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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스키노발해성

3) 금당지

1980년에 면적 2.5㎡의 제3구역에 대한 시굴조사를 통해 그 존재가 확인되었다(도면 10). 크라스키노성 절터 혹은 금당지라고 말할 때에는 바로 이 금당지를 일컫는다(도면 11). 1981년에 이곳에 제5구역을 설정하여 금당지 기단에 대한 조사를 실시하였다. 다만 이 금당지 기단 밑으로는 더 이상 발굴조사를 진행하지 않았다. 1999년에 제21구역에서 조사된 보다 이른 시기의 추정 금당지는 “중간생활면 금당지”로 구분되어 불리어진다.
도면 10 | 서북지역 북부 사찰구역 금당지 제3구역 시굴 기와 노출 모습(1980)
도면 11 | 서북지역 북부 사찰구역 금당지 노출 모습(1981, 북서쪽에서)
금당지가 있는 곳은 발굴 전 지면이 주변보다 약5 0㎝ 높은 나지막한 둔덕-기단을 이루고 있었다. 표토(두께: 기단 부분 10~20㎝, 가장자리 부분 36㎝) 바로 아래에서 금당의 잔해가 노출되었다. 기단은 석축마감 토축 기단이다(도면 12; 13). 기단토는 회색 사질토이며, 인위적으로 만든 기단의 두께는 가장자리 부분은3 0~50㎝, 가운데 부분은 80㎝까지이다. 기단의 가장자리는 판돌을 쌓아 마감하였는데 2단이 남아 있다. 위의 단은 판돌이 빠진 부분도 있다. 기단 마감재로 사용을 한 판돌의 크기는 큰 것은 길이 85㎝, 너비 60㎝, 두께 35㎝ 정도이고, 대부분은 이 보다 약간 작은 크기이다. 어떤 판돌은 두께가 5㎝ 이하인 것도 있다. 아래단에 사용한 판돌은 두께가 대체로 위의 단에 비해 얇은 편이다. 기단 마감석의 잔존 높이는 10~50㎝이다. 하지만 기단의 전체 높이는 원래 약 1m이었던 것으로 추정되었다.
도면 12 | 서북지역 북부 사찰구역 금당지 남동 모서리 부분 모습(1981)
지붕에서 무너져 내린 와편들은 기단 위에서는 드물게 발견되었고, 기단의 가장자리를 따라서 많이 집적되어 있었다(도면 13). 1981년 발굴조사 당시에는 제5구역의 남서쪽 모서리 부분에서 기와가 많이 퇴적되어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 이후 기단 주변에 대한 확장조사에서 지붕에서 떨어져 내린 기와들이 남동쪽 일부분 등을 제외하고 대체로 기단의 주변을 따라서 전체적으로 다수 퇴적되어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
도면 13 | 서북지역 북부 사찰구역 금당지 남서벽 모습(1981, 남동쪽에서)
기단 위에서는 모두 25개의 초석이 남아 있었다(도면 14). 초석이 빠진 부분도 있어 원래는 30개의 초석이 있었던 것으로 판단되었다. 계단의 위치로 보아 정면 5칸, 측면 4칸의 건물에 해당한다. 금당 건물 자체의 크기는 초석의 위치를 통해 7.4×8.2m인 것으로 판단되었다.
도면 14 | 서북지역 북부 사찰구역 금당지 평면도(1981)
그 외에도 기단의 북쪽 모서리의 안쪽 및 바깥쪽 그리고 서쪽 모서리 부분에서 원래 자리를 이탈한 초석으로 보이는 돌들이 몇 개 확인되었다. 초석의 안쪽은 강돌로 꽉 채워져 있고, 가운데 부분은 그 위로 작은 자갈과 모래로 다시 덮여 있었다. 다만 초석 자리에 얕은 구덩이만 남아 있는 서쪽 부분에는 일부 바닥에 깐 자갈돌도 남아 있지 않다. 기단 위 초석 안쪽의 자갈돌은 가장자리 부분은 두께 10㎝ 이상이고, 안쪽으로 가면서 점차 두꺼워져 가운데 부분은 두께가 20㎝까지 되었다. 기단 위에는 전체적으로 자갈을 깔았던 것으로 판단되었다. 가운데 부분은 자갈층의 높이가 주변보다 10~30㎝가 더 높은데 이곳에 불단이 위치하였을 것으로 추정되었다(도면 15). 바로 이곳에서 금동불상이 1점 출토되었다.
도면 15 | 서북지역 북부 사찰구역 금당지 모습(1981, 남쪽에서)
기단은 평면모양이 장방형이며 네 모서리가 방위방향으로 배치되었다. 장변은 양쪽이 모두 11.8m이고, 단변은 양쪽이 모두 10.4m이다. 기단의 남서벽 가운데 부분에는 크기가 130×130㎝인 계단이 위치한다(도면 16). 계단의 삼면은 기단과 마찬가지로 2단의 석축으로 마감하였다. 석축 마감의 높이는 10~12㎝이다. 계단 위에서도 다량의 와편이 출토되었다.
