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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고대문화유산

송월산성

松月山城
  • 저필자
    김진광(한국학중앙연구원)
  • 시대
    고구려/발해/요금
  • 위치
  • 원소장처
    吉林省 和龍市 富興鄕 松月村 西南1km 산꼭대기(길림성 화룡시 부흥향 송월촌 서남1km 산꼭대기)
  • 시대
    발해
  • 유형
규모
둘레: 2,480m
입지
성에서 동쪽으로 300m 떨어진 곳에는 화룡(和龍)에서 석인구임장(石人沟林場)으로 통하는 도로가 있으며, 다시 동쪽으로 약 50m 떨어진 곳은 해란강(海蘭江)으로 남쪽에서 북쪽으로 흘러 송월촌(松月村)에 이르러, 다시 동북쪽으로 흘러간다.
유적개관
산성은 산세에 의지해 산등성이를 따라 축조하였고, 서쪽의 몇 곳이 산등성이 절벽을 성벽으로 삼은 것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모두 인공적으로 흙을 쌓아 축조하였다. 성은 불규칙한 타원형이다. 성벽에서 남쪽으로 치우친 골짜기 사이에는 문지가 있고, 성이 굽어지는 부분에는 4개의 각루가 설치되어 있다. 골짜기 중심에는 평탄한 대지가 있는데, 아마도 성안의 건축지로 생각된다. 이 성은 성문 서쪽 기슭이 도로 건설을 위한 취토(取土)로 30m 정도의 성벽이 훼손된 것을 제외하고, 나머지 부분은 보존이 비교적 좋다.
유물개관
성안에서 3점의 泥質灰陶片과 泥質褐陶片이 수습되었다.
참고문헌
문물지
해설
송월산성(松月山城)은 부흥향(富興鄕) 송월촌(松月村)에서 서남쪽으로 약 1km 떨어진 산 위에 있다. 산성에서 동쪽으로 300m 떨어진 곳에는 화룡(和龍)~석인구임장(石人沟林場)으로 향하는 도로가 있다. 다시 동쪽으로 약 50m 떨어진 곳에는 해란강(海蘭江)이 남쪽에서 북쪽으로 흘러 송월촌(松月村)을 지나 다시 동북쪽으로 흘러간다.
산성은 산세를 따라 산등성이에 쌓았다. 서쪽 일부에서 절벽을 성벽으로 삼은 구간을 제외하면, 나머지 구간은 모두 흙을 쌓아 만들었다. 성은 불규칙한 타원형으로, 둘레는 2,480m이다. 성벽 밑부분의 너비는 10m, 윗부분의 너비는 1~2m, 높이는 2~4m이다. 동벽에서 약간 남쪽으로 치우친 곳에 13m 너비의 성문지가 있다. 성이 모서리를 이루는 곳에 보초병이 망을 보는 지름 약 6m의 각루(角樓) 4개, 즉 성문 남쪽에 2곳ㆍ서쪽에 1곳ㆍ북쪽의 가장 높은 지점에 1곳 설치되어 있으며, 각루의 지름은 약 6m에 달한. 성안에는 3곳의 골짜기가 있는데, 남ㆍ북 두 개가 골짜기는 좁고 가파르며, 중간의 있는 골짜기는 경사가 완만하고 넓게 트여있다. 골짜기 중심에는 평탄한 대지가 있는데, 그 동쪽 부분은 돌로 쌓았다. 이 대지는 성 안에 있던 건축지로 생각된다. 이 성은 성문 서쪽 성벽이 도로건설로 30m 정도 훼손된 것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보존상태가 대체로 좋다.
성 안에는 유물이 거의 없어 진흙으로 빚은 회색 도기편[泥質灰陶片]ㆍ진흙으로 빚은 갈색 도기편[泥質褐陶片] 3점만 수습되었다. 1984년 문물조사 당시 현지인들에 말에 의하면, 일찍이 성 안에서 세모형태[三角形]ㆍ버들잎형태[柳葉狀]의 쇠화살촉 일부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산성의 확실한 연대는 확인할 수 없으나, 주변에 발해문화 유적이 많다는 점에 근거하여 발해시기의 산성으로 추정한 학자도 있다.
참고 :
吉林省文物志編委會 主編, 1984, 「和龍文物志」, 62~63쪽.
김진광, 2012, 「북국발해탐험」, 박문사, 558~55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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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월산성 자료번호 : isea.d_0003_0010_0050_0080_01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