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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산업유산, 왜곡의 현장과 은폐된 진실

김한수

일본으로 간다. 그런 얘기를 안 해 주더라구요
김한수 | 1944년 미쓰비시 나가사키조선소로 강제동원 | 2006.2.17. 구술
김한수 씨는 1918년 황해도 연백군 연안읍에서 출생했습니다. 외아들은 징용 가지 않는다고 해서 연백 전매지청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1944년 8월 26일에 징용통지를 받았습니다. 180명 정도가 연안역에서 부산을 거쳐 미쓰비시 나가사키조선소로 연행되었습니다. 처음 수용된 숙소는 사치기숙사라는 조잡한 목조건물로 중앙에 통로가 있고 양 옆으로 자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훈련 뒤 2km 정도 떨어진 미쓰비시의 후쿠다 기숙사로 옮겨졌습니다.
 
아침 6시에 기상해 밤 10시에 취침했습니다. 구리 공장에서 철관에 모래를 넣고 망치로 굳힌 뒤 가스불로 가열해 구부리는 작업을 했습니다. 업무 중에 왼쪽 발가락이 골절되었는데 병원 의사는 요오드팅크를 발라주고는 공장으로 돌려보냈습니다. 아연도금공장으로 가게 된 후 지하 가마에서 석탄을 때는 일을 했습니다. 철야가 반복되는 직장이었습니다. 월급은 용돈 정도만 지급되었고 남은 돈은 고향의 가족에게 송금한다고 했지만 나중에 고향에 돌아와 확인해보니 지급되지 않았습니다. 식사는 콩기름에 쌀을 조금 넣고 지은 밥과 고구마 덩굴을 삶은 국으로 주었는데 배가 무척 고팠습니다. 매일 고향의 부모님과 가족을 생각하며 살아서 꼭 만날 것을 다짐하며 살아갔습니다.
 
8월 9일, 공습사이렌이 울리고 갑자기 새파란 빛이 창문으로 번쩍 비치고 몸이 떠올랐다가 뚝 떨어졌습니다. 철판이 부딪히는 소리,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얼굴에 화상을 입어 말을 할 수 없어 손을 잡고 울기만 하는 사람, 입이 찢어져 대나무를 입에 물려 미음을 먹이던 고향 사람의 모습은 지금도 잊히지 않습니다. 귀국하게 되어 10월 28일 아침, 부산에 도착했습니다.
 
『내 몸에 새겨진 8월, 히로시마,나가사키 강제동원 피해자의 원폭체험』, 일제강점하강제동원진상규명위원회, 2008, 318~349쪽
 
 
김한수(金漢洙)_남. 92세.
 
  • 일자
  • 내용
  • 1918.12.22.
  • 황해도 연백군 연안읍 모정리에서 출생.
  • 1944.7.
  • 일본 나가사키현(長崎縣) 소재 미쓰비시(三菱)중공업 나가사키(長崎)조선소로 동원됨.
  • 1945.10.
  • 해방 후 귀국.



일제시대 때 강제징용된 이야기며, 당시 상황 좀 여쭤보도록 하겠습니다.


예. 나 뭐든지 다 물어보세요. 철저히 아주 알고 있습니다.


징용 갈 당시에 살고 계셨던 곳은 평택이 아니신 것 같네요?


이북입니다. 황해도 연백입니다. 연백군 해성면.


여기서 태어나시기도 한 건가요?


출생지는 거기가 아니구요, 연안읍 모정리입니다. 일곱살 때 그짝(그쪽)으로.


부모님, 형제분과 다 같이 생활하고 계셨구요?


예. 그 고향에는 친척들이 많이 있지요. 연안읍 그짝으로는 친척들이 많이 있습니다. 거기[해성면] 간 원인이, 제가 독잔데… 독자는 징용을 안 뽑아간다고 해서. 그래서 우선 그 전매청에 들어갔었던 거예요.


전매청에 다니셨어요?


소금 만드는 연백전매지국이라고 지금 되어 있고, 그때는 일정시대는 연백전매지청으로 되어 있었어요.


거기에서는 징용을 안가도 된다고 그래가지고?


안 간다고 그래서. 이제 말하자면 일종에 공무원이겠지요? 그래서 안 간다고 갔었는데 제일 먼저 끌려갔었죠.


전매 공무원이 되셨다는 것은, 당시에 황해도에서 학교를 다니셨나 봐요?


학교는, 국민학교 4학년 댕겼습니다. 그때에 우린 국민학교가 아니고 소학교였었죠. 호남 공립보통학교, 호남 ‘코오리쓰후쓰갓꼬(公立普通學校)’라고 그랬죠. 그 당시에는 4학년이 졸업반이었구, 6학년은 연안읍에 가야 6학년이 있었어요.


그 학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취직을 하셨어요?


아닙니다. 그 학교는 열네 살에 졸업했고. 그리고 그 호남인데 거기서 계속 농사짓고 있었죠.


형제분들이 어떻게 된다고 그러셨죠?


제 위에 형 하나뿐입니다. 하나뿐인데, 그 분 양자간 분이야요. 그래서 제가 독신이 된 거죠.


여자형제분들은 없으시구요?


제 위로 누님이 세 분 계시고, 아래로 여동생이 하나 있죠.


그리고 농사를 짓고 계실 때는?


농사짓고 있을 때는 여동생 하나하고 저 있었구. 누님들은 다 출가했어요. 그 당시에도 인제 선만척식주식회사, 그 농장이 일본사람의 농장이었었죠. 선만척식주식회사(鮮滿拓植株式會社)라고. 일본농장에 땅을 빌려가지고 농사를 짓고 있었어요. 첫 번에는 그것이 어떻게 됐냐하면은, 6·4제로 되어 있었거든요. 농사짓는 사람이 6을 먹고 일본놈이 4를 가진다고 했었더랬는데, 그 이후로는 3·7제로 되어버렸어요. 우리가 3을 먹고 걔들이 7을 가져갔어.


더 많이 가져가네요?


그래 뭐. 얘기가 되지 않을 정도죠. 힘들었죠. 거반 다 주다시피 했죠. 그것도 당시에는 뭐 하도 농사지을 사람이 많으니깐. 어떻게든 먹고살아야 되니깐요. 그러게 그것도 성적이 불량하면 띠어부렸어. 인제 계약을 안 하고 ‘야 너 인제 그만두고 딴 사람한테…’


그렇게 어렵게 농사를 짓고 계시다가, 전매청에 취직하신게 몇 살 때였어요?


고때가 인제 열아홉 살. 그러니께 그게 무슨 염물하게 되면, 제일 그 노동의 말단입니다. 그게. 소금 내는데 거기. 한국 사람은 염만이라고 그래. 걔들이 하대받는 아주 제일 말단급 국민이었죠.


염만이라고 그랬어요?


그걸 연안말로 염만이라고 그랬습니다.


제일 밑의 일부터 시작하신 거네요?


비가 오면 밤중에라도 염만이는 나가야 되고. 비에 물이 섞이면은 안 되니께. 소금물에 비가 섞이게 되면 염도가 떨어지잖아요? 그러니께 비를 맞아가면서 두 전부다 웅뎅이에 반대로 집어넣구서 막아야 돼요. 그 일을 하느라구. 소는 집안으로 들어내고, 염만이는 바깥으로 내쫓는다고 해서 아주 말단층이었죠.


‘소는 집안으로 들여놓고 염만이는 바깥으로 내보낸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에요?


예. 제일 하단이었죠.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이런 말씀을 드려야할지 모르겠습니다만은, 제가 여섯 살, 일곱 살까지 기억이 상당히 생생해요. 당시에 제 아버님이 독립군 정보계통, 말할테면 연락병 비슷한거죠? 그런거를 하셨어요. 근데 전 그게 뭔지를 몰랐고, 전혀 저한테 말씀을 해주시지 않았고. 다만 필요할 때 저를 이용하셨던 것만은… 지금 기억나는 것이, 여름에 그물을 가지고서 물 푸는 조그만한 세숫대야 같은 거 그거 하나하고, 손으로다 이렇게 메는 그물 있죠?


예. 저도 해봤는데.


그걸 가지고 ‘야! 오늘 고기 잡으러 가자’ 그랬어요. 그래 그물을 제가 메고 아부지는 그 양재기 들고 가셨어요. 근데 얼마를 갔었는데, ‘겐뻬이(憲兵)’ 라는 일본놈들, 헌병 있잖아요? 그놈이 앞에서 오더니 딱 이렇게 바라보더니 ‘서라’ 그래요. 일본말로 ‘도마레!(멈춰!)’ 그랬던 모양이죠. 아버님이 잠자코 서있으니깐 갑자기 그 자식들 칼 요만한 거 여 차고 다니는 거 있죠? 권총도 차고댕기고. 그거 가지고서 그냥, [아버지가] 상투 틀으셨으니깐 그 칼 가지고 상투인데를 확 띠었지. 찔러요. 그니껜 아버님이 비명을 지르더니 ‘윽!’ 그러시더라고요. 난 칼로다 진짜 찔렀는지 알고 붙들고 막 울었어요. 그니께 그냥 그것만 [상투만] 떨졌지, 피도 안 나고 아무렇지도 않더라고. 벌벌벌 떨면서 그랬는데… 그러더니 이게 칼도 흔들흔들 허더라고요. 그러더니 그 자식이 손을 집어넣더니 주머니인데 다 주물러 봐요. 그 뭔지도 몰랐어요. 왜 그러는건지. 뭐 잘못한 것도 없는데. 그러더니 고개를 갸웃갸웃 하더니 전부다 뒤지더라구요. 고개를 갸웃하더니 ‘가라’ 그래요. 저는 뭐 뒤지지도 않고 그냥 있고.
그래 가서 거 냇가에, 조금만 내들이 있는데 [아버지가] 거기 앉으시더니 담배를 한 대 피시고서, 그물을 달라고 그러시더라고요. 그래 그물을 드렸더니, 사방을 둘레둘레 보시더니 그 자루가 나무 두 개에다 그물 이렇게 메잖아요? 손잡이 있는데 이 끄트머리가 흠집이 났는데 거기를 송곳으로 딱 뚫는기야. 내중에(나중에) 제가 알았어요, 뭔지를. 거기서 이렇게 조금한 꼬챙이로다 딸가닥딸가닥 그러는데 마개 같은게 뽑아져 나오더라구요. 근데 거기에 백로지, 문창호지 있지요? 거기다 세로줄로다 무슨 글씨 같은 거 쓴 거. 낄다란게 요만한게 나오더라구요. 그걸 가지고서 ‘너 여기 조금만 있어라’ 그러더니 가셨는데, 어딜 가셨는지 전 모르죠. 그냥 거기만 앉아있다가, 갔다오신 다음에 고기 조금 잡아가지구서 오셨고. 인제 같이 집에 가자고 그랬는데. 그 후로 저는 그게 뭔지를 몰랐고, 다만 “아부지 근데 그 사람[헌병]이 왜 아부지한테 그랬어?” 그러니께는 “아니 그냥 별일 아닌거야” 그러시구는 아무말 안 하시더라구요. 가끔 가다가 그런데 가거나, 저런 논 같은데 곡갱이나 이런거 들고 가자면 들고 가지만, 꼭 그와 같은 비슷한 현상이 일어나요. 뭘 거기다 빼가지고 가시고선 얼마 있다가 오시고.
내중에 제가 나이가 철들어서 열아홉 살, 그 당시에 비로소 아부지한테 그 말씀을 드려봤죠. “아부지, 전에 그게 뭐였었던가요?” 그랬더니 “너 그거 알라고 할 필요없어. 그거 다 소용없는 거이다. 이미 그거 뭐 아무 소용 없고” 그런께, 아부지 사촌이 왜정말년에 한국정부 당시에 그 뭐야 포도청, 포도청 있죠? 포도청에 아마 일을 했던 모양이더군요. 그분이 독립군 김구선생님 아래에서 일보는데 그 사람들이 근께 활동을 하려니 돈이 없으니깐, 한국에서 자금을 조달해야 되면은 어디어디를 가 가지고 얼마를 걷어야 되는데, 고거야. 그 쪽지가 뭐냐고 하면은, 거기에 연락하는 내용관계가 여러 가지 방법이…. 인제 그분은 혹간에 나타나셔서 잠깐 얘기만 하고는 어디로 가뿌리고 몰랐거든요. 내중에 알고 보니께, 그 분 밑에 아버님이 연락을 하시고 그걸 책임을 지고 계셨더군요.


