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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越墾) 조선 백성을 안삽(安揷)하고 토지 측량에 힘쓴 사람들을 포상하는 일에 관한 길림장군(吉林將軍)의 문서

越墾 조선 백성을 安揷하고 토지를 측량하는데 진력한 인원들을 보증하여 추천합니다(保擧安揷越墾韓民竝淸丈越墾地畝出力人員).
  • 발신자
    吉林將軍 恩澤
  • 수신자
    總理衙門
  • 날짜
    1894년 12월 30일 (음)(光緖二十年十二月三十日) , 1895년 1월 25일 (光緖二十年十二月三十日)
  • 문서번호
    1-4-2-17 (2544, 4011b-4025a)
12월 30일, 吉林將軍 恩澤이 다음과 같은 내용의 문서를 보내왔다.
광서 20년 12월 13일, 본 아문에서는 유지를 받들어 越墾 조선 백성을 安揷하고 토지측량에 진력한 각 관원들을 추천하여 恩典과 褒賞을 간청하는 사안에 대해 삼가 주접을 갖추니, 황제께서 살펴봐 주십시오라는 제목의 다음과 같은 주접을 삼가 공손히 갖추어 올렸습니다.
광서 20년 3월 2일, 琿春과 圖門江 北岸의 조선 유민들이 개간한 토지를 거두어들여 측량하는 일이 이미 일률적으로 완료되어, 將軍 長順과 함께 (조선 백성을) 호적에 편입시키고 세금을 부과하는 사무를 처리하는데 진력한 각 관원들 중에서 몇 사람을 적당하게 추천해도 되는지, 유지를 청하여 그에 따르겠다는 주접을 갖추어 올렸습니다. 이번 달 19일, 다음과 같은 硃批를 받았습니다.
해당 아문에서 논의하여 상주하고, 명단을 함께 발송하라.
뒤이어 총리아문에서 다음과 같은 자문을 보내왔습니다.
광서 24년 4월 24일, 戶部와 함께 覆奏하였고, 오늘 다음과 같은 硃批를 받았습니다.
몇 사람의 인원을 적절하게 추천하도록 하되, 자격을 갖추지 못한 자를 함부로 추천해서는 안 된다. 나머지는 논의한 대로 하라.
 
이상과 같은 총리아문의 자문을 받았습니다. 엎드려 생각건대, 조선 유민들이 (국경을) 넘어 琿春에 와서 살게 된 것은 또한 이미 10여 년이 되었고, 戶數는 수천, 人丁은 2만을 넘었는데, 모두 아직 중국의 호적에 편입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땅 주인이 정해지지 않아 강한 자들이 약한 자들을 침탈하니, 큰 말썽이 생겨나 장래에 우환을 남길까 심히 두렵습니다. 또한 조선에서는 누차 (그들을) 刷還할 것을 논의하였으나 결국에는 실행하지 못하였습니다. 신과 (吉林將軍) 長(順)은 자문과 서신을 통해 누차 상의하여 조정의 藩封을 撫養하려는 뜻을 우러러 體現하고 (그들을) 대신하여 安集시키고자 도모했던 것은, 바로 그 疆土를 안정시키려 한 것이었지 그 人民을 얻는 것을 이롭다고 생각해서는 아니었습니다. 광서 16년 3월에 시작하여 광서 17년 7월에 관련 사무가 마무리되었습니다. 거두어들여 撫養하게 된 墾民이 2만 남짓이었고, 토지를 측량하여 그 결과 개간지(熟地) 15,000여 晌이 보고되었으며, 4堡 39社를 세우고 일률적으로 入籍시켜 영원히 주인과 손님 사이의 불만을 없앴습니다. 파견된 각 인원은 모두 우러러 황상의 작은 나라를 어여삐 여기는 덕에 능히 부합하여, 과격하거나 멋대로 다루지 않고, 상황에 따라 적절한 조치를 취하였습니다. 마침내 이익만을 꾀하여 이를 방해하려는 조선 관리들은 지혜가 다하고 술책이 궁하여 아무런 대책도 베풀 수 없었으며, 墾民들은 歸化를 통해 영원히 그 땅에서 편안하고 즐겁게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山東省의 歷城 等 州縣의 黃河 주변 水災民을 移住시킨 사안과 비교하면, 그 힘든 상황은 지나치면 지나쳤지 미치지 않는 경우는 없었을 것입니다. 吉林朝鮮商務를 督理하는 委員이자 墾越事를 兼辦하는 知府用補用同知이자 留吉試用知縣인 王昌熾는 일 처리에 최선을 다하고 취한 조치가 모두 적절하여 실로 특별히 진력했다고 할 만합니다. 청컨대, 그를 知縣으로 補用하는 것을 면제해 주고 (그보다 한 등급 위인) 同知로서 여전히 吉林에 남겨두어 補用하도록 하고, 아울러 知府班에 귀속시키고 포상으로 三品銜을 더해주시기를 간청하고자 합니다. 同知銜分省補用知縣이자 越墾事務를 會辦하는 程國鈞은 시종 그 업무에 대해 남보다 배나 노력하였으니 本班에 따른 補用을 면제해주고 同知로서 省에 파견되어 補用되도록 해 주십시오. 나머지 9명은 모두 특별히 진력한 자들로, 삼가 유지를 받들어 특별히 우수한 인원을 가려 뽑아 추천하였으며 감히 조금도 함부로 자격 없는 사람을 추천하지 않았습니다. 삼가 명단(淸單)을 갖추어 보실 수 있도록 올리면서 황상의 은혜를 간청합니다. 아울러 山東 災民을 이주시켰던 방식을 원용하여 그에 따라 포상을 내리신다면 格外의 넓으신 자애로움의 혜택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적당한 지역에 관청을 세워 나누어 다스려야 할지 여부는 제가 상황을 살피고 검토하여 上奏하여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각 인원의 履歷에 대해서는 吏部에 자문을 보내었고, 유지에 따라 越墾 조선 백성을 安揷하고 토지측량에 진력한 인원들을 추천하는 사유에 대해서 마땅히 삼가 주접을 갖추어 올리는 바이오니 황상께서 살펴보시고 훈시를 내려 주시길 엎드려 바라옵니다. 삼가 주를 올립니다.
(이상과 같은 주접을 올려 황상의) 硃批를 받은 다음, 재차 삼가 초록하여 보고를 올리는 것 외에도, 마땅히 먼저 원 주접의 초록과 더불어 해당 관원의 三代 出身履歷에 대해서 명단(淸冊) 1권을 만들어 총리아문에 올려 보고하니, 검토해 주십시오.
별지: 월간(越墾) 조선 백성을 안삽(安揷)하고 토지 측량에 힘쓴 사람들의 포상을 요청하는 문서
 

