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국왕 왕휘(王徽)를 치료하도록 한림의관(翰林醫官)을 보내는 조서(詔書)
좌간의대부 사관수찬 안도가 아뢰기를, “동해(東海)의 신(神)은 이미 왕작(王爵)이 있으나 홀로 사당이 없으니, 바라옵건대 명주(明州)의 정해(定海)와 창국(昌國) 두 현의 사이에 사우(祠宇)를 세우고 오고가는 상인에게 수리를 원조하도록 하옵소서.”라고 하니, 이를 따랐다. 더하여 건물은 백구(百區)로 하도록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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