그러세요.


그래서 그때부터 인제 열아홉 살에 거기 내려가서부터도 일본놈이 곱게 안 보이는 거예요. 마음에. 아버지가 상대의 적이었다면 나도 적이 아니냐. 어린 생각에도 아주 그 상투에[헌병이 칼로 막 휘졌던] 그 막 욱하던 생각이 기냥 지워지지가 않아요.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기억하시는 것 같네요.


그렇죠. 아주 그래요. 그래도 갔었는데… 저도 결혼 해 가지고 아들 하나를 낳았었거든요.


전매청 다닐 때요?


거기 들어가서 아들 하나를, 거기서 첫아들 낳아서. 제가 2대 독잔데 부모님이 참 귀엽게 여기고 그랬었는데. 그깐 뭐 어디 꼼짝이라도 하게 합니까? 어디로 오라 그래서 갔더니, 그냥 연안읍 역으로다.


징용장이 나온 거예요?


그렇죠. 그 징용장 뭐, 그냥 연락만 하는 거예요. 오라구요.


전매청 다니면 징용 나올 일은 그다지 없는데, 진짜로 징용이 온 거네요?


그러니께 걔들이 끌어가는 것은 정식 공무원이라는게 아니에요. 우린 정식 공무원이 아니구, 제일 말단급에서 일허는 두더지 같은 인간들이죠. 소금 져나르고 밤에 나가서 물 잡고, 또 소금내고 물 퍼 올리고 이러는 말단직인거죠. 그런데 뭐 오라니께 가 가지고서, 사흘인가 시간이 있었던 걸로 기억이 돼요.


연안읍에서요?


아니에요. 오라고 그러면서 떠나는 날인께, 그 사람들이 어디 간다는 말은 안 하고. 며칠 있다가 어디 간다는 것만 알지, 일본 가느니 이런 얘기는 아무 것도 안 하고. 다만 연안읍에 간다고 그러는 거예요. 그래서 그 전에도 연안읍에 가끔 가 가지고서 나무 같은 것을 운반해다가 실어온 적이 있고, 돌 같은 거 이런 일을 한 적이 있거든요. 그런께 아, 그런 관곈가보다 하구 암말도 안 했었죠.
그런데 사람이 참 이상한 것이, 예감이라는 것이 자꾸 이상하게 들더라고요. 그래서 이상하다 있었는데, 그날은 정말 연안읍에 간다고 그러는 거예요. 그래서 인제 갔는데, 연안읍에서 그 시간이… 해성면에서 출발한 사람이 한 7~8명 정도 되는 걸로 아는데.


혹시 그 중에서는 친하게 지낸 사람은 없었구요?


같은 또래가 사무실에서 내근 보던 사람이 한 사람 거기 있었고 나머진… . 송주혁이라고, 그 사람이 한국 나와가지고 여기 와서 죽었지만서두요.


나머지는 잘 모르는 분이셨어요?


아는 사람들 더러 있죠. 근데 그 사람들 다 죽었어요.


이름은 기억나세요?


이재호가 있죠. 그리고 이성근이라고 있고. 그런께 송주혁, 이성근, 이재호, 저하고 해서 네 사람이 전매청 내에서 차출된 사람들이에요.
각주 )
위원회에 신고된 피해자 중 전매청 연백지점에서 동원된 위 김한수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다. 그의 진술에 의하면 당시 연백지점에서 동원된 사람은 이재도(진술인의 형), 김한수, 송주엽 이라고 한다.
닫기
강제 차출된 사람들이었죠. 그러고 면에서도 여러 사람이 왔지만, 그 사람들은 우리가 얼굴을 잘 모르죠. 거기 연안읍 집결소에 데리고 가서 딱 모아놓구서 보니깐, 그게 인제 거기서 온 사람들인 줄 알았죠.


해성면에서 온 사람이라는 걸?


예. “당신 어디서 왔냐” 고 물어본께, 전부다 연백군에서 와가지고 거기다 모여 놨더라구요. 모여 놓고 거기서부터는 헌병이 드문드문 보초를 서더라구요. 거기서 인제 인솔반장을, 한국사람 인솔반장을 뽑는 거예요. 뽑구서, 상당한 시간이 여유가 있더라고요. 인제 도착허지 못한 사람땜에 그 기다리고 있었는지, 그걸 모르겠어요.


사람들이 연백군 여기저기에서 모이기 시작했겠네요?


그렇죠. 연백군에서는 그 연안 철도역, 연안읍 철도역이니께 전부 거기다 모아 놓았으리라고 대충 추측이 가고 있지요.


그 숫자가 어느 정도 될까요?


제가 당시에 봤을 때는 한 이백여명 정도 되지 않았나, 이렇게 보고 있어요. 그 정도 되지 않았나 봅니다. 그래 인제 거기서 출발하기까지에 우리만 싣고 온 게 아니고, 거기에서 내근하는 사람들도 같이 따라 왔어요, 거꺼정. 우리들 떠나보내고 자기들이 가기 위해서, 그 사람들이 왔더라구요. 한 사람인가 두 사람인가 왔어요. 직위는 말단급이래도 그 사람들은 안에 있었으니께, 내근에 있었던 사람이니깐 잘 모르고. 송주혁이라는 그 사람만은… 그 사람이 당시에 뭘 했었냐 하면은, 현장에 돈 같은 거 월급줄 때 돌아댕기면서 봉투 갖다주고서 들어가기 땜에 그 사람은 낯이 익어서 알았어요. 그리고 당시에 그 사람은 거기 가면서도 조금도 두려움도 없더군요. 나는 인제 상당히 고통스럽고 그런데. 이놈들이 인제 가보니깐 사람들이 많이 모였으니깐, 무슨 일을 시키려고 온 게 아니란게 직감으로 느끼게 되잖아요.


가족들 하고 변변히 인사도 못하고?


모르니깐요. 무슨 일하라 그러는 줄 알고, 의복도 그냥 작업복대로 입었던대로 그냥 그대로죠. 뭐 가져오는 것도 아무 것도 없구.


보따리고 뭐고 아무 것도 없고?


예. 아무 것도 없죠. 그냥요. 그래가지고 내중에 거기 떠나갈 때 같이 왔던 사람보고, 나 이런 건 줄 몰랐다고 말이지. 그러구선 인제 집에 가면 연락 좀 해달라고 그러구. [이렇게] 가면은 편지 같은 거 뭐 이런 것두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그런데 그때 꺼정도 어디로 간다는 말은 당연 안 해줘요. 일본으로 간다, 그런 얘기를 안 해주더라구요.


어르신은 일본말을 아셨으니깐, 얘기하면 금방 알아들었을 것 아녜요?


그렇죠. 일본말 잘 했지요. 그런께 얘기를 안 하더라구요. 물어봐도 아직 결정되지 않았으니깐 조금만 있어라, 조금만 있어라, 자꾸 끌기만 하지 말을 허지 않더라구요. 그 사람들 가고 얼마 있으니께 기차에 타라, 그래 가지고 거기서 탄 거죠. 타고서 인제 부산에 도착했더니.


그때가 언제쯤이었나요?


그때가 별로 춥진 않았어요. 제가 볼 때는 초봄이나, 지금 보게 되면은 4월이나 5월 정도 되지 않았나 그런 생각이 드네요.


추위는 다 가시고 따뜻해질 무렵이었네요?


