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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고대문화유산

본계 유가초 유적

本溪 劉家哨 遺蹟
  • 저필자
    이후석(숭실대학교)
  • 날짜
    1986
  • 시대
    초기철기시대
  • 위치
  • 원소장처
    요령성 본계시 본계만족자치현 부루향 유가초촌
  • 시대
    상고사
  • 유형
    무덤
유적개관
* 태자하(太子河) 상류의 북안으로 약 500m 떨어진 지점의 유가초촌 구릉 아래에 위치함.
* 1978년 마을 주민이 구덩이를 파다가 석관묘를 발견하였는데 지표 아래 1.5m 깊이에서 확인됨.
* 1986년 확인조사 당시에는 모두 파괴되어 구체적인 무덤 구조는 파악하지 못했으며, 토기편 여러 점을 추가로 수습함.
유구개관
* 파괴 석관묘. 상세내용 미보고.
유물개관
* 토기 6, 세형동검 3, 청동겸병, 동모, 다뉴경 등 각종 청동기류.
참고문헌
梁志龍, 「遼寧本溪劉家哨發現靑銅短劍墓」, 『考古』 第4期, 1992
해설
유적은 본계현 소재지에서 북동 방향으로 약 17㎞ 떨어진 유가초촌 구릉 아래에 위치한다. 유적이 자리한 곳은 태자하(太子河) 상류의 북안으로 약 500m 떨어진 구릉 아래의 계단식 지형이다. 1978년 마을 주민이 구덩이를 파다가 돌널무덤[석관묘(石棺墓)]을 발견하고 청동유물을 수습하여 알려지게 되었으며, 1986년 본계시 박물관에 의해 현장조사가 실시되었다.
돌널무덤은 조사 전에 이미 파괴되어 구체적인 무덤 구조는 파악하지 못했으나 토기편 여러 점을 추가로 수습하였다. 지표 아래 1.5m 깊이에서 대소형의 판석 아래에서 부정형의 석재로 축조된 돌널[석관(石棺)]이 있었으며, 바닥에도 소형 판석이 놓여 있었다고 한다. 돌널은 장방형이며, 주축은 남북방향이다. 내부에는 머리 방향을 남쪽으로 둔 인골 1구가 남아 있었는데, 우측 허리에서 머리 사이에는 청동유물이 부장되어 있었고, 좌측 머리에서 다리 사이에는 토기 6점이 열을 지어 부장되어 있었다. 돌널의 크기는 남북 길이 약 200㎝, 동서 너비 약 150㎝이다.
출토유물은 동검자루[청동검병(靑銅劍柄)]와 검자루맞추개돌[석제검파두식(石製劍把頭飾)], 그리고 청동칼집[청동검초(靑銅劍鞘)]이 장착되어 있는 것을 포함하여 세형동검(細形銅劍) 3점, 유엽형동모(柳葉形銅鉾) 1점, 다뉴경(多鈕鏡) 1점, 동물형장식품 2점, 청동반지[동환(銅環)] 1점 등이 있고, 이외에도 무문토기편 여러 점이 수습되어 있다.
세형동검은 몸체 하부가 약간 곡선적이면서 등대에 마디가 있는 것과 다소 직선적이면서 마디가 없는 것이 있다. 청동칼집은 상위 지배층에 속한 무덤에만 부장되는 유물인데, 번개무늬가 표현되어 있어 이전 단계의 비파형동검문화 전통을 계승하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유엽형동모는 몸체가 약간 곡선적이면서 양측에는 단사선문을 대칭되게 표현하여 마치 나뭇잎의 잎맥을 연상하게 하는 것이어서 엽맥문동모(葉脈文銅鉾)라 부르기도 하는 형식이다. 다뉴경은 주된 문양으로 물새 6마리가 표현되어 있고, 그 외곽으로 꼬은무늬[사승문(蛇繩文)]가 표현되어 있어 북방계 동물문 청동기와 중원계 청동기의 문양 요소가 복합되어 있는 독특한 양식으로 평가되고 있다. 주문양을 강조하여 ‘수조문경(水鳥文鏡)’이라 부르기도 한다. 동물형장식품은 호랑이나 양을 표현한 것으로 보이는데, 원래 북방초원계 동물장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요동 산간지역의 세형동검문화를 대표하는 유적으로 토착문화를 바탕으로 북방초원계통과 중원계통의 청동기문화의 요소가 복합되어 있는 점이 특징이다. 연대는 전국 후기 또는 기원전 3세기 전반대로 추정되고 있다. 출토유물은 현재 본계시 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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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계 유가초 유적 자료번호 : isea.d_0001_0010_0040_0040_00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