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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스키노발해성

4) 중간생활면 금당지

1999년에 제21구역에서 조사되었다. (위생활면) 금당지의 북쪽에 바로 인접하여 위치한다. 중간생활면 금당지는 남쪽 부분이 (위생활면) 금당지의 북쪽 부분과 약간 겹 놓인 상태인 것으로 판단되었다. 다만 도면에서는 겹 놓인 양상이 분명하게 구분되지는 않는다. 제21구역에서는 4개의 인공층을 구분하여 조사를 하였는데 중간생활면 금당지는 제1인공층인 표토를 제거하고 난 다음인 제2인공층에서 이미 그 존재가 확인되었다. 제2인공층에서는 기단의 북서쪽 석축마감 일부가 노출되었다. 이 기단의 석축마감 남쪽 부분에서는 와적층이 발견되었는데 (위생활면) 금당지의 지붕에서 떨어져 내린 것으로 판단되었다. 기단의 석축마감은 제3인공층에서 모두 노출되었고, 석축마감이 남아 있지 않는 기단의 북동변과 남동변은 제4인공층에서 확인되었다.
제21구역의 중간생활면 금당지 위 레벨에서는 원래 자리를 이탈한 수 개의 초석이 확인되었다 (도면 17). 초석들은 크기가 40×70㎝, 두께가 30~40㎝로 대형이며, 상면의 레벨은 모두 레벨 기준점에서 -75~-76㎝로 비슷하다. 하지만 일부 초석들은 중간생활면 금당지 기단 밖에 위치한다. 이 초석들은 표토와 부식토 제거 후에 바로 노출되었기 때문에 중간생활면 금당지와 관련이 있는지는 분명하지 못하다. 그 외에 중간생활면 금당지의 남쪽 부분에서는 다량의 돌과 와편들이 발견되었는데, 돌들은 기단의 석축마감이 무너져 생긴 것으로, 기와들은 (위생활면) 금당의 지붕에서 떨어져 내린 것으로 각각 판단되었다.
도면 17 | 서북지역 북부 사찰구역 중간생활면 금당지 노출 시 평면도(1999)
중간생활면 금당지의 기단은 북동변이 길이 약 8m이고, 나머지 부분은 (위생활면) 금당지와의 겹 놓인 관계로 인해 분명하지 못하다(도면 18). 북서변의 노출된 부분 대부분과 북동변의 서쪽 끝부분에는 석축마감이 남아있다. 석축마감에는 돌이 1~2단 남아 있는데 너비는 30~40㎝, 높이는 15~20㎝이다. 북동벽 대부분과 남동벽에는 석축마감이 남아 있지 않지만, 토축기단의 경계는 단단함 암갈색 사질토 띠에 의해 잘 구분이 되었다. 이 기단 건물은 대체로 네모서리가 방위방향으로 나있다. 이 기단의 남쪽 부분은 금당지 기단에 의해 덮여 있었기 때문에 조사를 하지 못하였다. 기단 위에는 초석이 전혀 남아 있지 않았다.
도면 18 | 서북지역 북부 사찰구역 중간생활면 금당지 평면도(1999)
석축마감이 남아 있는 곳의 바깥에서, 다시 말해서 북서변과 북동벽 석축마감의 바깥에서는 중간생활면 금당의 지붕에서 떨어져 내린 기와가 무더기로 발견되었다(도면 19; 20). 이 기와들 사이에서는 치미편들이 함께 발견되었다. 이곳에서 수습된 와편은 1,898점이다. 이 사실은 중간생활면 금당도 치미로 장식된 기와지붕의 건물이었음을 말한다.
도면 19 | 서북지역 북부 사찰구역 중간생활면 금당지 모습(1999, 북서쪽에서)
도면 20 | 서북지역 북부 사찰구역 중간생활면 금당지 모습(1999, 북서쪽에서)
중간생활면 금당지 기단의 남쪽 가운데 부분에는 3호로 명명된 구덩이가 하나 위치한다. 크기는 깊이 70㎝, 직경 105㎝이다. 구덩이의 내부는 다량의 중간 크기 돌들이 포함된 암회색 사질토로 채워져 있었다. 돌들은 구덩이의 벽을 따라 많이 확인되었고, 또 바닥에도 돌을 깔았다. 이곳에서는 윤제 토기편들과 와편들, 1점의 와당편 등이 발견되었다. 구덩이의 윗부분은 회색 사질토로 채워졌는데 이곳에도 돌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 구덩이는 기단을 조성하고 난 다음에 판 것으로서 기단의 위쪽 모래 성토 부분을 파고 들어갔다. 구덩이의 바닥에 돌을 깔았기 때문에 초석을 놓은 자리였을 것으로 판단되었다.
중간생활면 금당지가 조사된 제21구역에서는 다량의 유물이 출토되었고, 인공층 단위로 보고가 되었다. 표토에서는 청나라 동전 2점(도면 1999-38, 1-2), 청동 대롱(도면 1999-38, 3), 청동 비녀 머리편(도면 1999-41) 등이 출토되었다. 청동 대롱은 발해의 것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제2인공층에서는 다량의 놀이 알, 철제 못, 주철제 솥편. ‘女’ 명문 토기편(도면 1999-50)(도면 966, 3), 삼채기편, 토제 구슬(도면 1999-48), 토기 기벽으로 만든 방추차(도면 1999-51, 1), 철제 꺾쇠편(도면 1999-53, 1), 꺾쇠(도면 1999-55, 1), 쌍각미늘(도면 1999-55, 2), 배목(도면 1999-54, 1, 3), 고깔모양 유물(도면 1999-56, 2), 화살촉(도면 1999-56, 1), 청동 띠꾸미개(도면 1999-44; 45)(도면 737; 736, 2), 버클(도면 1999-43)(도면 375, 2), 비녀 머리(도면 1999-39~41)(도면 732, 3, 4), 비녀 막대기(도면 1999-42)(도면 732, 9), 홍옥 구슬(도면 1999-47) 등이 출토되었다.
제3인공층에서는 와당편, 놀이 알, 치미편, 토기 다리편, 향로편, 토제 고리편, 토제 벼루편(도면 1999-71)(도면 654, 1), 철제 못, 철제 배목, 철제 열쇠(도면 1999-73), 철제 갈고리(도면 1999-72, 2), 주철제 차관편, 숫돌(도면 1999-72, 3), 식물문양으로 장식된 청동 띠 장식(도면 1999-59)(도면 739, 6), 금동 불상(도면 1999-60)(도면 620, 3) 등이 출토되었다. 금동불상은 우-8방안, 다시 말해서 기단의 동쪽 모서리 바깥에서 발견되었다.
제4인공층에서는 토기 다리(도면 1999-76, 1, 2), 촛대 다리 받침(?) (도면 1999-77), 명문 토기편(도면 1999-76, 3), 놀이 알, 철제 화살촉(도면 1999-78, 1), 철제 걸쇠(도면 1999-79) 등이 출토되었다.
제4인공층 출토유물은 중간생활면 금당지와 관련시킬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되지만, 나머지 유물들은 사실 유구와의 상관관계를 파악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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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중간생활면 금당지 자료번호 : kr.d_0016_0020_0010_00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