예. 그걸 왜 느끼냐 하면은, 부산 가서 옷을 아주 홀랑 다 벗기더라구요. 홀랑 벗겨가지고서 바구니에다 전부다 담으라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거기다 담아놨는데. 저는 인제 색깔 옷하고 흰 옷하고 섞어서 입고 갔거든요. 근데 인솔해가지고 빨가벗은 놈들보고 데리고 나와서 저쪽에 갖다 세워놓고선, 여기서 너희들 옷 넣은 바구니가 나올테니깐 각자 자기껄 찾아서 입으라고 그러더라구요. 그 인제 보니깐 바구니 안에서 계속 이렇게 나왔는데, 제 이름 쓴 바구니를 찾아서 보니깐 그냥 뒤죽박죽 되가지고선 흰 데가 꺼먼 물도 묻구 그냥 엉망진창이야.
왜 그러나했더니 거기에다 증기로 막 쪘더라고요? 기냥. 찌니껜 물감이 그냥 물 들어간거야. 다 막 엉망진창된거야, 옷이 그냥. 속이 상해가지고 그대로 입고선, 거기서 뭐 틀리면 욕지거리해도 그 새끼 대꾸도 안 해요. [징용]가는 사람들 우리는 많고, 저희는 지키는 놈들은 몇 명 안 돼죠. 무기는 가지고 있어도. 그런데 다 젊은 혈기들 아닙니까? 그럼 걔들한테 뭐 욕질 막 해도 별 관여하지 않더라구요. 근께 그놈들 생각에는 니들이 배만 올라가봐라 그런 생각인 것 같아요. 배만 오르면 요놈들 꼼짝 못하지. 그럼요. 배에서 인수인계 딱 끝나면은 일본놈들이 데려가구, 여기서 그 한 사람들은 아마 도로 또 가는 모양이더라구요.
그래 인제 끌려가고 말았죠. 가서는 중간에서 싸이렌이 한참 울리더니, 요새지라고 그래가지구선 이 ‘우끼부끄로(浮袋:구명의)’라고 있죠? 그걸 다 입으라고 그러더라고요. 입구선 전부다 이 ‘간빤(甲板)’위에 전부다 올라와서, 쭉 다 누워있으라고 그러더라구요. 이 새끼들이 뭘 할려 그러나 그랬더니, 죽일라고 했으면 구명의를 입으라고 그럴리는 없는데 왜 그러나 그랬더니. 거기가 이렇게 ‘교라이(機雷)’라고 호박같이 이렇게 생겼는데 뿔이 삐죽삐죽 나온 거, 그 받히면 터지는 거. 그거이 아마 미군들이 바다로 많이 흘려내려 보낸 모양이에요. 그것땜에 속도를 늦춰가지고 찬찬히 가는데, 보니깐 역시 그게 떠있는 거예요. 보이는 게 있어요. 그러니깐 긴 나무를 갖다가 접근하지 못하도록 살살, 그걸 피해가면서 가더라구요. 그니께 얼마 가니껜 그쪽부턴 다 자기자리로 들어가라 그러는데, 그 구간이 지나간 모양이에요. 하관서 내려가지고 거기서 또 인제, 그 하관인지 뭔지도 내중에 다 들은 얘기지만. 내려가지고 기차를 타고서 갔는데.


연백군에서 갔던 이백여명이 다 같이?


다 고대로. 다 실려가는 거예요. 그런데 거기 말이죠, 결혼 안 한 사람들이 거반 다 많구, 결혼한 사람들은 그다지 많지 않았는데. 그런데 하나도 사람들이 걱정하는 기색이 안 보여요. 사람들이 다 아무 걱정들도 않고, 그저 그냥 장난하고 농담하구. 이 새끼들 어디로 데려가는건지. 배 타고부터 가 가지고서도 생전 처음이니깐, 거기가 일본 땅인지 뭔지도 모르는거야. 바깥으로 이렇게 내다보고 그러니께, 아무래도 한국 땅하고는 좀 느껴지는 거이 다르죠. 이게 아마 혹시 일본 아닌가? 부산서 하관까지가 얼만한 거리가 되고 그런 것도 모르고. 학교를 많이 댕겼으면 그런걸 알껀데, 국민핵교 댕긴 놈이 그런거 뭐 알기나 해요? 일이나 했지. 뭐 아나요? 모르죠.
내려가지고선 ‘료(寮:숙소)’라는 데를 갔는데, 아마 일곱시나 여덟시나. 밤 여덟시나 아홉시나 그 정도 됐을 거예요. 나무로다가 이렇게 지은 집인데, 한국에선 생전 그게 뭐 어떻게 생긴 집인지도 모르죠. 근께 가운데가 이렇게 길이 있구, 양쪽에가 이렇게 마루판을 쫘악 놓고. 한층 올라가니 여기도 또 마루판이 쫘악 있구. 그런데 다다미(疊)라고 있죠? 그걸 쭉 놨더군요. 그리고 저짝 머리맡 있는데는 조그만‘하꼬(箱:상자)’가 구녕 뚫어진 거이 쭉 있구. 그게 자는 데라, 그게.


이층짜리였어요?


한집인데, 이층으로 맨들어놨어요. 이층으로 올라갈래면 사다리를 타서 올라가게 했어요. 얕은 집인데 그렇게 해 놨더라고요. 그래 난 꼭 꿈을 꾸는 것 같은. 이게 뭐 어떻게 되는건지 영문을 모르는 거예요. 그래 인제 올라가서 자라 그러니께는, 그래도 그거이 잠이 오더라구요. 그래도 잠이 와요. 그래 자구서는 아침에 깨니께, 소대장이라고 그러는 일본놈이 이만한 긴 칼.


‘사벨(sabel:洋劍)’이라고 하죠. 긴 칼.


예. 그거를 차고서 ‘센또보(戰鬪帽)’쓰고서 이렇게 오더니, 그 인솔자 반장이 호각을 부는데 전부다 나가서 이렇게 선 다음에 다 옷을 입고서는 그 놈이 인솔해서 가더라구요.


일본인 소대장이 다들 인솔해서? 그럼 반장은 한국사람이었나요?


한국사람이었어요. 인솔해가지고 간 반장하구 거기에서 내려가지고선, 숙소에 들어가고부터는 또 반장이 바뀌더라구요. 반장을 거기선 다시 그놈들이 지목하더라고요, 해서 반장을 세우더라구요. 그래서 거기 일본 소대장이라고 칼 찬 놈이 데리구서 갔는데, 어디를 갔냐하면 지금 같으면 공원이야요. 공원. 거기 가 가지고선 인제 훈련하는 거예요. 뭐 그냥 뜀박질도 하고 이렇게 하는 그거, 체조 같은 거. 그렇게 하고선 인제 사상전환 시키는 것 같은 그런 얘기야요. 앉아서 자기가 군인 나가서 전투한 경력, 그거 얘기해주고 그런 거 전부 얘기하고 있어요. 근데 지금 기억나는 것이 아주 그 괘씸허게 생각되는 것이, 중국에서 자기가 시나전쟁, 지나사변(支那事變:중일전쟁) 당시에 중국에서 전투를 했던 모양이죠.


그 소대장이요?


근데 아마 어디가 불구가 되어가지고선, 제대가 된 모양인데. 근데 이 자식이 무슨 얘기를 하냐하면, 점령 당시에 중국에는 수수밭이 한 키 넘게끔 그런 데가 많대요. 근데 여자를 수수밭으로 데리고 가서 거기서 그 여자를 강간을 한대요. 강간을 하고선 인제 강간이 끝난 다음에 거기서 죽여버리는 거라고. 근데 무서운게 뭔지 그걸 몰라요, 저는 그 당시에도. 그 사람한테 그걸 따져서 얘기를 했어요. “니 나쁘지 않냐. 그 왜 여자하고 강간을 했으면말이지, 기분좋게 했으면 좋게 고맙다고, 그러고 살려서 보내줘야지 왜 죽이냐. 그렇게 사람을 막 죽여도 되냐” 그렇게 얘기를 했더니, 그놈이 허허 웃으면서 죽이지 않으면은 자기가 죽는다는 거예요. 그 “왜 그러나?”그랬더니, 그 여자가 나와가지고서 자기 부대에 가서 자기를 신고하게 되면은 자기는 즉석에서 총살당한대요. 그런께 자기가 죽지 않으려면 할 수 없이 그 여자를 죽여야 된대요. “그럼 다른 사람도 다 그렇게 하냐” 그러니께 물론 그렇대요. 그때 이제 가만 ‘야~ 이자식이 이런 얘기를 공공연하게 우리들한테 하는 이유가 뭘까? 뭔가 잘못하면 우리도 저 자식들이 죽이는 건가?’ 그런 생각도 들고. 거기서 일주일 동안을 돌아댕기면서 그놈 얘길 듣고, 그렇게 쉬게 하더라구요.


일주일 동안을요?


예. 일주일 딱 되니까 료가 바뀌었어요. 지금 여기 후꾸다료(福田寮)로다.


후쿠다료로?


예. 여기서 후꾸다료에는 한 15리, 6키로(km) 정도 돼요.


원래 있었던 ‘료’하고 6키로 떨어져 있었어요? 아니면 공장하고?


떨어졌어요. 여기가 후꾸다료고, 이거 산… 후꾸다무라(福田村)에 후꾸다료가 있었거든요. 여기에 공장이 여기 ‘도오꼬바(銅工場)’라고 동공장이 있었는데, 어디미가….


일주일 있다가 후꾸다료로 옮기신 거네요? 연백군에서 갔던 이백 명이 다?


예. 전부다. 지금의 북조선이지요, 북조선 사람들 전부 거기다. 북조선 사람들이 많았어요. 그런데 거기 가니께, 료가 상당히 지금 말하자면 깨끗하고 높이 지었더군요. 먼저 집은 아주 돼지우리 같았었는데. 더럽고.
구술자가 근무한 미쓰비시(三菱)중공업 나가사키(長崎)조선소를 기억을 더듬어 스케치한 모습.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당시 경험이 잊혀지지 않는 듯 주저없이 단숨에 작성하였다.


먼저 있었던데 료 이름은 기억나세요?


그것이 ‘사이와이료(幸寮)’에요.


사이와이료가 원래는 어디 있었던 거예요?


여기 군수공장이 어디가 있었는데… 이게 냉동 군수품 창고죠? 이게 미쓰보시(三菱:미쓰비시) 식당. 요거 무슨 식당있죠? 식당이고.


여기 아연 ‘멧끼코바(鍍金工場)’가 있고. 아연 멧끼코바, 이게 제 근무처에요.


여기가 근무하셨던 곳이세요?


예. 근데 요 쯤에 [사이와이료가] 있었어요.


‘사이와이료’에서‘후쿠다료’로 옮기신 거네요. 후쿠다료는 깨끗했다는 거 보니깐, 새로 지었던 모양이네요?


근데 아주 새 거는 아니고 한 번 썼던건데, 별로 오래지 않은 집이더군요. 가니깐 이불도 새로 주고. 근데 이불을 새로 줬는데, 아주 깨끗허고 기분이 좋았단 말이에요. 이불에 솜이 이런 솜이 아니고 볏짚하고, 푸대 같은걸 갖다가 막 비벼가지고 거기다 솜 대신 넣었더군요. 그래 며칠 덮다보니깐 그게 다 문틀문틀 [해지고], 다 껍데기만 남아요. 덮으나마나고 춥죠. 성질 못 된 놈들은 다 찢어서 내뿌리고, 그냥 제 헌옷들 입고서 덮고서 자는 놈들도 있구.
그러구서 거기서부터 매일 그 새로 뽑은 반장이 아침시간 되면은, 인제 ‘기상’ 그러기 땜에 일어나서 줄 서서 있다가 식사시간 되면은 식당으로 들어가라 그라면, 가서 밥 먹고. 다시 나와서 또 정렬하면은 그 반장이 데리고 나가는 거예요. 거기서 그 인솔자, 한국 반장이 [우리를] 데리고 미쓰보시 공장에 가면, 울타리가 있는데 거기 문이 하나 있어요. 그 문에서 인수인계가 되는 거예요. 명단 내주고 인원 딱 세서 보내고, 저(자기)는 다시 료로 가요. 반장은 도로 가고. 우린 거기서 이제 꼼짝 못하는 거죠. 맨 헌병들 돌아다니니까. 그 안에는 자기 직장으로 가서 자기 조장, ‘구미쪼(組長)’ 한테 가서 인사하구서 자기 할 일을 하는거죠. 그런데 나쁜 것이, 그 반장이라는 놈이… 돈 푼이나 있는 놈들 잽혀간 놈들은 자기 집에서 뭐 미숫가루나 또 아니면 엿을 고아서 소포로 부쳐와요.