첨부문서 초록:

琿春의 越墾 조선 백성을 安揷하는 사무를 처리하고 아울러 토지측량에 진력하여 恩典과 褒賞을 간청하는 각 인원들의 명단을 삼가 갖추어 올리오니 살펴봐 주십시오.
첨부내용:
知縣班 選缺로 귀속된 다음 直隸州 知州儘先補用이 된 藍翎補用筆帖式주 001
각주 001)
청대 각 아문에 배치된 하급 문관으로, 만주어로 문서를 처리하는 사람이란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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培源과 五品頂戴知縣用筆帖式 炳宣, 이상의 2명은 모두 本班에 따른 補用을 면제하고, 知縣으로 홀수·짝수 달을 불문하고 吏部에서 자리가 나면 가장 먼저 選用하는 대상으로 해주실 것을 간청합니다. 分省試用縣丞 鄭維周은 本班에 따른 보충을 면제하고 知縣으로 여전히 省에 파견하여 候補班에 귀속시켜 자리가 나면 가장 먼저 選用하는 대상으로 해주실 것을 간청합니다. 吉林管檔堂主事淩雲은 그 직무에서 면제시키고 直隷州 知州로서 候補班에 귀속시켜 먼저 選用하는 대상으로 해주실 것을 간청합니다. 吉林滿洲正紅旗補用佐領이자 先換頂戴防禦인 塔爾幹은 候補左領을 기다린 다음 가장 먼저 協領주 002
각주 002)
청대 주방팔기의 무직 관원으로 종3품의 직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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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 補用해주실 것을 간청합니다. 五品頂戴府經歷銜 唐書勳과 五品頂戴府經歷銜 何樹漢 이상 2명은 府經歷주 003
각주 003)
정8품으로 府의 經歷司를 맡는 관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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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 홀수·짝수 달을 불문하고 吏部에서 자리가 나면 가장 먼저 선용해주실 것을 간청합니다. 五品頂戴縣丞 高甫麟은 縣丞으로 홀수·짝수 달을 불문하고 이부에서 자리가 나면 가장 먼저 補用해주실 것을 간청합니다. 五品頂戴俊秀 葉含芬은 巡檢으로 吏部에 귀속시켰다가 홀수·짝수 달을 불문하고 자리가 나면 가장 먼저 補用해주실 것을 간청합니다.
별지: 월간(越墾) 조선 백성을 안삽(安揷)하고 토지 측량에 힘쓴 사람들의 포상을 위한 관리들의 이력 문서
 

