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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고대문화유산

강서대묘

江西大墓
  • 저필자
    이규호(동국대학교)
  • 시대
    고구려
  • 위치
  • 관련자료
  • 원소장처
    평안남도 남포특급시 강서구역 삼묘리
  • 시대
    고구려
  • 유형
    무덤
입지
평안남도 남포특급시 강서구역 삼묘리에 위치해 있다. 삼묘리 소재지 마을 앞의 두 줄로 배치된 세 무덤 가운데 남쪽 앞줄에 홀로 조성된 무덤이다. 무덤 북쪽으로 무학산이 보인다.
유적개관
옛 지명에 따라 우현리대묘로 불리다가 해방 후 강서대묘, 강서큰무덤으로 불리게 되었다. 강서대묘 벽화에 대한 본격적인 조사는 1912년 세키노타다시[關野 貞]에 의해 이루어졌다. 당시 벽화모사 작업도 이루어졌는데, 모사도 대부분이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무덤의 방향은 남향이며, 연도와 현실로 이루어진 단실묘이다. 진흙과 석회를 다져 만든 방대형봉토는 지름이 51m, 높이가 9m이다. 커다란 화강암 판석을 석실 축조재료로 사용하였다. 연도는 길이 3m, 너비 1.8m, 높이 1.7m이며, 현실은 길이 3.18m, 너비 3.15m, 높이 3.5m이다. 현실 입구에 두 짝의 문을 달았던 것으로 보이며, 현실 바닥에 두 개의 커다란 판석을 깔고 그 위에 동서로 나란히 두 개의 돌관대를 설치하였다. 현실의 천장 구조는 2단의 평행고임 위에 2단의 삼각고임을 얹은 평행삼각고임이다. 사신을 주제로 한 무덤의 벽화는 돌벽 위에 그대로 그렸다. 천정부위에는 인동 연꽃무늬와 산과 나무, 비천, 기악천, 상서로운 짐승과 선인 등이 그려져 있고, 중앙 천장에는 황룡이 그려져 있다. 강서대묘는 벽화의 표현 기법에서 최고의 수준이며, 무덤 축조기술 또한 뛰어나 6세기 말 축조된 것으로 보이며, 평원왕의 능일 가능성이 있다.
참고문헌
「조선유적유물도감」6-고구려편4, 1990
「북한의 문화재와 문화유적」2, 2000
해설
삼묘리 소재지 마을 앞의 두 줄로 배치된 세 무덤 가운데 남쪽 앞줄에 홀로 조성된 무덤이다. 고분은 넓은 평야지대 중앙에 있으며 좌우로 무학산과 오석산, 남쪽에 정림산, 북쪽에 인덕산으로 둘러 쌓여있다. 대묘(1호분)이 가장 큰 무덤이고, 중묘(2호분)는 대묘의 서북쪽에, 소묘(3호분)은 대묘의 동북쪽에 있다.
옛 지명에 따라 우현리 대묘로 불리다가 해방 후 강서대묘, 강서 큰무덤으로 불리게 되었다. 강서대묘 벽화에 대한 본격적인 조사는 1912년 세키노 타다시[關野貞]에 의해 이루어졌다. 당시 벽화모사 작업도 이루어졌는데, 모사도 대부분이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대묘는 너비 56.1m, 높이 9.6m이다. 널길[연도(羨道)]와 널방[현실(玄室)]로 이루어진 단칸 구조의 석실봉토벽화분이다. 널길[연도(羨道)]는 길이 3m, 너비 1.8m, 높이 1.7m 이며 평천장이다. 널방[현실(玄室)]은 방형으로 남벽 중앙에서 널길[연도(羨道)]로 이어진다. 한 변 3.15m의 방형이고, 높이는 3.5m, 천장은 평행고임천장이다. 널방[현실(玄室)] 바닥은 널길[연도(羨道)] 바닥보다 15cm 정도 낮은데, 거기에 관대를 설치하였다. 관대는 두 개인데 동쪽은 길이 248cm, 너비 102cm이고 서쪽은 길이 248cm, 너비 103cm이며 높이는 47cm이다.
벽화의 주제는 사신도가 주를 이룬다. 벽화는 회칠 없이 벽 위에 직접 그렸는데, 사방의 벽에는 방위에 맞추어 사신이 그려졌고 천장에는 환상세계를 표현하면서 중앙의 막음돌에는 황룡을 그렸다. 강서대묘는 벽화의 표현 기법에서 최고의 수준이며, 무덤 축조기술 또한 뛰어나 6세기 말 축조된 것으로 보이며, 평원왕(平原王)의 능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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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서대묘 자료번호 : isea.d_0002_0040_0020_0060_0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