부쳐와요?


예. 그럼 그걸 자꾸 [반장에게] 갖다주는 놈은, 조금 아프다고 그러면은 ‘너 쉬어라’ 그러거든. 무작정 쉬어주고. 또 돈 없어서 그런 걸 못 부쳐다가 ‘코 아래 진상’ 안한 놈은 뭐 개만도 못하고 그거는. 저 혼자 일대일 하게 되면 지게 되겠으니께, 불러가지고 사무실에. 반장 사무실에는 반장이 대여섯 명씩 있잖아요. 거기 데려다놓구선 두드려 패는 거예요. 그냥~ 같이. 그래 나는 그때 딱 한번 맞은 적이 [있어]. 해방되자마자 그놈을 찾으러 댕기는데 찾을 수가 없어 결국은 죽이지 못하고 나왔는데. 그 놈이 아직도 어딜 가면 살아있을지도 모르고. 이제는 뭐 하나님한테 모두 다 맡겼으니깐 용서했습니다만은….


아주 나쁜 반장이었나 봐요? 이름은 기억 안 나세요?


알죠. 가네미쓰. 아, 가네무라(金村). 김촌. 근데 거기에도 야스다(安田) ‘한쪼(班長)’라고.


안전(安田)이요?


예. 야스다. 안전반장이라고, 그 사람은 참 인간적이거든요.


이 사람도 한국사람이네요?


예. 근데 그 사람이 그 반장들 가운데는 제일 우두머리에요. 때리지도 않는데 상당히 신용을 얻어요. 그 사람은 자유스럽게 한국에 왔다 갔다 하면서, 징병[징용]모집 하는데 같이 댕기죠. 갔다 오고 그러더라고요. 그런데 그 사람이 없을 때, 이 자식들이 그렇게 못되게 하는 거라구요. 또 혹시 그 사람이[야스다 반장] 있을 적에는, 거 하더라도 그렇게 심히 때리지는 않고 말로 이렇허구 혼내구 그러는데, 그 사람이 없게 되면 그렇게 때리고. 저희들이 미움받으면은 우리 때리는 거죠. 그렇게 하구선 인제 공장에 가서 인수인계를 하게 되면, ‘구미쪼’를 따라서 공장에서 일을 하게 되는데. 첫 번에는 그 ‘도꼬바’라는 거 있죠?


도꼬바, 이게 뭐 하는 곳입니까?


‘도꼬바’ 라는 것이 구리동(銅)자구요. 동공장(銅工場). 동공장이라고 그러면 그 빠이프, 이렇게 된 큰 빠이프에다 모래를 잔뜩 집어넣어야 돼요. **뒤에를 묶어가지고 까꾸로 들면, 저기 이층에 올라가서 승강기가 모래를 퍼올라가면 모래를 거기다 집어넣는다구요. 그 양쪽에 마개를 나무로 깎아서 때려박아요. 단단히. 계속 몇 번씩 두드리면서 꽝꽝 친다구요. 그러면 인제 그걸 크레인으로 끌어갔다가 이런 발분, 이런 쇠가 두께가 이렇게 두꺼운데 구멍이 빵빵 뚫려있어요.
거기다 놓고선 거 삥을 딱딱 쪄어(끼워) 놓구선. 인제 그보다 더 큰 뚱그란 통을 이렇게 끼워 놓으면은, 그게 호스에 들어가서 가스불이 거기서 붙여서, 불이 그 안에 뱅뱅뱅 돌아요. 그러면 그 근처만 빨갛게 달잖아요. 달면은 그놈을 끌어다가 땅에다 놓구선 삥을. 예를 들면, 여기다 놓고 여기다 했다면 이놈을 이렇게 튼다고. 이렇게요. 꼬부리는 거예요.


그래서 여기다가[신고서에] 파이프 ‘마게야(曲屋)’라고 써주셨네요. 파이프를 ‘마게루(曲げる:굽히다)’하는 작업을 하셨네요?


예. 인제 그렇게 하고. ‘나미(波)빠이프’라고 하는 것은, 물결[파이프주름]이 인제 움틀움틀해도 되는 거. 또 ‘나미나시(波なし)’는 물결이 없이. 그거는 조금 꾸부리고서 또 굽고, 조금 꾸부리고 또 굽고. 주름이지만은 다시 펴서 해놓고 또 모래 채우고 또 꾸부리고 해서, 이게 그냥 비니루빠이프 같이 매끈하게 꼬부라지는 거. 이렇게 두 가지를 하는데, 그게 뭐냐 하면은 배 제일 밑탕에다 기름 돌아댕기고 물 돌아댕기는 그거거든요.


근데 파이프 속에 모래를 꽉 채우는 이유는 뭐예요?


그걸 그냥 꼬부리면은 이게 찌그러지죠.


그렇죠. 바깥쪽은 괜찮은데 안쪽이 팍 찌그러지죠?


네. 그러니께 모래알 넣게 되면, 그 압(압력) 땜에 그 안에서 버티고 있으니깐 안 찌그러지는 거야. 고대로 똥그랗게. 그래서 직경을 롤 수 같은 거로 전부다 이렇게 재고 이렇게 재서 똑같아야 돼요. 그게.


그래요?


거기 ‘구미쪼’가, 구마모도(熊本) ‘구미쪼’라고 그러는 사람인데. 대개 웬수 가운데도 사랑이 있고 또 악인 가운데도 선이 섞여 있다는데, 그 역시 똑같죠. 그렇게 나쁜 놈들 가운데도 또 진실성 있는 사람들도 많거든요. 거‘구미쪼’는 참 사람다운 사람이에요. 한국사람인줄 알고, 한국사람들이 징용 끌려왔다는 거 다 알고 있더라구요. 그러면서‘니들 얼마나 배가 고프냐?’ 그런 얘길 잘해요. 그러구선 가끔 자기들은 자기집에서 ‘벤또’를 가져오니깐, 혹시라도 먹다 남으면 ‘너 미안하지만 먹던 거라도 먹겠냐?’그래요. 아, 배고픈데 땅바닥에 떨어진 ‘미칸(밀감)’껍데기 그것도 다 씻어서 먹는 판인데, 참 감사하게 먹구….
그러구 전에 사이와이료(幸寮) 있을 때 그 료에, 사이와이료라면 요기가 인제 요렇게 높이가 거반 아홉자나 되는 높은 콘크리트 벽이 쳐 있어요. 그 뒤에가 미군 포로수용소라고.


포로수용소가 있었어요?


예. 근데 그 포로들은 아침 6시면 새벽에, 아침 8시면 전부 두 줄로 해가지고 헌병이 전부 데리고선 어디로 나가요. 나갔다가 밤늦게 되면은 도로 들어오구 그러더라고요. 그런데 인제 거기 있다가 후꾸다료로 갔었고, 후꾸다료에서 동공장으로 일하러 가면 구마모토 ‘구미쪼’신세를 졌었고….
그러다가[동공장에서 일하다가], 빠이프를 꼬부리다가 체인이 끊어졌어요. 체인. ‘쿠사리(체인)’그 와이어 있죠? 쿠사리 와이어, 그게 끊어져가지고선 이쪽 발 여기를 때렸는데, 요 발꼬락이 여기가 뿌러졌버렸어요. 그래 인제 업구서, 거기 미쓰보시 병원이 여기, 여기로 갔지요. 갔더니 이렇게 맨지면 속에서 발그락 발그락, 뼈가 부러졌으니깐 그러더라구요. 근데 그냥 주사 한 대 놔주고는. 지금 생각해보면 그 진통제겠죠, 주사 한 대 놔주고서는 괜찮다고 내보내더라구요. 그런데 그 당시에 주사 맞을 땐 안 아픈데, 저녁에 들어올라니께 또 계속 아프더라구요. 그러구서도 료에 들어갔는데. 나 발 아파서 [일] 못 나가겠다니께, 그러면 병원에서 휴가증 끊어가지고 왔냐? 병가증 끊어가지고 왔냐고 그래요. 병가증 안 끊어가지고 왔다고 그랬더니 안 된대요. [일하러] 나가라는 거예요. 그래 절뚝거리고선 나갔는데, 또 그 다음에 병원에 가게 될 것 같으면 또 괜찮다는 거예요. 일 할 수 있다는 거예요. 그런데 거기를 총 관할하는 기사가 있어요. 일반사람 기사. 이데기시라고.
면담자에게 동원된 나가사키조선소를 그려주고 있는 구술자


이데기시요?


예. 우물정(井)자, 손수(手)자.


일본사람이네요?


네. 이데(井手) ‘기시(技師)’인데 그 동공장두, ‘멧끼’공장두, 선반공장(旋盤工場)두 전부 다 그 사람 관할이더라구요.


이 사람이 총괄하는 사람이에요?


네. 공장장 바로 밑에 총괄하는 사람이에요. 그런데 도저히 안 되겠어. 병가를 안 내주고 그러니깐. 발은 아파서 어떻게 할 수가 없고. 나무를 꺾어다가 여기다 이렇게 대구선, 이놈을 통째로 맸어요. 발꼬락 하나가 딱 계란만 해지더라구요. 부어서 자꾸만. 그래 통째로 매고선 지팡이를 짚고 댕겼는데. 하루는 이기사라는 사람이 날 불러요. ‘너 왜 그러냐?’ 그러니께 다쳐가지고선 여기가 뿌러졌는데 병가를 안 해줘서 할 수 없이 공장에 댕긴다구. 근데 그 사람이 병원에 가서 병가 하라는 얘기는 안 해주더군요. 그러면서 그 표정이, 참 불쌍하게 보는 표정이야요. 그러더니 거 며칠만 더 있으라고 그러더니, 이틀인가 사흘인가 있으니깐 전근시키더군요. ‘도코바’에서 ‘멧끼코바’로 간 거예요. 바로옆이에요.
동공장에는 가스에다 얼굴이 눈만 반짝반짝해요. 공기가 어떻게 나쁜지. 송주혁이라는 사람 여기 같이 있었거든요. 같이 있었는데, 불과 일주일도 못 되어가지고서 나가 떨어져가지고. 결국은 앓고 병원에서, 저 료에서 기어나오지 못하더라구요. 그런데 이데‘기시’그 사람이 내 발[이] 그렇다고 그랬더니, 사흘 있다가 이 ‘멧끼코바’로 전근을 했는데, 가보니깐 얼마나 좋은지요.