履歷冊 초록

삼가 琿春의 越墾 조선 백성을 安揷시키는 사무를 처리하고 아울러 토지측량에 진력하여 포상을 간청하는 文武 각 관원들의 三代 出身과 履歷에 대해 명단을 갖추어 보고하오니 살펴봐 주십시오.
첨부내용:
王昌熾는 올해 39세로 湖北 武昌府 江夏縣 사람입니다. 童生(文童)으로 광서 6년 新疆 軍營에 투신하였습니다. 광서 9년 여러 해 동안 邊防의 사후처리 업무에 특별히 진력한 인원을 포상하는 사안에서 烏魯木齊都統 恭이 상주하여 추천하였습니다. 吏部의 논의를 거쳐 巡檢으로 吏部에 귀속시켰다가 가장 먼저 選用하기로 하였습니다. 10월 8일, 다음과 같은 유지를 받았습니다.
논의한 대로 하라.
10년, 伊犁를 수복할 때에 여러 해 동안 숨어 있는 도적 떼를 토벌하면서 진력한 인원을 포상하는 사안에서 幫辦新疆軍務大臣 伊犁將軍 金이 상주하여 추천하였습니다. 11년 3월 15일, 軍機大臣이 다음과 같은 유지를 받았습니다.
歸部儘先選用巡檢 王昌熾는 本班에 따른 선발을 면제하고, 府經歷으로 吏部에 귀속시켜 홀수·짝수 달을 불문하고 자리가 생기면 우선 선용하도록 하라. 아울러 상으로 六品銜을 추가하라.
광서 8~9년, 2년 동안 2회에 걸쳐 新疆 중남부의 경계를 함께 답사하는 업무에 진력한 인원을 포상하는 사안에서 12년 蒙新疆分界大臣 長이 상주하여 추천하였습니다. 7월 24일 吏部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의 답장 자문을 보냈습니다.
7월 18일 다음과 같은 유지를 받았습니다.
候選府經歷 王昌熾는 本班에 따른 선발을 면제하고, 知縣으로 吏部에 귀속시켜 홀수·짝수 달을 불문하고 자리가 생기면 우선 선용하도록 하라. 아울러 상으로 同知銜을 부가하라.
 
앞서 광서 9년 12월에 보고를 올려 軍營을 떠나는 것을 허락받았으며, 결코 담당한 사무 처리를 완료하지 않은 적이 없었습니다. 陞任吉林副都統으로 烏魯木齊領隊大臣 恩을 수행하여 함께 吉林으로 향하였고, 吉林將軍 希와 吉林副都統 恩의 지시를 받아 吉林將軍 文案委員의 差使에 충당되었습니다. 13년 練軍과 함께 도적 떼 7명을 체포하여, 吉林將軍 希와 吉林副都統恩이 상주하여 추천하여 자리가 생기면 同知로 임용을 받게 되었습니다. 14년 3월, 吏部에서 다음과 같은 자문을 받았습니다.
13년 12월 19일, 다음과 같은 유지를 받았습니다.
논의한 대로 시행하라.
 
14년 9월, 吉林將軍 長과 副都統 恩이 軍營에 남겨두어 업무에 파견할 것을 주청하였습니다.
12월 吏部로부터 다음과 같은 咨文을 받았습니다.
11월 23일 覆奏하여 다음과 같은 유지를 받았습니다.
논의한 대로 시행하라.
 
15년 6월 10일, 幫辦吉林邊務琿春副都統 恩의 지시를 받아 邊務文案處會辦에 충당되었습니다. 9월 재차 지시를 받아 琿春行營의 發審 업무를 겸하게 되었습니다. 16년 11월 29일, 督辦吉林邊務將軍 長의 지시를 받아 署理吉林·朝鮮商務總局兼辦越墾事宜에 충당되었습니다.
18년 3월 10일, 吉林·朝鮮商務總局의 사무를 인계하였습니다. 뒤이어 閏6월 15일, 督辦吉林邊務將軍 長의 지시를 받아 稽査琿春天寶山銀礦委員으로 임명되었습니다. 올해 9월, 督幫辦吉林邊務將軍 長과 琿春副都統 恩이 5년간의 邊防 관련 인원을 포상하는 사안에서 업무에 진력했다는 이유로 同知에 補用된 이후 知府로서 홀수·짝수 달을 불문하고 자리가 생기면 가장 우선적으로 선용할 것을 주청하였습니다. 19년 5월 16일, 總理海軍事務衙門과 吏部가 함께 검토하고 논의하여 답변 상주를 올렸는데, 吏部에서 知縣으로 선발하여 離任하기를 기다렸다가 同知班에 귀속시켜 보충한 이후에 知府의 자리가 생기면 우선 보용하기로 바뀌었습니다. 19년 5월 7일, 상주하여 그날로 다음과 같은 유지를 받았습니다.
논의한 대로 하라.
앞서 19년 2월 21일, 幫辦吉林邊務琿春副都統 恩의 지시를 받아 琿春行營의 發審 사무를 겸하여 처리하게 되었습니다. 19년 10월 19일 督辦吉林邊務將軍 長이 상주하여 知府同知銜을 지닌 補用同知·候選知縣 王昌熾가 일 처리에 근면하고 재간이 있으므로 知縣으로서 吉林에 남겨두어 補用하게 해달라고 주청하였습니다. 올해 11월 24일, 다음과 같은 硃批를 받았습니다.
요청한 바에 따르고, 吏部에 알리도록 하라.
(이상과 같은 내용을) 모두 통보받은 바 있습니다. 지금은 현재 업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이상입니다.
첨부내용:三代의 내역은 曾祖父(照), 祖父(世定), 父(能亨)입니다.
 
