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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국(俄國)이 월경(越境) 조선인을 추방하지 않고 조선도 송환 의사가 없다는 길림장군(吉林將軍)의 문서

러시아는 월경 조선인을 쫓아낼 생각이 없고, 조선 관원 역시 구실을 빌어 책임을 미루고 송환해가려 하지 않습니다(俄國不願逐回逃俄韓人, 韓官亦藉故推諉, 不欲領取).
  • 발신자
    吉林將軍 富明阿
  • 수신자
    總理衙門
  • 날짜
    1870년 9월 4일 (음)(同治九年九月初四日) , 1870년 9월 28일 (同治九年九月初四日)
  • 문서번호
    1-2-4-03(100, 127a-130b)
첨부문서주 001
각주 001) 첨부문서
원문에는 첨부문서의 표기가 되어 있지 않으나, 실제 첨부문서가 2건 있으므로 여기에 추가하였다. 하지만 (1)은 정상적인 咨文인데, (2)는 공문서의 형식에서 약간 어긋난 점이 있지만, 禮部의 비밀상주와 吉林將軍의 답장 咨文으로 구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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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4일에 吉林將軍 富明阿가 (다음과 같은) 글을 보냈습니다.
살펴보건대, 올해 3월 5일에 다음과 같은 禮部의 咨文을 받았습니다.
主客司에서 다음과 같은 기안문서를 올렸습니다.
禮部에서 조선국왕의 자문 원문을 초록해 同治 9년 2월 24일에 대신 상주하였는데, 오늘 軍機處가 附片을 돌려보냈습니다. 이와 더불어 軍機大臣은 다음과 같은 유지를 받았습니다.
알았다.
이에 마땅히 조선국왕의 원문과 예부의 원 상주문을 초록해 吉林將軍에 알려야 할 것입니다.
별지: 조선국왕의 답장 咨文
 

(1) 조선국왕의 답장 咨文

조선국왕이 답장 咨文을 보냅니다.
同治 8년 11월 22일, 禮部의 咨文을 받았습니다.
생략. 主客司에서 다음과 같은 기안문서를 올렸습니다.
禮部에서는 “조선 백성이 몰래 러시아로 넘어가니, 마땅히 조선국왕으로 하여금 禁令을 펼치고 변경관원이 그들을 모두 데려가도록 해, 다시는 월경하지 않게 함으로써, 강역을 분명히 하고 변경의 방비를 엄중히 하도록 지시해야 합니다”라는 내용의 비밀상주 2건을 올렸는데, 이에 대해 咨文을 보내서 그에 따르게 하라는 상유를 받은 바 있습니다.
 
(이상과 같은 禮部의 咨文을 받았으므로 조선국왕은) 禮部 咨文의 내용을 하나하나 받아들이고자 합니다. 그런데 삼가 생각건대 조선의 북쪽 지역은 淸國의 경계와 맞닿아 있고, 단지 琿春河를 사이에 두고 있어 정말로 가까운 데다가, 황막한 변방의 빈곤한 백성들도 樂生安業하면서 수백 년 동안 편안히 아무 일이 없었으니, 天朝에서 감싸주신 크나큰 은혜 덕분이 아니라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러시아인이 점거하여 초소를 설치한 이래, 무릇 변경 상황에 항시 우려가 있게 되었고, 결국 비적이 틈을 엿보는 것을 막지 못하고 백성의 고통을 품어주지 못하여, 그들이 몰래 월경하여 넘어간 데다가, 이미 그 수가 많고, 소요와 문제를 일으킬 우려가 아주 커졌습니다. 이번 변경에 관한 상주문은 매우 자세한데, 실제 모두 직접 눈으로 확인한 것입니다. 반복하여 上諭로 깨우쳐주시면서 황상의 속뜻을 보여주시니, 직무를 다하지 못한 藩屛으로서 부끄러운데도, 우러러 더할 나위 없는 배려를 내려주신 것에 대해, 황송해하며 송축하는 마음에 어찌 끝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생각건대 이들 변경 백성의 범월 문제는 실로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까닭 때문만은 아니며, 요역을 도피한 경우도 있고 이익에 꾀여 빠져 들어간 경우도 있는데, 기회를 엿보아 도망간 사람이 순식간에 千百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올해 10월 10일, 咸鏡道觀察使 李興敏이 다음과 같이 급히 狀啓를 올렸습니다.
慶興府使 李鼎鎬가 다음과 같이 보고하였습니다.
阿吾鎭 거민 19戶가 온 집안 가솔을 이끌고 총포를 약탈하여 일제히 월경하여 도주하였습니다.
 