‘멧키’공장은 좋았어요?


네. 아주 좋았어요. 먼저번에도 한국사람은 나 하나 있었구, 그 조에. 여기는 뭐, 조가 하나밖에 없었어요. 하나밖에 없는데, 그 조장이 야마구찌(山口) 조장인데 나이가 육십이 조금 넘었어요. 먼저번 구마모토 조장은 오십대였었구. 근께 젊은 놈들은 다 끌려가고 늙다리들 그런 사람들만.
나가사키조선소를 내려볼 수 있는 산정(山頂)에서 조선소를 촬영한 사진. (구술자 김한수 제공) 동그라미로 손수 표시한 곳이 당시의 근무지이다.


전쟁이었으니깐, 젊은 사람들은 다 끌려갔겠죠? 여기는 좀 편하셨어요?


거기 가니껜 천국이에요. 천국. 얼마나 좋은지 말이에요. 일도 없고. 또 그 야마구찌 조장이라는 사람이 나이가 육십이 넘은 사람인데 꼭 자기 아들 군인 보내구 나 같으니깐, 자기 아들 생각해서 그런지 그렇게 사랑을 하더라구요. ‘도라무깡(드럼통)’으로 목욕탕도 맨들어서 목욕도 하라고 주구.
뭐 헌다는 것이 다른 거 없이, 지하실에서 쇳물 녹이는 가마에 석탄 넣어주면 그걸로 끝나고. 바깥에 나와서 일거리 있으면은 크레인으로다가 그 ‘멧끼’가마에 넣다가 꺼내면, ‘멧끼’가 돼 나와. 일이 그렇게 많지를 않더라구요.
그 다음에 어떻게 되냐하면은, 요렇게 조그만 것이 사방 10센치(cm)씩 되어 있는 철판을 구멍을 뚫어가지고서 [그런 식으로] 많이 해가지고선, 조그만 쇳물을 거기다 집어넣으면 그 쇠가 녹으니깐 거기다 전부‘멧끼’를 해가지고선, 거기다 딱지를 전부 써서 붙여가지고 그걸 갖다주라고 그러더라고. 어디 갖다주라고. 근데 지금 거 가는 데가 일급비밀, 조병창 일급 비밀서예요. 그 갖다주는 게 뭐냐 하면, 그놈을 바닷물에다가 몇 시간 담궜다가 놓으면 어떠한 변질이 되는 건지. 거기다 또 소금물을 뜨겁게 해서 여면은(넣으면) 어떻게 되는지. 전부 그거 실험을 해서 또 그걸 갖다가 이쪽에서 다른 약을 섞어서 또‘멧끼’를 하고. 계속 그런 거만 시키더라구요. 거뭐 일하는 것 없이 편안해요. 근데 그 당시에 일본놈들이 마지막 항공모함 맨들 적에 고 옆에서 맨들었는데.


그 옆에서요?그러면 어르신이 근무했던 곳은 육지 쪽이고…


네. 요거 인제 조선소에요.


조선소는 저기 떨어져 있는 거네요? 어르신은 공장에서는 배를 직접 만들지는 않았고.


네. 부품만 만들면 되죠, 거긴. 부품 만들면은 다 자기들이 가져가요. 거기서는 무얼 하냐하면 ‘가타(型)’견본. 견본이 오는 거죠. 강철로다 빠이프를 꾸부려놓으면, ‘멧끼’할 거는 우리 공장에 갖다주면은 ‘멧끼’를 해서 보내는 거죠.


‘멧끼’를 해서 보내면 저쪽에서 다 조립해서 만드나 보네요?


그렇죠. 첫 번에 ‘스스멧끼(錫鍍金:주석도금)’를 하고, 거기다가 인제 동 ‘멧끼’도 하고, 어드른거는 아연 ‘멧끼’도 하고. 주문해서 그렇게 하죠.


어르신이 계셨던 ‘멧끼’공장은 나가사키 시내 쪽에 가까운 공장이네요?


나 있는데서 요기서 조금 올라가게 되면은 여기가 나가사키 역이에요.


시내 한복판이네요?


네. 그렇고 원폭 떨어졌던 중심지가 요쯤 될 거에요.


여기가 나가사키 역이면…


다리가 여기 있었죠, 이렇게. 일루 연락선이 왔다 갔다 하고.


아까 잠깐 말씀 들어보니깐, 공장에서 이 ‘멧끼’를 칠하면 이것은 소금물에 얼마나 견디는지 실험을 한 것 같네요?


그렇죠. 근데 거기 가면은 이 길이가 4미터(m)정도 돼요. 길이가 4미터(m)정도 되는데 가운데가 이렇게 딱 잘라져가지고 가운데를 보도(볼트)로 갖다가 둘을 이렇게 맞춰놓고, 대가리에는 폭탄을 집어넣고서 조립을 해버려요. 그리고 중간에 사람 하나 들어가게 조그맣게 문이 있는데, 제일 밑쪽에는 ‘스크류(screw propeller:스크루프로펠러)’ 돌아가는 게 있어. 그게 저 결사단 애들이 타고 가서 적함이 보이면, 인제 조그만한 소형 잠수함이니깐 그 놈 가지고서 같이 들이받아.
그거를 수태 거기서 맨들었어요. 조선소 이짝 일부에서 많이 만들었는데 그게 우린 뭔지를 몰랐지요. 전부다 발을 엮어가지고 전부 뒤집어 씌어놨어요. 비밀 보장하느라고. 그래 공장에 가게 되면 ‘구미쪼’한테 뭐 내 아버지 같고 그러니께, 저기 가면 폭탄같이 생긴 길다란 배가 있더라고 말이지. 근데 그폭탄같은데 밑에 스크류가 붙었더라고. 그걸 물었어요. “그게 뭘 하는 건데 왜 거기다가 참대로 엮어가지고 이렇게 씌웠느냐.” 그걸 물었다구요. 그랬더니 거기에 대해선 일체 암말도 허지 말래요. 묻지도 말고 너두 말하지 말래요. 잘못하면 헌병한테 혼나니깐 말하지 말래요. 근데 그거 맨들어가지고 한번도 써먹지도 못하고 거기서 다 녹아버렸죠, 폭격에. 그러구… 일본에서 제일 큰 항공모함이라고 맨들었죠. 맨들어서 나갔는데 나가가지고선 사흘인가 있다가 터져가지고서 도루 들어왔다구요.


아무 소용도 없었네요.


또 한 가지는, 신기한 게 배가 도꾸(dock)에 들어오게 되면 물을 타고 들어오죠? 그럼 인제 문을 탁 닫고 물을 싹 빼면, 배만 앙그러시 남잖아요? 그러면 포탄 맞은 구녕이 뻥 뚫려있죠. 거기 들어가서 인제 한국 사람들이 잘라내고 용접하고 고치는 거라구요.
근데 문을 열면은 군인이 그 안에서 세 명이고 네 명이고 그냥 그대로 죽어버렸다고. 그래 이상한게, “왜 이 사람이 나올 수 있는데, 문이 있는데 왜 못나오고 여기서 죽었느냐?” 그걸 물었더니 설명을 하더라구요. 첫번에는 이제 [폭탄을] 딱 맞으면, 선장실에서 우선 전부 다 문을 잠가 버린대요. 안에 누가 있던지 문을 싹 잠가버린대요. 자동으로 잠기게 돼 있대요. 그러면 안에서는 사람이 못 나온대요. 왜 그러냐하면 폭탄 맞은 데로 물이 들어와서, 배가 얼마큼 지탱해나갈 수 있느냐? 고걸 시험해서 [시간이] 넉넉히 있으면 사람 하나, 하나를 살려나간대요. 그러다 더 이상 물이 차서 배가 가라앉게 될 것 같으면, 거기 세 명이나 네 명 있어두 많은 사람이 살아야 되니깐 그 사람을 죽이는 거예요. 할 수 없이. 그 얘기를 들으니께 과연 이유는 그럴듯하데 그거는. [시체가] 썩어서 냄새가 고약하게 나더만. 그래 그런 꼴도 봤구요.


그런 것도 목격하신 적이 있는 거네요?


네. 공장 안에는 맘대로 돌아다닐 수 있으니깐.


그러면 어르신은 나오실 때까지 해방될 때까지 ‘멧끼’담당이셨네요?


네. 거기에서 원폭 당한 거라구. 거기가 원폭 당한 자리라고.


몇 시부터 일을 시작하나요?


아침에 거기서 보통 6시에 출발하지 않았나.


후쿠다료에서 여섯시에 출발?


6시나 5시. 그렇게 됐을거야, 아마.


이른 아침이네요?


아침 일찍이죠. 거기서요.


그럼 식사는 어떻게 하시구요?


여 식당이 다 있어요. 여기다.


식사를 일찌감치 끝내고 걸어서 가나요?


순전히 걸어서 산 넘어서. 여기 산등성이 넘어서 내려오면은 여기서 인제 인수인계 끝나는 거죠.


한참은 걸어갔겠네요?


그럼요. 많이 걸었죠. 꽤.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쫙 가는 거예요?


그렇죠. 그것도 한놈이 전부 다 인솔하는게 아니구, 반장 녀석들이 몇 명씩 해가지고 와서는 다 인계해놓곤 저희들끼리 가고 그랬죠. 그럼 우린 들어가고.


그럼 몇 시까지 작업을 하나요?


작업시간이 보통 [아침] 6시에 가서, 거기 공장에 가면 7시 정도 됐었지. 그러면 오후에도 6시나 7시 되면 작업이 끝났을 거예요. 끝났는데, 저는 거의 뭐 한달이면 거반 거기서 잔업을 했어요. 왜 그랬냐하면 밤에 생로(爐)를 불을 떼지 않으면 굳어지면 아침에 ‘멧끼’를 못하거든요. 밤에 계속 불을 넣어줘야, 물이 끓어야 ‘멧끼’를 허니깐. 그렇지 않으면 일본사람이 밤에 저거를 해야 할 텐데… 내가 그랬어요. 난 잔업해도 좋으니깐 시켜달라고.
그냥 거 또 ‘구미쪼’가 상당히 기특해서. 그 ‘구미쪼’가 고향이 어디냐 하면, 가고시마(鹿兒島). 가고시마가 자기 고향인데 거기에서 오징어를 많이 가져와서, 날 보고 팔아다주라 그래서 팔아다줬어요. 팔아다줄 것 같으면 조금 용돈도 주고 오징어도 주고. 그러면 그거 얻어먹는 재미에.