程國鈞은 올해 48세로 安嶶嶶州府 歙縣 사람입니다. 俊秀주 004
각주 004)
학위(출신)가 없는 한족 관리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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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서 同治 7년 京師銅局에 捐納을 하였고, 閏4월 14일 戶部에서 증명서를 받았는데, 程國鈞은 監生주 005
각주 005)
국자감에서 학업을 닦는 모든 학생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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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 捐未入流를 부가하는 것이 허용되어 홀수·짝수 달을 불문하고 指項典史로서 福建에 보내 試用하도록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8년 5월, 前福建巡撫 周의 지시를 받고 甘肅으로 兵餉을 운송하는 업무를 맡아 陝西軍需局에 가서 납부하였습니다. 9년 정월, 前督辦西征糧台·侍講學士 袁의 명을 받아 甘肅으로 가서 秦州甘捐糧捐局을 개설하는 사무를 처리하였습니다. 13년 정월, 인수인계를 하고, 捐輸冊報를 운송하였습니다. 곧 陝西로 돌아가 임무를 완결하고, 더불어 甘肅捐納二十四次에 다시 捐納을 추가하였습니다. 12월 16일, 戶部의 증명서를 받았는데 典史 程國鈞을 府經歷으로 하고 吏部에 귀속시켰다가 선용한다는 것이 허용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前督辦西征糧台內閤部堂 袁의 명을 받아 湖北 江漢關에서 보내는 協餉을 甘肅安西州 正白旗漢軍都統 金에게 운송하는 임무를 맡아, 大營에 軍餉을 인도한 다음, 군영에 남아 업무를 맡고, (都統을) 수행하여 烏魯木齊의 各城 出口를 탈환하였습니다. 前幫辦新疆軍務 伊犁將軍 金이 관련 사안을 모아 상후하면서 추천을 하였는데, 광서 4년 2월 4일, 다음과 같은 내용의 상유를 받았습니다.
候選府經歷 程國鈞은 本班에 따른 선발을 면제해 주고 知縣으로 홀수·짝수 달을 불문하고 省에 파견하여 자리가 생기면 우선 임용하며, 상으로 同知銜을 부가하라. 해당 부서에 알리라.
8년 關外가 평온해지자 부모를 뵈러 가기 위한 휴가를 신청하였습니다. 幫辦新疆軍務 伊犁將軍 金이 軍營을 벗어나는 것을 재가하였으며, 이상의 모든 사항들에 관해 통보를 받았고 증명서도 모두 남아 있습니다. 14년 11월, 琿春에 투신하였습니다. 15년 3월, 幫辦吉林邊務 陞任黑龍江將軍 依의 자문에 따라 督辦吉林邊務將軍 長이 靖邊前路隨同辦事委員으로 보충하였습니다. 9월, 幫辦吉林邊務 琿春副都統 恩의 지시를 받아 行營發審 업무에 충당되었고, 아울러 黑項子의 조선 백성의 越墾과 관련된 사무를 명백하게 조사하는 업무를 맡았습니다. 16년 6월, 督辦吉林邊務將軍 長과 幫辦吉林邊務 琿春副都統 恩이 함께 지시를 내려 和龍峪韓民越墾事宜 會辦에 충원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前路委員과 行營發審 등 각 업무는 후임자에게 인계하였습니다. 7월에 부임하여 越墾과 관련된 업무를 담당하였습니다.
17년 6월, 越墾 관련 사무가 완료되자 商局署理 王昌熾가 지도와 관련 장부를 휴대하여 省城으로 향하였고, 幫辦吉林邊務琿春副都統 恩이 저로 하여금 吉·朝通商總局의 關防을 대신 맡도록 하였습니다. 8월 1일 이 업무를 다시 인계하고, 9월 琿春으로 돌아와 임무를 완결하였습니다. 幫辦吉林邊務琿春副都統 恩이 行營文案處의 額外會辦으로 충원하고 아울러 發審을 겸하도록 하였습니다. 18년 3월, 行營營務處 會辦으로 자리를 옮기고 또한 여전히 發審을 겸하였습니다. 지금 현재 업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첨부내용:三代의 내역은 曾祖父(北祚), 祖父(其蔭), 父(元焜)입니다.
 