해당 지역은 올해 수확에 불행히도 큰 흉년이 들었습니다. 官에서 진휼하였는데, 비록 때를 맞추지는 못하였다고는 하나, 저렇게 많은 백성이 일제히 도주한 것은 모두 변경 담당 관원이 직무를 다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바야흐로 사정을 조사하여 엄격히 징벌할 예정입니다. 다만 琿春協領이 목격했다고 하는 러시아 경내로 유입한 남녀노소는, 아마도 바로 이번에 도주한 사람들일 것입니다. 巖杵河棘心河 등지의 천여 명으로 추산되는 사람들은 모두 이렇게 점차적으로 유입된 무리일 것입니다. 방범을 느슨히 하여 놓친 것은 한스럽지만, 앞으로는 힘써 더욱 엄밀하게 막도록 하겠습니다. 그렇지만 도망가버린 백성들을 찾아내는 것 또한 쉽지 않은 일이었을 텐데, 어찌나 다행인지 황상께서 깊이 꿰뚫어보시고 깊고 넓게 걱정해 주셔서, 일어나기 전에 말썽을 없애 주시고, 미연에 근심을 막아 주셨습니다. 특히 변경관원에게 지시하여, 러시아 관원과 함께 상의하여, 월경한 백성들을 모두 돌려보내어 조선의 변경관원이 모두 거두어들이도록 해 주시면서, 아울러 장차 聖旨를 삼가 준수하고 신속하게 받들도록 하셨습니다.
이 때문에 海邦은 지금부터 걱정이 없을 터이고, 邊政 역시 더욱 엄밀해질 것인데, 감히 번거로움을 두려워하여 간청하지 않아도 곡진한 은혜를 입게 되었으니, 감격함이 그지없고, 황공함이 이를 데 없습니다. 삼가 마땅히 북쪽 일대의 변경관원에게 지시하여, 백성이 모두 돌려보내지기를 기다려 하나하나 거두어들이고, 다시 변경의 금령을 펼쳐 과거의 잘못을 다시 따르는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번거롭더라도 예부에서 이러한 사정을 황상께 전달해 주신다면 천만 다행이겠습니다.
이에 마땅히 咨文을 보내어 회답하니, 청컨대 참고해주십시오.
별지: 禮部의 비밀상주와 吉林將軍의 답장 咨文.
 

