이 『後漢書』를 찬술하면서 당시에 유전되고 있던 啖人國과 宜弟 관련 전승을 참고하여 이를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 ‘宜弟’는 한자의 의미에서 나온 것은 아닌 것으로, 당시 이 지역사람들의 말을 音寫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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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4)
    烏滸人: 李賢注에서는 萬震의 『南州異物志』를 인용하여 설명하고 있는데, 여기에 의하면 ‘烏滸’는 지명으로 廣州의 남쪽 交州의 북쪽에 위치하고 있는데, 항상 다니는 길가에 염탐하는 자를 배치하였다가 [지나는 사람이 있으면] 갑자기 공격하여 사람을 잡아 먹는데 재화는 탐하지 않았다. 그 인육은 젓을 담고 두개골은 깨트려 이를 이용해 술을 마시며, 사람의 손과 발가락으로서는 진기한 음식을 만들어 이를 장노들에게 먹게 한다(萬震南州異物志曰: “烏滸, 地名也. 在廣州之南, 交州之北. 恆出道閒伺候行旅, 輒出擊之. 利得人食之, 不貪其財貨, 並以其肉爲肴葅, 又取其髑髏破之以飮酒. 以人掌趾爲珎異, 以食長老.”). 史書의 기록으로는 『後漢書』 권8, 「靈帝紀」, 建寧 3년(170) 鬱林의 烏滸民이 내속하였다는 기록이 처음 나타나, 唐代까지 그 종족의 존재가 확인된다. 劍南道 貴州 鬱平縣(현재 廣西狀族自治區 貴港市)에 자식을 잡아 먹고 남녀가 혼거하는 풍속을 가진 烏滸人이 거주하고 있음을 설명하고 있다(『舊唐書』 권41, 「地理志」 4.). 그 이후에는 이에 관한 기록이 나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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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인어
지명
담인국(噉人國)
서명
예기(禮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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