맛있는 거라고 하기는 그렇지만 요기는 좀 되셨겠네요?


네. 그런데 이데 ‘기시’ ‘구미쪼’라는 사람이요. 자기도 외아들을 군인 보냈더군요. 그런데 일요일날 ‘너 놀면은 우리집으로 놀러오라’ 그러더라구요. 그래 하루 시간을 내가지고 조장한테 얘기해서 “이데기시 댁에 하루 놀러가게 나 휴가 좀 해달라.”그랬더니, “휴가는 뭔 휴가냐. 이데기시상이 그러면 너 이번주 일요일날 놀아라.” 그래서 인제 일요일날 이데 ‘기시’ 집에 갔더니.


그 사람 집은 가까웠어요?


네. 거기서 보면은 요쪽에다 산이 하나 있어요. 낮은 산인데, 산등빼기 중턱에 그 집이 있어요. 찾아갔더니 부인도 이데‘기시’랑 같구, 딸 하나가 있더군요. 단 둘이 남맨데, 아들 하나 군인가구 딸만 데리고 있데요. 그런데 이렇게 산을 깎아가지고 집을 지었는데, 거기다가 방공호를 파고 있더라구요.
근데 뭐 부인이랑 딸이 방공호를 파고 있는데 그게 뭐 얼마나 파지겠어요. 한창 젊은 놈이 곡괭이 들고 가서 파니께 그 사람들이 볼 때 대단하죠. 눈이 휘둥그레 가지고 ‘야~ 조선사람은 그렇게 힘이 쎄네요.’ 아니 힘이 쎈게 아니고 노력을 하니께 그렇게 되지 않냐구. 내가 몇 시간을 내려파게 되면 1미터(m)를 들어간다고 1미터. 자기들 1미터 팔 것 같으면 열흘을 파는데. 그랬더니 주먹밥을 가져 왔더라구요. 우메보시라고 살구 있죠? 살구 장아찌하고 주먹밥을 쟁반에다 가져왔는데. 된장국 조금하고. [주먹밥을] 딱 하나 가져왔어요. 그거 뭐 배고프던 놈이 그거 보면 그냥 맨입에 후딱 먹으니께, 더 줄라고 그래요. 그래서 있으면 달라고 더 먹겠다고 그랬더니, 또 갖다주고. 세 개를 연거푸 다 먹은께 ‘야~ 한국사람은 그렇게 많이 먹네요.’ 조선사람은 그렇게 많이 먹네요. 워낙 배고파서 그렇다고. ‘공장에서 어떻게 먹냐’고 그래가지고 그 얘길 했더니, 이제 참 자기네 나라가 한국사람에게 허는 것이 좀 너무 괘씸하다는 그런 뜻이죠. 그렇게 먹는지 자기들은 몰랐대요.


공장에서는 뭐 드셨어요


쌀이 10분에 1이나 20분에 1정도 섞였을 거예요. 그리고 나머진 전부 중국서 기름 짜고 남은 대두박 찌끄럭지, 콩기름 짜고 난 찌꺼기 그거라구요. 그게 잘 붙지를 않으니깐 자빠트려가지고 진나가지고 그걸 억지로 밥이라고 만들었어요. 그러고 국은 어떻게 허냐면 농촌에서 심는 고구마 있지요? 고구마 넝쿨을 그대로 갖다가 작두에다 썰어가지고 그걸 가마에다 넣구서는, 소금이 아닌 바닷물 길어다 넣구서 너까래(서까래) 같은거로다 휘휘 저어 가지고 그걸 국이라고 주는 거예요. 그래도 없어서 못 먹는 거예요. 그리고 한국사람들은 고춧가루를 먹어야 되니께 고추대는 어디서 한국서 수입했는지 시퍼런 것을 막 달아가지고 요만큼씩 병에다가, 한 끼에 한 병씩 줘요. 그래 그것도 다 털어먹고선 아이구~ 그 넘들.


그 소리 듣고선 이데‘기시’부인이 ‘너무 심하구나. 남에 나라 와서 이렇게 일을 시키면서…’


자기는 그렇게 먹고 사는 줄 몰랐대요. 그러면서 얼마나 배가 고프냐고. 가끔 오면은 내가 이런 음식을 보내줄 수가 없으니깐, 집에서 주겠다고 그러면서… 근데 그 이대‘기시’라는 사람은 일체 말이 없어요. 눈으로 말하는 거예요. 눈으로 불쌍하다, 그러면서 말하는 거예요. 그런데 그때가 원폭 떨어지기 직전이야요.
원폭 떨어지던 바로 그날이에요. 그래 11시 몇 분인가 됐지, 아마? 그렇게 됐는데 거기 [피해신고서에] 다 나와 있지만서도. 그런데 그 시간에‘기시[이데기시]’가 나한테 와가지고 “야, 너 시계 고칠 줄 아냐”그래요. “네. 고칠 줄 압니다”그랬더니, “내 시계가 이게 빨랐다 느렸다 하더니 인제는 안 간다.”그러면서 자기 회중시계를 풀어요.


회중시계 차고 다니는 거?


네. 그걸 줘요. 그래 뚜껑을 딱 까고서 보니깐, 유사
각주 )
유사(遊絲): 시계 부속품의 하나. 탄력 있는 납작하고 가느다란 쇠줄을 나선형으로 감은 것으로, 이것을 태엽의 풀리는 힘이 최종적으로 전달되는 부분에 끼워, 이 탄력과 힘의 조절로 시계의 초침이 움직인다.
닫기
가 이렇게 쪽 되야 하는데 이게 얹어버렸어요(엉켜버렸어요). 아~ 이게 유사가 얹어버렸다(엉켜버렸다)고. 고칠 수 있을 거라고. 유사란 게 태엽, 축음기 레코드 열면 태엽 틀잖아요? 열면 째그락 째그락 하는 거. 그렇게 생긴건데 아주 가느다란 거예요. 덴분이 왔다갔다 왔다갔다하는데, 그 중간에 덴싱에가 유사가 달려있어요. 조그만 게. 지금은 전지지만, 태엽으로 감는 시계는 다 그게 있어요.


그걸 유사라고 그래요?


네. 유사라고 그래요. 제가 태양당 시계방에서 그 기술을 배우느라고 많이 연구를 했었거든요. 지금도 그런 것들 모아다가 고치고 댕깁니다만은. 기술 같은 거는 뭐, 맥히는 게 없는 사람이에요. 그래 인제 그걸 고쳐줄라고 뚜껑을 딱 열고서 본께, 유사가 있어서 “아~ 고칠 수 있다” 고 그러는 순간인데. ‘기시’는 여 옆에 서 있고, 그러는 순간인데….
‘구미쪼’사무실하고 나 책상하고는 거리가 좀 떨어져 있어요. 떨어져 있는데, ‘기시’가 공장에 딱 들어오면, 그 ‘구미쪼’들은 앉아있지를 못해요. 윗사람이 오니까 딱 서서있지. 또 ‘기시’가 날 그렇게 사랑하니께, 아주 ‘구미쪼’도 더구나 더 [나를] 사랑해주고 그러더라구요.
근데 딱 이걸[시계] 들고서 있는데, 갑자기 위에가 높이 있는 창문으로 새파란 불빛이 팩~하고 들어와요. 아무렇지도 않고 그냥 그 문이 이렇게 있으면, 문이 흔들리면서 파란불이 팍 하고 들어와요. 근데 옆에 있던 ‘기시’가 “데끼다!(적이다)”그러더니 냅따 도망가버리는 거예요. 나는 이게 뭐 어떻게 되는건가. ‘적이다?’ 적이 아무도 없는데 뭔 적이야? 그러고선 가만히 있는데, 그 사람이 도망가는데 언뜻 생각에 ‘저 사람들은 군인장교 제대한 사람들인데 뭔가 있으니깐 도망가는데, 나 왜 이렇하구 있을까’ 그러면서 나두 도망갈라구 인제 시계 쥔 채 따라가는 거예요. 그‘기시’가 나간 시간하고 내가 뒤에 따라간 시간하고 약간 3~4초 정도 됐을 거예요. 따라나갔는데, 이 문이 하나가 기럭지가 6자에 높이가 9자에요. 엄청 큰 철문이 두 개가 붙어 있거든요. 자동차가 그 안으로 들어왔거든요. 그 문이 닫혀 있어서 문을 이렇게 삑 열고 내딛는 순간, 꽝!~하더니 그 문이 엉덩이를 탁 때렸어요. 제 몸을. 그렇게 하구선 몰란거예요.


그 문이 어르신을 때려서 정신을 잃으신 거예요?


정신을 잃은 거예요. 까무러쳤다가 깨어나는 걸 저는 확실히 경험해서 알겠는데. 근데 어떻게 된 건지 귀로 무슨 소리가 들리는데요, 뭐 꽝꽝 떨어지는 소리도 들리고 뛰어가는 소리도 들리는데… ‘다스께테! 다스께테!(살려줘요)’하는 소리는 상당히 멀리 들려요. 살려달라는 소리는 멀리 들려요. 근데 눈을 이렇게 떴는데, 앞이 보이지가 않고 안개가 자욱하게 뽀얀게 좌우지간 앞에가 안보여요. 어떻게 된 건가, 한참 보고 있으니깐 보이더라구요. 사람 뛰어가고 그런게 보이더라구요. 이게 공기가 맑지가 않구, ‘스리가라스(すりガラス:불투명유리창)’보는 것 같은 느낌이더라구요.


불투명한 유리창으로 쳐다보는 것처럼 뽀얗게?


네. 그러고서 이 머리에서 그 때 느끼는 것이 노랑내(노린내), 머리타는 노랑내가 들어오더라구요. 그 순간 내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확인하게 되는 것이, 제일 먼저 머리를 흔들어 보게 되더라구요. 내 머리가 붙어 있는지를. 머리를 이렇게 흔들어 보게 되더라구요. 내 머리가 붙어 있는 걸 느끼게 되고 보이고 듣고 하는 걸 알게 되니깐, 그때 비로소 손발이 붙어 있느냐를 알게 되더라구요. 몸을 이렇게 움직여 보니 움직여지니깐, 냅다 뛰어서 나갈라구.
근데 뭔가가 천정에서 눌러버렸어요, 나를. 이상하다 그러는데, 뭘 눌렀는지 돌아다볼 여지도 없더라구요. 우선 다른 사람 뛰어가는 데를 가야된다는 거. 막 그냥 악을 써서 기어나가 가지고선 뒤돌아보지도 않고 냅다 달아났어요. 방공호 있는 데로 뛰어갔다고요. 뛰어들어가서 막 들어가보니까, 그 방공호 이렇게 커다랗게 했는데 그 안에 처음 들어가서 보니깐, 전부 선반기계니 공장이에요. 거기가.


