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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고대문화유산

동흥고성

東興古城
  • 저필자
    김지영(숙명여자대학교)
  • 날짜
    1930년대·1942
  • 시대
    고구려/발해
  • 위치
  • 원소장처
    길림성 연변 용정시 광신향 동흥촌
  • 시대
    고구려
  • 유형
입지
용정시 광신향 동흥촌
유적개관
성의 형태는 방형이며, 토석혼축성이다. 현재는 훼손이 심하여 형태를 알아보기 어렵지만, 『간도성고적조사보고(間島省古迹調査報告)』에서 鳥山喜一은 내성과 외성이 존재하는 것으로 판단하였다. 동흥고성은 현재 훼손이 심하여 형태를 알아보기 어렵다. 鳥山喜一에 따르면 1930년대 후반에 조사할 당시 성 내에 고구려계 적색기와가 다량으로 산포되어 있었다고 한다. 현재 서울대학교 박물관에 鳥山喜一이 당시 수습한 유물들이 소장되어 있다. 동흥고성에서 해란하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면 고구려와 발해 유물이 출토된 바 있는 수칠구절터(수남 수칠구사지(水南 水七溝寺址))가 있다. 또한 성의 동남쪽에는 대규모의 수남고분군(水南古墳群)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현재는 훼손으로 인해 유적 확인이 어렵다.
유물개관
* 고구려, 발해 기와
참고문헌
「間島省古迹調査報告」, 1942
해설
중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용정시 광신향 동흥촌에 위치해 있는 흙과 돌을 섞어 쌓은(토석혼축 土石混築) 평지성이다. 현재는 훼손이 심해 형태를 알아보기 어렵지만 1942년 일본학자인 도리야마 기이치(조산희일 鳥山喜一)가 『간도성고적조사보고 間島省古迹調査報告』에 보고한 것에 의하면 ‘동흥촌토성’으로 부른 이 성은 내성과 외성이 존재했던 것으로 판단하였다. 당시 보고에 따르면 내성은 동서 55m, 남북 약 60m이며, 서벽과 평행하게 36m 거리에 남북으로 길게 토벽이 있으며 돌덩어리를 많이 포함한 흙과 돌로 섞어 쌓은 견고한 성벽이 있는데 이것을 외성의 일부로 보았다. 동쪽과 북쪽은 이미 이 당시 파괴되어 흔적도 남지 않았다고 한다.
유물로는 고구려계의 붉은색 기와조각이 흩어져 있었으며 또한 중국 요나라와 금나라 시대 형식의 회색 기와도 다수 섞여 있어 고구려시대에 쌓은 토성이 그 뒤까지 이용되었다고 보았다. 또한 내성으로 보이는 곳의 중앙 서쪽에 방형(方形)과 장방형(長方形) 초석이 2개 있는데, 폭이 약 1m, 높이 약 60cm 정도의 큰 돌로, 두 초석의 중심 거리는 3.2m 였다고 한다. 이 초석 부근에서 특히 붉은색 기와가 많이 발견되었다. 동흥고성 출토유물 중 현재 서울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된 고구려계 기와조각은 대체로 새끼줄무늬(승문 繩紋)와 마름모꼴무늬(사격자문 斜格子紋)이다. 이외에도 발해 시대의 양식과 유사한 기와도 출토되었다.
이 동흥고성에서 해란하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면 수남(水南) 수칠구절터(水七溝寺址)가 있으며, 1942년 보고서에 따르면 동남쪽에 대규모 수남고분군(水南古墳群)이 존재하고 있었다고 하는데 현재는 확인이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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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흥고성 자료번호 : isea.d_0002_0010_0030_0030_0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