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노가 화친을 끊고 다시 침입하였으나 효경제가 즉위한 후 다시 화친을 맺어 왕래를 시작함
군신선우가 즉위한 지 4년이 지나주 001흉노는 또 다시 화친을 끊고 대거 상군과 운중[군]을 각각 삼만 명 기병으로 들어와주 002죽이고 노략질을 많이 한 다음에 돌아갔다.주 003이에 한나라에서는 세 명의 장군주 004을 북지에, 대(代)에는 구주산에,주 005
조(趙)에는 비호구(飛狐口)
주 006에 주둔시켜 변경주 007을 따라 또한 수비를 단단하게 함으로써 흉노의 침입에 대비했다. 또한 세 장군들을주 008배치하여 장안 서쪽의 세류(細柳)
주 009와 위수(渭水) 북쪽의 극문(棘門)주 010, 패상(覇上)
주 011에 진을 쳐 흉노에 대비하게 했다. 흉노의 기병이 대의 구주[산] 주변으로 들어오자 봉화불이 감천(甘泉)
주 012에서 장안까지 전달되었다. 수개월이 지나 한나라 병사들이 변경에 이르니 흉노가 또한 변경 요새에서 멀리 가 버려주 013
한나라 군사들 역시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그 후 1년 남짓 지나 효문제가 붕어하고주 014
효경제가 즉위하니주 015조왕(趙王) 수(遂)
주 016가 몰래 흉노로 사신을 보냈다. 오나라와 초나라 [등 일곱 나라의] 반란이주 017일어났을 때 [흉노는] 조나라와 모의하여 변경을 침입하고자 했다. 한나라가 조나라를 포위해 격파하니주 018흉노도 [침입 기도를] 그만두었다. 그 뒤로주 019
효경제가 다시 흉노와 화친을 하고주 020관시(關市)를 열어 흉노에 [물자를] 보내 주고, 한나라 공주를 보냈는데, [이는] 본래의 약속과 같았다. 마침내 효경제의 시대에 때로주 021소규모의 변경 침범이 있었으나 대규모 침입은 없게 되었다.주 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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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주 021)
- 각주 022)
색인어
- 이름
- 군신선우, 효문제, 효경제, 수(遂), 효경제, 효경제
- 지명
- 상군, 운중[군], 한나라, 대(代), 구주산, 조(趙), 비호구(飛狐口), 장안, 세류(細柳), 위수(渭水), 패상(覇上), 대, 구주[산], 감천(甘泉), 장안, 한나라, 한나라, 오나라, 초나라, 조나라, 한나라, 조나라, 한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