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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노가 화친을 청하였으나 한나라 사신이 속국의 예로써 조회를 올리라는 제안을 하자 사신을 억류시킴

  • 국가
    흉노(匈奴)
일찍이주 001
각주 001)
漢 武帝 元狩 4년(전121)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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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의 두 장군주 002
각주 002)
두 명의 장군은 大將軍 衛青과 驃騎將軍 霍去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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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거 출격해 선우를 포위하여 죽이거나 사로잡은 것이주 003
각주 003)
『漢書』에는 “者”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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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9만이 되었는데, 한나라 사졸 중 죽은 자가주 004
각주 004)
物故 : ‘죽었다’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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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수만 명이었고, 한나라의 말도 십여만 [필]주 005
각주 005)
『漢書』에는 “匹”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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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 죽었다.주 006
각주 006)
『史記』의 출정한 말이 14만이 넘는데, 돌아온 것이 3만이 되지 않았다는 기록(권111 「衛將軍驃騎列傳」 “兩軍之出塞, 塞閱官及私馬凡十四萬匹, 而復入塞者不滿三萬匹” : 2938)을 통해 말의 피해가 10만이 넘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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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노가 비록 피폐하여 멀리 도망갔으나 한나라 말 역시 적어서주 007
각주 007)
『漢書』에는 “而漢馬亦少”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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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나가 [싸울] 수 없었다. 흉노가 조신의 계략을 채택해 한나라에 사신을 보내주 008
각주 008)
『漢書』에는 “遣使好辭請和親”로 ‘於漢’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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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말을 해 가며 화친을 청했다. 천자가 [이것을] 조정 대신들에게 논의하도록 했는데, 일부는 화친을 말하기도 하고, 일부는 [흉노를] 쫓아가서 신하로 만들어야 한다고도 했다. 승상장사(丞相長史)주 009
각주 009)
丞相長史 : 관직의 명칭으로 丞相의 屬官이다. 文帝 2년에 일시적으로 두 명의 長史를 두었다. 長史는 相府의 일을 總管하였고 秩은 천 석이었다. 三公은 모두 長史를 두어 그의 보좌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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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창(任敞)이 말하였다. “흉노는 패전한 지가 얼마 안 되어 [몹시] 곤궁하니주 010
각주 010)
『漢書』에는 “匈奴新困”으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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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땅히 귀속한 속국[外臣]으로 변경에서 조회를 드리도록 하게 하십시오.” [그러자] 한나라에서는 임창을 선우에게 사신으로 보냈다. 선우는 그의 제안을 듣고 크게 화를 낸 다음 억류하고 돌려보내지 않았다. 앞서 한나라 역시 [투항한] 흉노 사자를 억류한 바 있었기 때문에 선우 역시 번번이 한나라 사신을 억류하여 그에 대응했다. 한나라에서는 바야흐로 군사와 군마를 징발하려고 했는데, 때마침주 011
각주 011)
驃騎將軍 霍去病은 元狩 4년(전119) 漠北에서 전투를 한 지 3년 이후인 元狩 6년(전117) 가을 구월에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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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기장군 곽거병이 병사했기 때문에 이로부터 한나라는 오랫동안주 012
각주 012)
武帝 元狩 4년(전119) 匈奴를 격파한 이후에 元鼎 6년(전111) 가을 公孫賀와 趙破奴를 匈奴 공격을 위해 출진시킬 때까지 약 7 ~ 8년 동안 匈奴에 대한 더 이상의 공격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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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쪽으로 흉노를 공격하지 못했다.

  • 각주 001)
    漢 武帝 元狩 4년(전121)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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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2)
    두 명의 장군은 大將軍 衛青과 驃騎將軍 霍去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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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3)
    『漢書』에는 “者”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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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4)
    物故 : ‘죽었다’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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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5)
    『漢書』에는 “匹”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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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6)
    『史記』의 출정한 말이 14만이 넘는데, 돌아온 것이 3만이 되지 않았다는 기록(권111 「衛將軍驃騎列傳」 “兩軍之出塞, 塞閱官及私馬凡十四萬匹, 而復入塞者不滿三萬匹” : 2938)을 통해 말의 피해가 10만이 넘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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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7)
    『漢書』에는 “而漢馬亦少”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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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8)
    『漢書』에는 “遣使好辭請和親”로 ‘於漢’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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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9)
    丞相長史 : 관직의 명칭으로 丞相의 屬官이다. 文帝 2년에 일시적으로 두 명의 長史를 두었다. 長史는 相府의 일을 總管하였고 秩은 천 석이었다. 三公은 모두 長史를 두어 그의 보좌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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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10)
    『漢書』에는 “匈奴新困”으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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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11)
    驃騎將軍 霍去病은 元狩 4년(전119) 漠北에서 전투를 한 지 3년 이후인 元狩 6년(전117) 가을 구월에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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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12)
    武帝 元狩 4년(전119) 匈奴를 격파한 이후에 元鼎 6년(전111) 가을 公孫賀와 趙破奴를 匈奴 공격을 위해 출진시킬 때까지 약 7 ~ 8년 동안 匈奴에 대한 더 이상의 공격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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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인어
이름
조신, 임창(任敞), 임창, 곽거병
지명
한나라, 한나라, 한나라, 한나라, 한나라, 한나라, 한나라, 한나라, 한나라, 한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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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노가 화친을 청하였으나 한나라 사신이 속국의 예로써 조회를 올리라는 제안을 하자 사신을 억류시킴 자료번호 : jo.k_0001_0110_04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