지하공장이네요?


네. 방공호에다 공장을 만들었는데, 막 한창 신설 중에 있더라구요. 그래 뭐 먼저 들어간 놈은 저 안에도 들어가 있고, 내중에 들어간 나는 그 초입에 들어가서 있는데. 그래도 내 생각에는 살아있은께 얼마나 좋은지 이제 까부는 거예요. 살아있는게 좋아서.
선반기계 있는데 앉아서 바깥을 내다보니께 꼭 저기 안개가 자욱하게 낀 것 같은데, 그 안개가 색깔이 허연 색깔이 아니고 붉은색의 안개. 그거에요. 그런께 폭탄이 탁 떨어져가지고, 내 그걸 적어논 게 있습니다만. 그 폭탄이 땅에 떨어져서 터지는 게 아니고 공중에서 터져가지고, 파란 불 났을 땐 그게 공중에서 탁 터진 거고 터진 그 빛이고. 그 다음에 쭉 화약 같은 것이 분포되었을 때, 그놈이 탁 붙어서 일종에 폭풍이 되어서 그 문이 [날아갔다] 뭐 그렇게 생각을 가지게 되겠죠. 그러고 난 다음에 방공호에 들어가가지고 거 앉아있으니깐 조금 있으니깐 자동차가 엥엥거리더니 그 ‘데신따이(挺身隊)’라고, 여자들이 왜 여기다가 십자 그림 뭐 가방하나 붙들고 깡통 하나 손에 들고 한쪽 손에 집게 같은 걸 들고서 계집애 둘이 들어오더라구요. 나는 앉아서[살아있는게] 마냥 좋아서 바깥 쳐다보고 있는데, [사람들이 방공호] 들어오다가 죽어서, 시체는 사방에 흩어져 있고.


탄 시체들인가요?


네. 오다가 결국 죽은 거에요. 살것다고 오다가 죽고. 나는 죽지 않은 것이 거기에 그 장등이에 철판이, 그 슬레트니 그런 것이 뒤집어 씌웠던 것이에요. 때려가지고 넘어졌을 때. 그래서 겨우 여기만 상처난 거죠. 여기도 디어서 상처가 난 게 아니고, 그놈의 것이 내 쳐가지고 상처가 났는데. 거기서 일할 적에는 ‘마에가케(前掛け:앞치마)’라고 가빠같은 거 하나 맨들어서 입었거든요. 난닝구 허구. 근데 피가 얼마나 흘렀는지, 여기 뻘겋게 젖은 거예요. 난 그걸 몰랐다구요. 모르고 바깥만 내다보고 까불고 좋다고 그러는데. 그 계집애가 오더니 모가지 앞에다 뭐 터덕터덕 [바르는 거예요]. 이거 왜 이러냐고 쳐다보니께, 걔가 당신 부상당하지 않았냐고? 그때 그러는 거예요. 그래 이렇게 보니께, 피가 시뻘겋게 묻은 거예요. 그때는 아이고~ 내가 이제 죽는가보다, 그걸 느끼게 되니깐 얼굴색이 하얗게 변해지는 거죠. 그러니깐 그 계집애가 그러더라구요. 걱정 안 해도 된다고 “다이조부. 다이조부(괜찮아요)”그러더라구요. 아프면 병원으로 가보라 그래요. 그래서 살라고 거기서 기어나와서 병원으로 막 뛰어갔더니, 병원 그쪽에는 맨 송장투성이라 사람이 들어갈 수도 없어요. 병원에 들어갔더니 의사도 간호원도 그 안에 꽉 차가지고, 부상병이 들어서 아주 뒤죽박죽 다 난리야요.


병원은 무너지지 않고 괜찮았나 봐요?


그 거리가 지금 수첩[건강수첩]에 나와 있지만은 3.5키로(km)니깐 폭풍은 심했어도 다 무너지거나, 이런 유리창들은 다 깨지고 그렇지만 이래 완전히 쓰러지거나 그렇지는 안했어요.


여기 공장은 폭탄 터진 데서 몇 키로(km) 떨어진 거예요?


지금 그 사람들이 잰 거는 3.5키로(km)라고 그래요. [건강수첩을 확인하고] 여기 3.2키로(km)네요.


병원 가셔서 치료는 받으셨어요?


치료가 뭐예요? 의사고 간호사고 뒤죽박죽된 걸 그냥. 사람이 이렇게 움직이고 다닐 수가 없어요. 꽉 차가지고.


그 병원에서 쳐다보면 시내가 보이나요?


그 방공호에 들어가 있을 때 시내를 내다봤죠. 그랬더니 시내는 드문드문 건물 콘크리트 기둥같은 거 혹간 가다가 보이고, 다 타가지고 아무 것도 없어요.


다 타고 아무 것도 없어요? 그럼 코앞이 훤히 다 보였겠네요?


다 보이거나 말거나. 내가 그 시내를 거기 가서 몇 바퀴 돌아다녔는데요.


시내를 왜 들어가셨어요?


그 이데‘기시’가… 내가 뛰어나오면서 보니깐, 곰방 나간 이데‘기시’가 보이지를 않아요. 그래 병원에 갔다가, 거기에다가도[피해신고서에도] 썼습니다만. 이데‘기시’를 찾느라고 도로 공장으로 와서 그 근방을 살펴봐도 이데‘기시’가 보이질 않아요. 분명히 이 사람이 자기 친척 중에 누가 있어서 혹시 시내로 들어간게 아닌가. 그래 거기서부터 시내를 더듬어 가는 거예요. 가다보니깐 말이 마차를 민 채 그대로 앉아서 죽은 거가 있구. 그리고 시내 저기 항구 그짝으론 사람들이 전부 죽어가지고 전부다 둥둥 떠댕겨. 맨창 거기가. 다리를 건너서 거기를 갔더니 커다란 금고가 있는데, 그 옆에 사람이 죽었는데 다 타 없어지고 엉댕이만 남았어. 엉댕이.


다 타구요?


네. 타서 엉댕이만 남았더라구. 그런거 있구. 그래 돌아댕기다가 그래도 배는 고프니까, 여기 군수품 공장 있잖아요. 거기 가니깐 다 무너져 가지구선 통조림이 여기저기 다 굴러다니더라구요. 그래 그 놈을 골라가지고선 뚜드려서 구멍을 내 먹어볼라니깐, 타서 눌러붙지는 안해도 국물이 있는데도 냄새 땜에 못 먹겠더라고 그게. 인제 내버리고선 이데‘기시’찾으러 돌아당기다가 결국은 못 찾고서… 결국은 못 찾고 말았죠. 그 후에 나는 그 사람이 분명히 살았다고 보는데, 먼저번 가서[건강수첩 발급받으러 일본을 가서] 그 사람을 확인 좀 해볼라고 그랬더니, 집도 못 찾았지만은 시간이 없었어요. 다시 또 한번 들어가서 결국 그 사람을 찾아볼라 그래요. 그 집은 아니깐. 그 집에 가면은 그래도 뭔가 찾을 수 있지 않겠나. 공장에 있을 때 그 ‘구미쪼’가 나한테 잘하고 그래서 [찾으러] 돌아댕기는데. 그 안에 가면 ‘센방코바’가 거기 있어요. 선반공장이 있는데, 일본 여자들이 전부 모여가지고 가공하고 그러죠.


폭탄 떨어지고 난 다음에는 어떻게 하셨어요? 공장에 다시 가셨어요?


아니죠. 폭탄 딱 떨어지고 난 다음에는, 한번 그 공장장이 아침 조회를 [폭탄] 떨어지고 난 그 다음날 조회를 하더라구요. 근데 뭐라 그러냐하면은 연설하려면 ‘다이’가 높은데 ‘다이’로 뚜벅뚜벅 걸어올라가더니 딱 인사하더니 ‘와따시와유우고또나시’ 딱 이래요. ‘나는 할 말 없다’ 그러고서는 내려가버리는 거예요. 뭐 가라는 말도 없구. 그러구 난 다음에 그게 끝이죠. 그러구 인제 일본이 항복했다 그 소리도 안 하구. 그래 내중에 살아있는 사람들이 조를 편성해가지고 부상자들, 한국사람 부상자 그거 치료하러 돌아댕기는 거예요.


부상자들 치료하러 다니셨어요?


그런데, 제일 먼저 번에 사이와이료 있잖아요? 여기다가 전부 집어넣더라구요. 다친 사람들을. 그런데 다친 사람들이 거반 다 탄 사람들이에요. 어째서 그런지 아주 많이 타지 않은 사람두 그냥 죽어버리는 사람이 있구, 얼굴에 형편없이 탔는데도 사는 사람도 있구. 또 그 탄 거를 약을 발라서 고쳤는데 껍데기가 다 벳겨지니께 아주 미남으로 깨끗이 된 놈도 있구. 한 놈은 여기가 홀랑 다 타버렸는데, 뭘 매길라면(먹이려면) 입을 벌리지 못해서 참대(왕대)를 잘라서 입에다 넣어가시고 그 참대에다 밥을 이렇게 쑤셔서 넣었어요. 근데 죽을 놈은 할 수가 없어요. 뭐라 그러냐고하면은 먹어야 사니깐 억지로 매길라고 그러니깐, 싫다는 거예요. “이 자식아, 넌 먹어야 살아! 먹어야 살아서 같이 나가지. 이눔아!” 그러니께 막 성을 내더니 “너 이 놈의 새끼, 나 낳기만 해봐.” 결국은 죽는다구… 그러구.


그 사람들은 다 같은 공장에 있던 사람들이네요?


내 공장과 같은 공장은 아니고, 그 근처 어느 공장에 있었는지 우리는 모르죠.


하여간 미쓰비시 공장에 있던 사람들?


전부 다 모아가지고, 그 사람들을 조를 짜서 맽기는 거예요.


그 사람들은 폭탄 터졌을 때 화상도 입고 그랬다는 얘기네요?


전부다 그랬죠.


그러면 이 공장이 상당히 가까운 거리, 폭탄 떨어진데서 4키로(km)라고 그랬나요?


3.2키로(km).


3.2키로(km)면 아주 가까운 곳이네요? 화상을 입을 정도니깐.


그렇죠. 그니께 거 화상 입는다는 것은 조금 멀어도 바깥에 완전히 노출된 사람은 화상을 입어 다 타버렸구, 조금 가차워도(가까워도) 이런 실내 같은 데 숨겨져 있던 사람은 안 탔다구. 그래서 살았어요. 그러니께 자기 운이라고.


그분들을 치료하러 다니셨어요?


네. 한 14일인가 20일 거반 다녔을 거예요.