培源은 올해 35세로, 京城鑲黃旗滿洲富康佐領下의 荊州駐防鑲黃旗滿洲寶崑佐領下 사람입니다. 광서 8년 伊犁 軍營에 투신하였습니다. 10년 12월 15일, 幫辦新疆軍務大臣 伊犁將軍 金이 伊犁를 탈환하고 여러 해 동안 숨어 있는 도적 떼를 토벌하는데 진력한 인원을 포상하는 사안에서 상주하여 六品藍翎을 내려 주도록 추천하였습니다. 광서 11년 2월 1일, 군기대신이 다음과 같은 내용의 유지를 받았습니다.
요청한 바에 따라 포상하도록 하라.
그 해에 (소속) 旗로 돌아가 과거에 응시하기 위해 휴가를 청하였습니다. 湖北學政 高에 의해 文生員으로 뽑혔습니다. 광서 13년 吉林邊防에 투신하였고, 幫辦吉林邊務事宜 琿春副都統 依의 지시로 行營文案處隨同辦事委員의 업무에 충당되었습니다. 15년 연말에 포상으로 五品頂戴가 주어졌습니다. 16년 新海防例에 의거하여 戶部에 捐納하고 筆帖式으로 補用되었습니다. 11월, 捐納을 통해 貢生주 006
각주 006)
시험을 거쳐 경사의 국자감에서 독서를 하게 된 生員을 가리킨다. 生員은 童試를 거쳐 府州縣學에서 학습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게 된 가장 낮은 학위(功名)의 소유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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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補授되었습니다. 이전에 黑龍江 부대에서 산야를 수색하며 비적의 잔당을 토벌하는 사무에 진력한 인원을 포상하는 사안에서 그 해 8월 14일, 鎭守黑龍江將軍依가 상주하여 자리가 생기면 이후 知縣으로 선용하도록 추천하였습니다. 12월 8일, 吏部가 논의하여 허가하고 상주하였는데, 그 날 다음과 같은 유지를 받았습니다.
논의한 대로 하라.
11월 幫辦吉林邊務 琿春副都統 恩의 지시를 받아 行營文案處會辦 임무에 충당되었습니다. 17년 2월, 재차 幫辦吉林邊務 琿春副都統 恩의 지시를 받아 和龍峪등에 越墾 토지의 측량 사무를 겸하여 처리하게 되었습니다. 18년 9월, 督辦吉林邊務將軍 長과 幫辦吉林邊務 琿春副都統 恩이 5년간의 邊防 사무에서 진력하였으므로 상주하여 知縣으로 補用한 다음 直隷州 知州로서 가장 앞서 補用하도록 추천하였습니다. 19년 5월 16일, 總理海軍事務衙門과 吏部가 함께 검토하고 논의하여 覆奏하였고, 吏部에서 논의하여 筆帖式 직무에 補用하였다가 離任하기를 기다려 知縣班에 귀속시켜 자리를 기다리다가 이후 直隷州 知州로서 우선 補用하기로 바꾸었습니다. 19년 5월 7일 이부에서 상주를 하였고, 그 날로 다음과 같은 유지를 받았습니다.
논의한 대로 시행하라.
이러한 지시를 받고 발급받은 증명서는 모두 보관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현재 업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이상입니다.
첨부내용:三代의 내역은 曾祖父(富昌), 祖父(玉芳), 父(興陞)입니다.
 
炳宣은 올해 37세로, 京城鑲白旗滿洲瑞林佐領下의 荊州駐防鑲白旗滿洲聯陞佐領下 사람입니다. 광서 6년 歲試를 치르고 湖北學政 臧에 의해 童生주 007
각주 007)
생원 자격을 취득하기 이전의 학생을 말한다. 동생은 시험을 거쳐 합격한 다음에야 府州縣學에 다니는 생원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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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 뽑혔습니다. 어릴 때 繙譯을 공부하였기 때문에 청원서를 올려 繙譯鄕試에 응시하게 해줄 것을 요청하였습니다. 前荊州將軍 景이 기존 사례를 원용하여 禮部에 자문을 보냈는데, 7년 4월 8일 禮部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의 답장 자문을 보냈습니다.
童生 炳宣이 繙譯鄕試에 응시하도록 바꿔줄 것을 요청하였던 부분은 奏定章程과 서로 부합하므로 繙譯에 응시하도록 바꾸는 것을 허가합니다.
15년 6월, 吉林에 투신하였습니다. 幫辦吉林邊務 琿春副都統 恩이 지시를 내려 邊務文案處差遣委員에 충당하여 임무를 맡게 되었습니다. 그 해 12월, 幫辦吉林邊務將軍 長과 幫辦吉林邊務琿春副都統 恩에 의해 五品頂戴의 상을 지급받았습니다. 17년 2월, 幫辦吉林邊務事宜琿春副都統 恩이 지시를 내려 和龍峪越墾淸丈委員으로 충당하였습니다. 4월에는 新海防例에 따라 直隷捐局에 捐納하여 筆帖式으로 보충되었으며, 이미 증명서를 수령하였습니다. 18년 9월, 幫辦吉林邊務將軍 長과 幫辦吉林邊務 琿春副都統 恩이 5년간의 邊防 사무 처리에서 진력한 인원을 포상하기 위해 상주하여 추천하였습니다. 總理海軍事務衙門과 吏部에서 함께 검토하여 選缺 이후 知縣으로 홀수·짝수 달을 불문하고 자리가 생기면 가장 우선 선용하도록 허용을 받았습니다. 19년 5월 7일, 상주가 이루어져 그날 다음과 같은 유지를 받았습니다.
논의한 대로 하라.
이상과 같은 통지를 받았고 발급한 증명서가 모두 남아 있습니다. 이상입니다.
첨부내용:三代의 내역은 曾祖父(志善), 祖父(添貴), 父(松成)입니다.
 