도면 16 | 서북지역 북부 사찰구역 금당지 남서쪽 계단 모습(1981)
기단의 둘레 사방에서는 다량의 와편과 온전한 기와들이 퇴적되어 있었다. 기와는 모두 회색이고, 기와들 사이에서 철제 못들도 발견되었는데 기와를 지붕에 고정하는데 사용하였을 것으로 추정되었다. 퇴적된 와적층의 두께는 10~15㎝까지였으며, 기단의 남동쪽과 북서쪽에서 특히 많은 기와가 발견되었다. 기단 입구의 계단 앞쪽에서 치미의 편들로 보이는 토제 장식품들도 발견되었다.
와편들을 수습하고 난 다음에 계단에서 서쪽 모서리까지 기단의 남서쪽 가를 따라 두께 10㎝의 다진 회색 점토층이 너비 100㎝ 범위로 분포하고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
기단 위의 초석과 자갈층을 제거하고 그 아래로 기단토를 이루고 있는 회색 사질토를 조사하였는데 이곳에서는 위의 암회색 모래층의 기와들과는 질과 색깔이 크게 차이가 나는 와편들이 확인되었다고 보고하였다. 기단의 북서쪽 모서리 부분에서는 기단토 아래에서 수 개의 구덩이들이 조사되었는데 그중의 하나(5호 구덩이)는 깊이가 30㎝이고, 너비가 168㎝이며, 내부가 회색 사질토로 채워져 있었다. 이 구덩이에서는1 8점의 적색 와편과 6점의 작은 주철제 솥편이 출토되었다.
금당지가 있는 제5구역에서는 금동 불상(도면 620, 1), 석제 불상(도면 621), 석제 불상편들(도면 623, 1~3), 주철제 풍탁 3점(도면 1981-25, 1, 2, 3)(도면 721, 1), 주철제 완(도면 701, 1), 토기 완(도면 1981-27, 5), 토기 삼족기들(도면 1981-27, 1, 2, 4), 토기 다리(도면 1981-28), 삼채기편(도면 1981-37), 화문장식 의례용기(도면 1981-29)(도면 963, 26; 964, 10), 발해 입방체(도면 1981-30), 철제 화살촉(도면 1981-31), 철제 칼 슴베 부분, 원통형 끝장식, 주철제 모루모양 유물(도면 1981-34), 주철제 솥 편 25점, 청동 과대장식 2점(도면 1981-35, 1, 2)(도면 736, 1; 737, 1), 청동 팔찌편(도면 1981-35, 4)(도면 733, 7), 청동 축(도면 1981-36), 토기 동체부편 혹은 와편으로 만든 놀이 알들, 다량의 기와 등이 출토되었다.
기와는 암키와, 수키와, 모서리기와, 착고기와가 있다. 암키와는 하단부에 문양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이 있는데, 문양은 기본적으로 하단부에 2줄의 홈선을 내고 그 사이에는 대롱무늬나 구멍무늬를 시문하고, 양쪽 가장자리에는 눈금을 새긴 것과, 혹은 단순하게 지두문을 시문한 것이다. 수키와는 와당이 부착된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와당은 기본적으로 연꽃을 양식화한 연화문으로 장식되었다. 와당이 부착된 수키와는 크기가 길이 37.5㎝, 와당 직경 15.4~16.2㎝, 꼬리 부분 너비 9.5㎝이고, 두께는 머리 부분이 1.5~2㎝, 꼬리 부분이 1~1.6㎝이다. 와당이 부착되지 않은 일반 수키와는 길이가3 2.5~34.5㎝로 변동을 보이며, 머리 부분과 꼬리 부분의 너비는 15.5~16.6㎝와 9.3~9.8㎝이다. 두께는 와당이 부착된 것과 비슷한 것으로 보고되었다. 수키와의 꼬리부분은 좁아지는 토수기와와 단이 진 미구기와 두 종류가 보고되었다. 미구기와의 경우 미구의 길이는6㎝ 이고, 미구의 홈 너비는 1.7㎝이며, 미구의 가운데에 못 구멍이 뚫려 있다. 미구기와는 온전한 것이 남아 있지 않아 전체 길이가 파악되지 못하였다. 착고기와는 편 상태의 것만 2점 출토되었다.
기와는 절대다수가 회색이다. 다만 기단토 내에서 출토된 와편들은 색깔이 밝은 오렌지색이고 내면의 포 흔적이 보다 얇은 직물의 흔적인 것으로 보고되었다. 기단토 내 출토 암키와 중에는 회청색이면서 등면에 승문타날이 남아 있는 것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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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금당지 자료번호 : kr.d_0016_0020_0010_0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