얼마나 많이 다치신 것 같았어요? 끌려간 조선사람들도 많이 다쳤어요?


뭐 한 80%가 다 죽었다고 봐야죠.


끌려간 사람 중에서 80%가 사망이라면, 그 연백군 사람들은 얼마나?


다 똑같은 거죠.


연백군 외에 다른 지역 사람들도 있었죠?


그렇죠. 이북사람들 모였던 거죠.


연백군에서 한 이백명이 갔다고 그러셨는데, 가보니깐 먼저 와있던 조선사람들이 있었어요?


없어요.


그럼 나중에 온 조선사람들이 또 있었어요?


나중에 완(온) 사람들은 모르죠, 제가. 교체를 해가지고 잘 모르는데 온 것만은 틀림없어요.


연백군 외에 다른 지역에서 온 조선사람들도 있었다는 얘기네요?


다른 사람들도 많죠. 약 거기 숫자는 내중에 거기 사람한테 얘기 들어보면, 거반 한 이천명정도가. ‘료쪼(寮長)’가 그러는데 그래 있었다고 그러대요.


그 사람들 중에 한 80%가 폭탄으로 희생을 당한 것 같다는 말씀이시네요?


그렇죠. 살아나온 사람들이 그렇게 많지 않아요. 살아나왔다는 사람이라는 것은, 병가 얻어가지고 료에서 빈둥거리던 놈들, 그런 것들이 좀 더러 살고. 일을 해도 좀 뭔가 활동허구 좀 노력하것단 놈들은 거의 다 죽었다고 봐야죠.


해방된 건 어떻게 아셨어요?


그러구 인제 료에 들어가 보니까 그때 다 쑤근쑤근. 그래도 공공연하게 얘기를 하지 못했다구요. 그래서 일본놈이 손들은 거 그때 알았죠. 그것도 그 자식들이 얘기해주지도 않고, 어떻게 어떻게 돼가지고 알게 되구. 제일 먼저 료에 들어가 가지고 찾은 것이, 그 반장놈들. 이 눔의 새끼들 다 없애버릴라고 가봤더니 싹 도망 가부렸어요. 미리 싹 도망 가부렸어.


그 이후에는 어떻게 하셨어요?


그래도 거기에서 계속 밤에 일하구. 그러면 ‘구미쪼’가 오징어 줘서 시간나면 밤에 갖다가 팔았죠.


‘구미쪼’는 살았네요?


네. ‘구미쪼’는 다 살아있어. 그런께 그 사람이 원폭 떨어지기 전에 갖다줘서 내가 계속 팔았잖아요. 그 파는 돈에서 조금씩 띠어줘서 그걸 안쓰고 저축, 저축해서 모은 것이 거반 한 6~7개월 하니깐 많이 모였다구요. 그래 그 돈 가지고서 ‘야매배’, 여러 사람이 같이 타는데 그거 타고서 왔어요.


그 ‘야매배’는 살아남은 조선사람하고 같이 돈 모아서 사신 거예요?


한사람당 얼마씩. 얼마만 내면은 구한다고. 지금 돈으로 아마 이삼십만원 됐을꺼야. 지금 가격 보면은. 그 정도 내구서 인제 탔는데, 그걸 배에 올라가보니깐 여자, 남자, 애들 뭐 잔뜩 탔더군요.
그니께 이것도 또한 이상한 일이다. 지금 이 피폭자들 가운데 또 왜정시대 생존자들 가운데는 지원해서 헌병이 돼서 한국사람에게 무수한 고통을 준 놈들도 많죠. 있습니다만 오늘에 지금 현장에 와서는 그게 다 숨어지고 자기들 뭐랍시고 꺼떡거리고 댕기는 놈들도 많이 있습니다만은. 그리고 또 일본놈들한테 아부해가지고 잘 보여서 일본 그 나가사키 시내나 뭐 히로시마나 다른데 사업체를 가지고 장사나 뭐 이런 사업 허느라고 자기 가족을 전부 일본으로 이주해서 거기서 행복하게 잘 살던 사람들도 많이 있죠. 이제 그런 것을 우리 국가는 냉정히 판단해야 돼요. 물론 이제 그저 다 덮어두고 사랑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만은 그 정신만은 완전히 뜯어 고쳐 줘야지. 그것이 앞으로도 2세, 3세 흘러가면서두 그런 정신으로 살다가는 그건 안 돼지.


나가사키에서 ‘야매배’를 타고 어디로 오셨어요?


부산으로 온 거죠. 그 타면은 한국 간다고, 조선 간다고 그러니깐 탔는데. 밤에 탔는데 조금 늦은 저녁에 탔거든요. 근데 아침에 먼동이 터가지고 내다보니깐 산이 보여요. 한국 다 왔나보다 좋아하면서, 저가 한국이냐고 그랬더니, 거가 나가사키래요. 안작도 못 왔어요. 그래서 난 아이구 이렇게 가면 언제나 가나 했는데, 일주일 가야 된대요. 일주일. 나 우스워서. 그래 이 눔이 가다가 중간에 배가 고장이 났어요. 고장이 나서 기관장하고 선장이 배를 고치는데 이게 발동기에요. 틀면 발동기에요. 그래 한참 있어도 발동기가 걸리지 않는 거예요 그게. 배는 그냥 이렇게 막 지랄을 하는데.


목선인가 봐요?


목선이죠. 근데 당시에 료에 들어가니께 료장이 료 기숙학생들한테 뭐라고 그러는고 허니, ‘너희가 아무리 바빠도 일본에서 한국까지 건너갈 수 있는, 일본해를 건너갈 수 있는 배는 최소한도 톤수로 50톤 이상이래야 된다. 천 톤이라면 다행인데 그 아래 배를 탔다하면 생명이 위험한데 절대로 타지마라.’그래 그게 당시 생각에는 ‘저 자식이 우리를 못 가게 하나보다’그런 생각밖엔 안 들었죠. 제가 탄 배가 26톤짜리였거든요. 그러니 이게 얘기가 안 되는 거죠. 26톤 목선이면 이런데 저 바깥에 오징어 배나 이런 목선인데. 그런데 일본놈들이 죽기살기로 돈 버는 재미에 그렇게 실어가지고 오다가 죽은 사람도 많지요.


다행히 배를 고쳐가지고 무사히 오셨어요?


고쳐가지고선 며칠 만에 부산에 도착 했다구요. 부산에 도착하니깐 참 눈물나는 것이, 제일 먼저 딱 한국에 내리니껜 양쪽으로 쫙 아주머니들이 앉아가지고선 주먹밥, 하얀 밥싸리에 쌀밥 그걸 갖다가 먹으라고 주는 거예요. 꿈인지 생신지. 세상에 동포의 사랑이라는 것이 이렇게 소중한 건지 참 찐하더군요. 그러구선 거기서 그냥 길을 모르니께 철도만 따라가면 내가 떠나갔던 연백 연안역이 되갔으니깐 계속. 그냥 철도 끼고 자면서 계속 걸어서 집에꺼지 간거죠.


같이 가셨던 친구분들도 같이 돌아오셨어요?


못 돌아왔어요. 걔들은 료에 있었죠. 걔들은 갈래도 돈이 없어요. 돈이 있으면 있는대로 다 써버렸으니깐.


어르신은 모아 둔 돈이 있으니깐, 그 돈으로?


네. 오징어 장사해가지고 모아둔 돈.


오셨더니 가족들이 너무 좋아하셨겠네요?


네. 그런데 와서 보니까 부모의 얼굴이 말이 아네요. 너무 고통 중에 어렵게 살아서. 그래도 지금 죽은 그 할마이는 돌아댕기면서 길바닥에서 풀뿌리를 뜯어다가 그 뗄라고, 한방에 꼭 꼭 채워놨어요.


아드님도 많이 컸겠어요?


꽤 많이 컸어요.


일본에 가 계신 게, 몇 해나 됐어요?


아네요. 딱 14개월인가 좀 됐을 거예요.


오랜시간 동안 말씀해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특히 나가사키 조선소에 대해서 많이 알 수 있었습니다.


네. 거기에 한 가지 드릴 말씀이 있군요. 원폭이 떨어지기 직전에 한 십일인가 이십일 전인가, 그때 비행기 삐라가 맨 그 삐라를 뿌렸다구요.


히로시마에도 삐라가 왔었대요?


그런데 삐라를 뿌리면 한국사람들이 못 줍게 헌병들이 지랄하고 댕기면서 삐라 뿌린 거 주우면 뺏어가고 그런다구요. 근데 거기 뭐라고 썼냐 하면은, 시계를 그렸는데 12시 5분전으로 시계가 그려져 있어요. 그런 시계를 그려놨고, 아래는 ‘미나상 이마마데 오겐끼데스까’ ‘여러분 지금까지 건강하십니까?’ 그거 말하구. ‘신니뽄오 겐세쓰 시오자나이데스까’ ‘신일본을 건설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이런 삐라가 떨어졌었거든요.
그런데 내가 지금 생각하는 것은, 이미 그때는 적기가 들어와도 하나도 적기하고 대항하면서 싸우는 꼴도 못 봤고, 이미 일본은 질 것을 각오했을텐데 고때 일본서 일찍이 항복만 했다하면은 이 엄청난 희생자가 안 생겼을 것 아니냐? 근데 고집하고 끝까지 군인정신 ‘사이고마데 감바루(끝까지 최선을 다하자)’하면서 저렇게 희생자를 내뿌려놓고.
또 미국놈들도 그렇단 말이에요. 이미 먼저번에 다 글로 써서 보냈습니다만은, 미국은 천주교 국가다 말이에요. 천주교 국간데 어떻게 사람의 운명을 그렇게 소홀히 취급할 수 있느냐? 이미 일본놈은 쓰러진건데 거기다 히로시마에 폭탄을 갖다가 떨어뜨렸구. 또 그것도 모자라 나가사키에 또 떨어뜨렸다. 이거는 너희가 승리를 위해서 원폭을 투하한 게 아니구 원폭의 위력을 시험하기 위해서 실질적으로 사람이 사는 데다 투하시킨거다. 그래서 너희는 이 죄를 말이지 이세상 어디에서도 변명할 수 없는거다. 지금이라도 거기에 대해서 사죄하고 회계하는 것이 좋을게다. 막 그런 것을 써서 일본 보냈더니, 일본놈들이 뭐 저희 좋아서 그러는 건지 곰방 회신이 전화가 왔데요. ‘그걸 원폭전시장에다 붙였으면 좋겠는데 붙여도 좋겠나?’ 그래서 그 맘대로 해라. 내 못할 말 했나 그래버렸지.


옳으신 말씀입니다. 아무튼 오랜 시간 말씀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면담일자: 2006. 2. 17.
면담자: 허광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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