鄭維周는 올해 40세로, 浙江 杭州府 錢塘縣 사람입니다. 俊秀로 광서 17년 정월 天津 賑捐局에서 捐納으로 監生과 縣丞의 職銜을 더하여 얻었고, 올해 4월 증명서를 수령하였습니다. 앞서 광서 15년, 吉林邊防에 투신하였고, 幫辦吉林邊務琿春副都統 恩의 지시를 받아 行營文案處隨同辦事委員으로 충당되었습니다. 17년, 명을 받아 越墾 문서 처리를 전담하였습니다. 9월, 5년 간의 邊界業務 처리에 진력한 인원을 포상하는 사안에서 재차 督幫辦吉林邊務將軍 長과 혼춘부도통 恩이 상주하여 추천하였습니다. 19년 5월 16일, 總理海軍事務衙門이 吏部와 함께 覆奏하여, 吏部에서 縣丞으로 홀수·짝수 달을 불문하고 자리가 생기면 가장 우선하여 선용하기로 재가를 받았습니다. 19년 5월 7일, 상주하여 그 날 다음과 같은 유지를 받았습니다.
논의한 대로 시행하라.
그 해 7월, 海防新例에 따라 山東捐局의 第二十六次請獎당시 補交三班을 연납하여 省에 파견되어 試用되는 자격을 얻었습니다. 9월 증명서를 수령하였으며, 지금까지 모든 통보를 받았고 증명서도 보관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현재 업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이상입니다.
첨부내용:三代의 내역은 曾祖父(奎), 祖父(烺), 父(錫祺)입니다.
 
吉林將軍衙門印務處의 管檔堂主事 凌雲은 올해 58세로, 吉林烏槍營 漢軍鑲黃旗勝安佐領下 사람입니다. 監生으로 戶司貼寫에 筆帖式으로 충당되었습니다. 同治 5년 12월, 銀庫 筆帖式의 자리에 발탁되었고, 이와 관련하여 吏部로 자문이 보내졌습니다. 6년 4월 10일, 吏部에서 통솔하여 황상께 引見하였고, 欽派王大臣의 점검을 통과하였습니다. 11일 覆奏하여 다음과 같은 유지를 받았습니다.
補授하라.
13년에 拉林倉官玉山의 副官으로 선발되어 吏部에 자문이 보내졌습니다. 7월 6일 吏部에서 통솔하여 引見하였고, 다음과 같은 유지를 받았습니다.
이름을 기록하라(記名).
이 해 10월 10일, 吉林倉官에 補授되었습니다. 임무를 맡은 이후 윤달까지 포함하여 광서 4년 9월 10일까지 4년 임기가 만료되어 前例에 따라 吏部에 자문이 보내져, 銀庫筆帖式 원임으로 돌아가 승진을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5년 5월 20일, 吏部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의 답장 자문을 보내왔습니다.
例에 따라 小京官冊에 편입시켜 두었다가, 京師에 각종 小京官 자리가 생길 때를 기다렸다가, 짝수 달에 귀속시켜 승진시키도록 하겠습니다. 응당 자리가 많이 밀려 있어 선발을 기다릴 수 없다면, 前例를 원용하여 순서가 되면 本處의 文職으로의 승진하는 것을 자원할 수 있습니다.
당시의 사정에 근거하여 자문으로 보고하였더니, 이후 吏部가 다음과 같은 답장 자문을 보냈습니다.
本處에 主事總站官 자리가 났으니, 살펴서 승진시켜 임용하십시오.
광서 9년 2월 10일, 管檔堂主事 慶和의 副官으로 吏部가 통솔하여 1차례 引見을 하였습니다. 13년 도안 오랫동안 吉林에서 各路의 馬賊을 토벌하는데 진력한 인원을 포상하는 사안에서 前吉林將軍 希가 종합적인 보고를 하면서 상주하여 추천하였습니다. 13년 12월 9일, 다음과 같은 유지를 받았습니다.
本省主事로서 자리가 나면 가장 먼저 補用하도록 하라.
16년 3월 26일, 吏部에서 통솔하여 引見하였습니다. 다음과 같은 유지를 받았습니다.
前例에 비추어 임용하라.
19년 11월 17일, 吉林將軍衙門 印務處管檔堂主事 자리에 補授하겠다고 상주가 이루어졌고, 곧이어 吏部에서 유지를 받들어 재차 논의하여 검토한 결과와 輪用班次가 서로 부합하여 補授를 허가받게 되었습니다. 광서 20년 정월 14일 覆奏하여 다음과 같은 유지를 받았습니다.
논의한 대로 시행하라.
이상입니다.
첨부내용:三代의 내역은 曾祖父(李成玉), 祖父(李英), 父(李永山)입니다.
 