(2) 禮部의 비밀상주와 吉林將軍의 답장 咨文

예부가 咨文을 받아 대신 상주하는 일로, 삼가 비밀상주를 올립니다.
盛京禮部에서 조선국왕의 咨文 1건을 보내왔습니다. 臣等이 함께 검토해 보니, 조선 백성이 잇달아 러시아 경내로 도망가는 일에 관한 것이었는데, 작년 臣部에서 이에 대해 상주하였고, 삼가 유지를 받들어 조선국왕에게 다음과 같이 咨文을 보낸 바 있습니다.
러시아 경내로 도망간 백성들에 대하여, 조선의 변경관원에게 지시하여 모두 거두어들이도록 하고, 아울러 조선국왕은 禁令을 다시 펼침으로써 변경 방어를 신중히 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 이에 대한 조선국왕의 다음과 같은 답장 咨文을 받았습니다.
삼가 聖旨를 따르고 天恩에 감격하여, 곧바로 변경관원에게 지시하여, 러시아에서 백성을 돌려보내기를 기다려 하나하나 거두어들이도록 하였으며, 다시금 변경의 禁令을 펼치도록 하겠습니다.
(조선국왕이 이상과 같은) 咨文을 보내어 대신 상주해 줄 것을 요청해 왔습니다. 삼가 원 咨文을 초록하여 올리니 살펴봐 주십시오.
이에 삼가 비밀상주를 올리는 바입니다.
이와 같은 咨文과 첨부분서가 咨文으로 吉林將軍에게 전달되었습니다.주 002
각주 002)
앞서 지적한 공문의 형식에 어긋나는 부분이 여기서 시작된다. 이하의 내용은 吉林將軍의 답장 咨文이다. 바로 앞은 禮部 비밀상주인데, 보통 이것을 받았다고 하여 인용하면서, 답장을 뒤에 붙이는데 여기서는 그런 형식이 갖추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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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吉林將軍衙門에서는 琿春協領 訥穆錦에게 다음과 같이 지시한 바 있습니다.
越境한 조선 백성이 모두 쫓겨나 조선에서 남김없이 데리고 갔는지, 수시로 조사해서 사실에 근거해 보고함으로써 상부에 보고할 수 있게 하라.
곧이어 5월 6일 琿春協領 訥穆錦의 다음과 같은 보고를 받았습니다.
저는 지시를 받자마자 곧 직접 연해의 摩闊崴로 가서, 러시아 界務官과 만나 조선 월경민을 모두 쫓아내도록 완곡하게 설득하였습니다. 그러나 러시아 측 해당 관원은 다음과 같이 답하였습니다.
러시아는 이들을 끌어들여 머물게 할 생각이 없지만, 초소를 설치하여 막으려 해도, 이들이 몰래 틈을 타 들어오는 수가 너무 많아, 이루다 쫓아낼 수 없습니다. 그래서 봄에 날씨가 풀리면 綏芬 일대로 옮겨 일을 맡기려 하는데, 아마 양국 변경에는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다시 지시를 받았으므로, 다시 二道河 초소의 관원으로 領催인 藍翎 祥太 등에게 다음과 같이 지시하였습니다.
越境 朝鮮人들을 쫓아냈는지 아닌지, 조선의 변경관원이 이들을 남김없이 모두 데리고 갔는지, 분명히 조사해 사실에 근거해서 보고하라.
이 지시를 받은 祥太 등이 다음과 같이 보고를 해왔습니다.
지시를 받아 연해 지역으로 가서 조선 월경민의 거동 등을 몰래 탐문하였습니다. 러시아인은 다음과 같이 공언하였습니다.
연해 일대에 모인 朝鮮人들에게 러시아에서 평소에 식량을 제공하였으므로, 만약 귀국시키려 한다면, 반드시 거기에 들어간 비용을 변상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朝鮮의 변경관원이 이들을 한 명이라도 데리고 가는 것은 본적이 없으며, 지금도 여전히 러시아로 공공연히 들어가는 남녀노소가 있는데, 러시아인들은 젊은이들은 배로 다른 곳으로 실어 나르고 노약자들은 육로를 통해 綏芬 일대로 보내 安置시키고 있습니다.
이상과 같은 내용을 해당 協領이 전달해 왔습니다. 吉林將軍이 살펴보건대, 해당 協領에게 三國 邊境에 관련된 중대사를 맡겼음에도 불구하고, 겨우 虛銜만 가진 초소 관원에게 근처에 가서 탐문하라고 지시하고, 또한 황당무계한 소리만 듣고 온 것을 그대로 보고할 뿐이었는데, 이런 태도는 실로 경중을 모르는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하여 5월 9일에 해당 協領에게 다시 다음과 같이 지시를 내렸습니다.
이전에 지시한 일은 즉시 반드시 자신이 직접 兩國 변경지역으로 가서 朝鮮의 변경관원 및 러시아 界務官을 만나 설득하고, 상황에 따라 처리하라. 러시아에서 어떻게 월경민을 쫓아낼지, 朝鮮이 어떻게 그들을 받아들일지 적절히 계획하고, 사실대로 보고함으로써 상사에게 보고를 올릴 수 있도록 하라.
이에 8월 14일에 해당 協領 訥穆錦의 다음과 같은 보고를 받았습니다.
저는 지시에 따라 즉시 병사를 거느리고 朝鮮 慶源府 변경관원을 만나려 했는데, 어찌 알았겠습니까? 그 변경관원은 백성을 구휼하기 위해 慶興海津 등 지역에 가버렸던 것입니다. 저는 돌아가서 1개월을 기다렸는데, 7월 5일에야 해당 변경관원이 비로소 돌아왔습니다. 이에 저는 병사를 거느리고 직접 가서 해당 변경관원과 만나, “당신이 러시아에서 수용하고 있는 조선의 남녀노소를 모두 데리고 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해당 변경관원은 통역을 통해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습니다.
러시아에 의해 유인 당한 朝鮮의 남녀노소를 조선에서 되돌려 받아오고자 해도, 러시아에서 아직 승인을 해주지 않고 있습니다. 또 그들은 慶源府 한 곳만의 사람이 아닌 데다가, 아직 국왕의 유지를 받들지 못했기 때문에, 가까운 시일 내에는 사실 제가 감히 데려올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에 제가 병사를 거느리고 摩闊崴로 가서 界務官을 직접 만나, 월경민을 쫓아내 朝鮮 측에서 데려가도록 요청한 이전의 문서를 다시 언급하였는데, 界務官은 통역을 통해 다음과 같이 답하였습니다.
러시아에서 끌어들인 朝鮮의 남녀노소는 이전에 러시아 동시베리아 총독에게 받은 지시에 따라, 모두 綏芬 등지로 보내 경작에 종사하게 하였으니, 거기 소모된 비용을 변상해야 할 것입니다.
이에 제가 다시 그에게 완곡하게 다그치자, 界務官은 다음과 같이 답하였습니다.
내가 결코 이 일을 주관할 수 없습니다. 또한 北京 주재 러시아 공사가 이 사정을 이미 조선국왕에게 전달하였습니다. 이후 당신네 琿春에서 상관할 일이 아닙니다.
이리하여 저는 다시 그를 설득하면서 알려주었습니다.
琿春朝鮮과 겨우 한 줄기 강을 사이에 두고 있으면서, 가까운 이웃 국가(와의 경계를) 지키는 지역입니다. 당신네 나라에서 마땅히 和約에 따라 朝鮮에서 달아난 남녀노소를 모두 돌려보내야만 화평의 도리에 부합할 것입니다.
재삼 설득했지만 해당 界務官은 계속 월경민을 돌려보내려 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저는 7월 20일에 병사를 거느리고 돌아오면서 雲騎尉 吉爾洪阿摩闊崴에 몰래 남겨두어, 러시아 측 관원이 朝鮮의 남녀 및 자녀들을 어느 곳으로 보내는지 등의 상황을 탐문하여 신속히 보고하도록 하였습니다.
나중에 吉爾洪阿의 다음과 같은 보고를 받았습니다.
러시아 계무관이 朝鮮의 남녀노소를 21일에 모두 綏芬 등지로 옮겼습니다.
 
