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사만(長沙蠻), 영릉만(零陽蠻), 무릉만(武陵蠻)이 반역을 일으킴
영수(永壽) 3년(157, 후한
환제) 십일월 장사만(長沙蠻)이 반역을 일으켜 익양(益陽)
주 001에 진을 치고 머물렀다. 연희(延熹) 3년(160) 가을에 이르러 드디어 군의 변경지역을 노략질하면서 무리가 만여인에 이르고 수령과 관리를 살상하였다. 또 영릉만이 장사에 들어왔다. 겨울에는 무릉만 6,000여 인이 강릉(江陵)
주 002을 노략질하자, 형주자사 유도(劉度), 알자(謁者)주 003
마목(馬睦), 남군태수 이숙(李肅)이 모두 도망가 버렸다. 이숙의 주부(主簿)주 004
호상(胡爽)이 말머리를 잡아당기며 간청하기를, “만이들이 군(郡)에서 방비를 하지 않는 것을 알고, 그 틈을 타서 진격한 것입니다. 명부(明府)주 005께서는 나라의 대신으로서 성(城)을 따라 천 리에 모(旄)주 006를 게양하고 북을 울리시면 이에 호응하는 자가 십만 명은 될 터인데, 어찌 부절(符節)을 받은 군태수의 막중한 책임을 팽개치고 도망치는 사람이 되시려 합니까?” 이숙이 칼을 빼들고 호상을 향하여 “조무래기주 007는 꺼져라!, 태수가 지금 위급한 판에, 어찌 이따위 수작을 하느냐?” 호상은 말을 껴안고 극력 간언하였다. 이숙은 마침내 호상을 죽이고 도망하였다. 황제가 이 말을 듣고, 이숙을 잡아들여 기시(棄市)에 처하고, 유도와 마목은 감사일등(減死一等)주 008에 처하였다. 호상 일가에는 요역과 부세를 면제하고, 가족 중 한 명을 랑(郞)주 009으로 배수(拜授)하였다. 이에 우교령(右校令)주 010
도상(度尙)을 형주자사로 삼아 장사(長沙)의 적들을 토벌하게 하니, 평정되었다. 또 거기장군(車騎將軍) 풍곤(馮緄)
주 011
각주 011)
을 보내 무릉만을 토벌케 하니, 모두 항복하거나 해산하였다.주 012군대가 귀환하자 적들은 다시 계양(桂陽)을 노략질하였는데, 태수 요석(廖析)이 도망가 버렸다. 무릉만이 다시 군의 치소를 공격하였는데, 태수 진봉(陳奉)이 관리들을 이끌고 이를 격파하였다. 참수된 자가 3천여 급이고, 항복한 자가 2천여 인이 되었다. 영제(靈帝) 중평(中平) 3년(186) 무릉만이 다시 반란을 일으켜 군 지역을 노략질하니 주군(州郡)에서 이를 격파하였다.馮緄: 蠻夷 토벌에 대해서는 『後漢書』 권38, 「馮緄傳」에 상세하다. 당시 荊州刺史와 南郡太守가 도망하자, 馮緄이 車騎將軍으로 군사 10만여 명을 이끌고 나아가 토벌하게 하였다. 그런데 당시 천하에는 기근이 들고 재정은 궁핍한데 사방으로 전쟁을 치러야 했으므로 공경백관의 녹봉을 줄이고 제후왕이 받던 세금을 임시로 끌어다가 군자금으로 충당하게 할 정도였다. 그가 長沙에 도착하여 武陵蠻夷를 격파하고 적의 수급 4천여 급을 베고 10만여 무리의 항복을 받아내니 형주는 평정되었다. 그는 상서를 통해 應奉에게 그 공을 미루었는데 당시 應奉은 從事中郞으로 從軍하여 만이 평정에서도 일정한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군대가 회군한 틈을 타 장사의 만이가 다시 일어나 계양, 무릉을 공격하자 군대를 돌려 이들을 다시 평정하였다. 그 후 조정으로 돌아와 廷尉가 되었는데, 黨錮事件에 연루되어 화를 입을 뻔하였으나 응봉의 상소로 이를 면하고 뒤에 다시 복직되어 생을 마쳤다.
- 각주 001)
- 각주 002)
- 각주 003)
- 각주 004)
- 각주 005)
- 각주 006)
- 각주 007)
- 각주 008)
- 각주 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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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011)
馮緄: 蠻夷 토벌에 대해서는 『後漢書』 권38, 「馮緄傳」에 상세하다. 당시 荊州刺史와 南郡太守가 도망하자, 馮緄이 車騎將軍으로 군사 10만여 명을 이끌고 나아가 토벌하게 하였다. 그런데 당시 천하에는 기근이 들고 재정은 궁핍한데 사방으로 전쟁을 치러야 했으므로 공경백관의 녹봉을 줄이고 제후왕이 받던 세금을 임시로 끌어다가 군자금으로 충당하게 할 정도였다. 그가 長沙에 도착하여 武陵蠻夷를 격파하고 적의 수급 4천여 급을 베고 10만여 무리의 항복을 받아내니 형주는 평정되었다. 그는 상서를 통해 應奉에게 그 공을 미루었는데 당시 應奉은 從事中郞으로 從軍하여 만이 평정에서도 일정한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군대가 회군한 틈을 타 장사의 만이가 다시 일어나 계양, 무릉을 공격하자 군대를 돌려 이들을 다시 평정하였다. 그 후 조정으로 돌아와 廷尉가 되었는데, 黨錮事件에 연루되어 화를 입을 뻔하였으나 응봉의 상소로 이를 면하고 뒤에 다시 복직되어 생을 마쳤다.
- 각주 012)
색인어
- 이름
- 환제, 유도(劉度), 마목(馬睦), 이숙(李肅), 이숙, 호상(胡爽), 이숙, 호상, 호상, 이숙, 호상, 이숙, 유도, 마목, 호상, 도상(度尙), 형주, 풍곤(馮緄), 요석(廖析), 진봉(陳奉), 영제(靈帝)
- 지명
- 후한, 장사, 익양(益陽), 영릉, 장사, 무릉, 강릉(江陵), 장사(長沙), 무릉, 계양(桂陽), 무릉, 무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