吉林滿洲正紅旗 補用佐領으로 先換頂戴防禦인 塔爾幹은 올해 48세인 陳滿洲주 008
각주 008)
아마 여진족(女眞族)의 직계 후손으로 구성된 만주족(滿洲族)을 가리키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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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俸餉을 받으면서 32년 동안 근무하였습니다. 兵司邊務承辦處에 충당되어 披甲貼寫로 7년, 領催額委筆帖式委章京으로 12년, 署理赫爾蘇站筆帖式으로 3년, 驍騎校로 10년, 防禦로 4년을 일하였습니다. 同治 5년 무렵 辦理吉林軍務將軍 富를 수행하여 吉林 소속지역에서 賊兵을 1차례 토벌하였고, 6차례의 전투를 거쳤으며, 匪賊 3명을 죽이고 2명을 사로잡았습니다. 8년, 잔여 비적을 수색하고 체포하는데 진력한 인원을 포상하는 사안에서 辦理吉林軍務將軍 富에 의해 七品頂戴를 수여하자고 奏請되었습니다. 광서 2년에는 驍騎校 春德의 副官으로 함께 引見을 하였고, 다음과 같은 유지를 받았습니다.
이름을 기록하라.
8년에, 本期驍騎校에 補授되었습니다. 12년에는 邊務承辦處에서 交涉事件을 처리하는데 진력한 인원을 포상하는 사안에서 欽命將軍侯 希에 의해 五品頂戴로 바꿔 장려하는 것이 주청되었습니다. 17년 11월, 琿春鑲藍旗 防禦로 발탁되자 鑲藍旗에서 통솔하여 引見하였고, 다음과 같은 유지를 받았습니다.
塔爾幹의 選用을 재가한다.
18년, 琿春에서 吉林滿洲正紅旗의 防禦 자리로 옮겼습니다. 올해 9월, 邊務와 군대 훈련 업무 처리에 공로가 뚜렷하였고, 이미 5년의 임기도 만료되었는데 사무를 처리하는데 진력했으므로 督幫辦吉林邊務事宜將軍 長과 혼춘부도통 恩이 상주하여 추천하였고, 다음과 같은 주비를 받았습니다.
해당 아문에서 논의하여 상주하라.
19년 5월 7일, 總理衙門·海軍事務衙門과 吏部·兵部가 함께 覆奏하였고, 다음과 같은 유지를 받았습니다.
塔爾幹을 佐領으로 補用하되, 먼저 頂戴를 바꾸어 주는 것을 재가한다.
13년 정월 15일, 加一級의 恩詔를 삼가 받았습니다. 15년 2월 3일, 加一級의 恩詔를 다시 받았습니다. 그 해 3월 16일, 또다시 加一級의 恩詔를 받았습니다. 16년 3월 22일, 다시 加一級의 恩詔를 받았습니다. 이와 같이 4급이 더해졌고 防禦로 승진하였기 때문에 전례에 따라 (加四級이) 紀錄 4차로 바뀌었습니다. 20년 8월 16일, 加一級의 恩詔를 받았습니다. 임기 내에 결코 降職·革職·罰俸 등의 사안이 없었습니다. 현재까지 모두 加一級에 紀錄 4차의 표창을 받았습니다.
첨부내용:三代의 내역은 曾祖父(忠全保), 祖父(和成保), 父(巴隆阿)입니다.
 
何樹漢은 올해 33세로, 湖北 漢陽府 漢陽縣 사람입니다. 俊秀로 광서 14년 奉天練軍行營 文案에 투신하였고, 충당된 업무에 진력하여 欽差大臣辦理東三省練兵事宜 定의 추천으로 六品頂戴를 받았습니다. 15년, 軍餉을 吉林으로 護送했고, 邊防 관련 사무에 진력하여 督辦吉林邊務將軍 長의 추천으로 五品頂戴로 바꿔 받았습니다. 16년, 琿春電報局에서 山東의 재해 구제를 위한 捐納(賑捐)을 대신 처리할 때, 例에 따라 捐納하고 監生에 府經歷 직함을 더해 받았습니다. 17년 10월 2일, 증명서를 받아 수령하였습니다. 곧 이후 督理吉林·朝鮮通商總局兼辦越墾事宜 葉이 보고하여 幫辦吉林邊務琿春副都統 恩의 지시로 越墾 관련 문서처리 업무에 충당되었습니다. 17년, 越墾 사무가 종료되자 재차 幫辦吉林邊務 琿春副都統 恩의 지시를 받아 邊務行營文案差遣委員으로 충당되었습니다. 지금은 현재 업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이상입니다.
첨부내용:三代의 내역은 曾祖父(應龍), 祖父(開玉), 父(希遜)입니다.
 