이상과 같은 내용을 해당 協領이 전달해 왔습니다. 생각건대, 일전에 禮部가 초록해 보낸 조선국왕의 답장 咨文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었습니다.
이미 북쪽 변경관원에게 지시하여, 러시아에서 백성들을 돌려보내기를 공손히 기다렸다가 일일이 받아들이게 한 뒤, 다시 변경 금령을 펼치도록 하겠습니다.
지금 이미 琿春協領이 해당 慶源府 변경관원과 만났는데, 어찌 알았겠습니까? 해당 관원은 “국왕의 유지를 아직 받지 못했으므로, 가까운 시일 내에 감히 데리고 올 수 없습니다”는 식의 말로 대답하였습니다. 실로 앞의 글과 뒤의 말이 서로 맞지 않습니다. 또한 “조선에서 데려 가려고 해도 러시아가 아직 승인하지 않으며, 慶源府 한 곳의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라는 식의 이야기는, 조선국왕이 이미 북쪽 변경관원에게 지시한 것을 감안했을 때, 어찌 그 글이 각지에 일률적으로 시행되지 않아 같은 府의 사람만 있는 게 아니니 데려올 수 없다는 반응이 나올 수 있다는 말입니까? 그 말투의 당돌함을 생각했을 때, 그 뜻이 도대체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러시아 界務官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러시아에서 끌어들인 朝鮮의 남녀노소는 이전에 러시아 동시베리아 총독에게 받은 지시에 따라, 모두 綏芬 등지로 보내 경작에 종사하게 하였으니, 거기 소모된 비용을 변상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쪽에서) 다그치자 해당 관원은 (다음과 같이) 답하였습니다.
내가 결코 이 일을 주관할 수 없습니다. 또한 北京 주재 러시아 공사가 이 사정을 이미 조선국왕에게 전달하였습니다. 이후 당신네 琿春에서 상관할 일이 아닙니다. 결코 돌려보낼 수 없습니다.
해당 계무관의 말 전부를 상세히 검토해보면, 경작에 들어간 비용을 朝鮮에 알렸는지, 진위 여부를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兩國이 서로 책임을 전가하는 모습을 보면서, 각자가 서로 결정을 할 수 없다고 하니, 정말로 그 의도를 파악할 수 없습니다. 이 사안이 변경의 이웃나라와 관계되어 서로 뒤엉키면서 아직 결말이 나지 않고 있으므로, 마땅히 사실에 근거해 밝힘으로써 검토해서 처리할 수 있게 해야 할 것이며, 마땅히 사실대로 서둘러 총리아문에 보고해야 할 것이니, 삼가 검토해서 처리해주십시오.

