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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고대문화유산

김해 봉황동 유적

  • 날짜
    1907·1914·1915·1917·1934~1935
  • 시대
    초기철기시대
  • 위치
  • 원소장처
    경상남도 김해시 봉황동 253 외
  • 시대
    상고사
  • 유형
    무덤
입지
1907년 이마니시[今西龍]에 의해 처음 발견되어 시굴조사, 1914년 도리이[鳥居龍藏], 1915년 구로이타[黑板勝美], 1917년 도리이에 의해 각각 부분적인 발굴조사가 진행됨. 1920년 하마다[浜田耕作]·우메하라[梅原末治], 1934년과 1935년 가야모토[榧本杜人]에 의한 본격적인 발굴조사가 시행됨.
유적개관
우리나라 고고학 역사상 최초의 발굴이 이루어진 유적임. 흔히 사용되는 김해패총이라는 말은 발견자인 이마니시가 지은 명칭으로 일련의 발굴을 통하여, 이른바 김해식 토기라고 명명된 토기의 편들과, 철부와 철도자 같은 철기와 각종 골각제품들이 출토됨. 1920년의 발굴 때 화천이 나와 패총의 상한연대가 밝혀졌고, 또 함께 발견된 탄화미는 한국의 벼를 연구하는 데 매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음. 34·35년의 발굴을 통하여 석관묘와 옹관묘가 발견되었음. 2001년 2월 5일 금관가야의 집단 취락유적인 봉황대(경남문화재자료 제87호)와 합쳐 김해 봉황동 유적으로 확대 지정되었음.
출토유물
* 김해토기 편, 방추차, 탄화미, 화천, 벽옥제 관옥, 세형동검, 동사, 골촉, 골침, 철제공 구류 등
참고문헌
「김해패총연대(金海貝塚年代)에 관(關)한 재검토(再檢討)」
「金海貝塚甕棺と箱式石棺」
「金海貝塚の再檢討」
「金海貝塚發掘調査報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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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 봉황동 유적 자료번호 : isea.d_0001_0030_0030_0020_00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