唐書勳은 올해 32세로, 山東 登州府 甯海州 사람입니다. 童生으로 광서 14년 吉林靖邊右路統領의 營務處文案 업무에 투신하였고, 靖邊右路統領 保의 보고로 七品頂戴를 포상으로 내려 줄 것을 요청되었습니다. 16년 3월, 督理吉林·朝鮮商務總局兼越墾事宜 葉의 명을 받아 墾務文案司事로 충당되었고, 아울러 토지측량 지시공문 등의 사무를 관장하였습니다. 17년 10월, 琿春電報局에서 山東의 재해 구제를 위한 捐納을 대신 처리할 때에, 前例에 따라 捐納을 하여 監生에 府經歷의 銜을 더하여 얻었습니다. 올해 10월 2일, 監生과 (府經歷) 직무에 대한 두 가지 증명서를 수령하였습니다. 18년, 督理和龍峪兼撫墾民事宜 田에 의해 督幫辦吉林邊務事宜將軍 長과 혼춘부도통 恩에게 五品頂戴를 내려 주도록 보고를 올려 요청하였고, 또한 내부적으로 포상 사실을 기록하였으며, 이와 관련된 통보와 증명서는 모두 보관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현재 업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이상입니다.
첨부내용:첨부내용:三代의 내역은 曾祖父(永冀), 祖父(化初), 父(字鈞)입니다.
 
高甫麟은 올해 45세로, 湖北 武昌府 江夏縣 사람입니다. 童生으로 광서 15년 琿春에 투신하였습니다. 幫辦吉林邊務琿春副都統 恩에 의해 黑頂子에서 越墾 토지측량 사무를 처리하도록 奏派되었는데 업무에 진력하여 督幫辦吉林邊務事宜將軍 長과 혼춘부도통 恩에 의해 포상으로 六品頂戴로 바뀌었습니다. 16년, 督理吉林·朝鮮商務總局兼辦越墾事宜 葉이 보고를 올려 督幫辦吉林邊務事宜將軍 長과 혼춘부도통 恩이 通商總局越墾委員으로 충당하고 越墾관련 문서를 함께 관장하도록 하였습니다. 그 해 10월, 琿春電報局에서 山東의 재해 구제를 위한 捐納을 대신 처리할 때에, 前例에 따라 捐納하여 監生에 縣丞의 職銜을 더하여 얻었습니다. 17년 10월 2일, 監生과 (府經歷) 직무에 대한 두 가지 증명서를 수령하였습니다. 그 해 11월 11일, 또한 通商總局稅務司事로 충당되었습니다. 곧 이후 署理吉林·朝鮮商務總局兼越墾事宜 王이 稟을 올려 專辦越墾冊籍委員으로 충당되었고, 여전히 문서 관리를 겸하도록 하였습니다. (이와 관련되어) 모든 통보를 받았고 수령한 증명서는 모두 보관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현재 업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이상입니다.
첨부내용:三代의 내역은 曾祖父(國珍), 祖父(本謨), 父(益恒)입니다.
 
葉含芳은 올해 53세로 湖北 武昌府 大治縣 사람입니다. 俊秀로 광서 14년 吉林에 투신하여 吉勝營字識에 충당되었습니다. 15년, 幫辦吉林邊務琿春副都統 恩의 명을 받아 黑頂子 屯墾營의 辦事官으로 파견되었고, 아울러 黑頂子 越墾 토지측량의 差使도 수행하였습니다. 16년, 督理吉林·朝鮮通商總局兼越墾事宜 葉의 명을 받아 通商總局局事로 파견되었습니다. 10월, 또한 재차 명을 받아 越墾核算委員으로 임명되었습니다. 17년, 越墾 사무가 종료되자 琿春으로 되돌아왔고, 幫辦吉林邊務琿春副都統 恩의 지시를 받아 文案處辦事官에 충당되었습니다. 현재는 업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이상입니다.
첨부내용:三代의 내역은 曾祖父(胄張), 祖父(林桂), 父(方盛)입니다.

  • 각주 001)
    청대 각 아문에 배치된 하급 문관으로, 만주어로 문서를 처리하는 사람이란 뜻이다. 바로가기
  • 각주 002)
    청대 주방팔기의 무직 관원으로 종3품의 직위이다. 바로가기
  • 각주 003)
    정8품으로 府의 經歷司를 맡는 관직. 바로가기
  • 각주 004)
    학위(출신)가 없는 한족 관리를 가리킨다. 바로가기
  • 각주 005)
    국자감에서 학업을 닦는 모든 학생을 가리킨다. 바로가기
  • 각주 006)
    시험을 거쳐 경사의 국자감에서 독서를 하게 된 生員을 가리킨다. 生員은 童試를 거쳐 府州縣學에서 학습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게 된 가장 낮은 학위(功名)의 소유자이다. 바로가기
  • 각주 007)
    생원 자격을 취득하기 이전의 학생을 말한다. 동생은 시험을 거쳐 합격한 다음에야 府州縣學에 다니는 생원이 될 수 있다. 바로가기
  • 각주 008)
    아마 여진족(女眞族)의 직계 후손으로 구성된 만주족(滿洲族)을 가리키는 것 같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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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越墾) 조선 백성을 안삽(安揷)하고 토지 측량에 힘쓴 사람들을 포상하는 일에 관한 길림장군(吉林將軍)의 문서 자료번호 : cj.k_0001_0040_0020_01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