  • 각주 001)
    첨부문서원문에는 첨부문서의 표기가 되어 있지 않으나, 실제 첨부문서가 2건 있으므로 여기에 추가하였다. 하지만 (1)은 정상적인 咨文인데, (2)는 공문서의 형식에서 약간 어긋난 점이 있지만, 禮部의 비밀상주와 吉林將軍의 답장 咨文으로 구성되어 있다. 바로가기
  • 각주 002)
    앞서 지적한 공문의 형식에 어긋나는 부분이 여기서 시작된다. 이하의 내용은 吉林將軍의 답장 咨文이다. 바로 앞은 禮部 비밀상주인데, 보통 이것을 받았다고 하여 인용하면서, 답장을 뒤에 붙이는데 여기서는 그런 형식이 갖추어지지 않았다. 바로가기

색인어
이름
富明阿, 李興敏, 李鼎鎬, 訥穆錦, 訥穆錦, 祥太, 祥太, 訥穆錦, 吉爾洪阿, 吉爾洪阿
지명
러시아, 조선, 淸國, 琿春河, 러시아, 巖杵河, 棘心河, 조선, 러시아, 러시아, 조선, 러시아, 조선, 摩闊崴, 러시아, 러시아, 綏芬, 二道河, 조선, 러시아, 朝鮮, 러시아, 綏芬, 朝鮮, 러시아, 朝鮮, 慶興, 海津, 러시아, 조선, 러시아, 朝鮮, 조선, 러시아, 慶源府, 摩闊崴, 朝鮮, 러시아, 朝鮮, 綏芬, 琿春, 琿春, 朝鮮, 朝鮮, 摩闊崴, 러시아, 朝鮮, 朝鮮, 綏芬, 러시아, 조선, 러시아, 慶源府, 러시아, 朝鮮, 綏芬, 琿春, 朝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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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국(俄國)이 월경(越境) 조선인을 추방하지 않고 조선도 송환 의사가 없다는 길림장군(吉林將軍)의 문서 자료번호 : cj.k_0001_0020_0040_0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