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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고대문화유산

석교리유적

龍淵 石橋里遺蹟
  • 저필자
    문수균(미래문화재연구원)
  • 날짜
    1959
  • 시대
    청동기
  • 원소장처
    황해남도 용연군 석교리
  • 시대
    상고사
  • 유형
    복합
규모
높이: 10~25cm, 너비: 20㎡
입지
1959년 고고학 및 민속학연구소에서 황기덕 등에 의해 조사.
유적개관
장산곶 반도 좌우해안의 용연읍과 장연읍 사이 길가에 있는 석교리 북쪽의 남산 기슭에 위치. 각형토기인의 주거지 4기와 남방식지석묘 5기가 조사됨.
출토유물
* 각형토기, 유경식석검, 석부, 돌끌, 숫돌, 대팻날, 반월형석도, 방추차
참고문헌
「황해도 용연군 석교리 원시유적 간략보고」
해설
석교리유적은 황해남도 용연군 석교리 북쪽 남산 밑을 흐르는 매지연못 기슭에 위치한 청동기시대 유적이다. 이 곳에서는 주거지 4기와 고인돌 5기가 발굴되었는데, 유적 근처에 20여기의 고인돌이 더 있고, 가까이 용정리와 용연읍에도 고인돌이 10여기씩 줄지어 있는 것이 알려져 있다. 층위는 얇은 겉흙층(25~30㎝)아래에서 문화층이 드러나는데, 문화층의 두께도 10㎝ 안팎으로 얇게 덮여 있고, 바로 주거지 바닥이 드러나는 것을 보면 수혈주거지가 아닌 지상 가옥이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주거지는 면적 20㎡ 내외의 방형·장방형 수혈주거지로 수혈깊이는 10∼25㎝이다. 진흙 바닥을 다지고 구운 것이며, 화덕자리나 기둥구멍은 보이지 않는다.
유물은 저부가 불안정하고 일부 마연되어 있는 각형토기와 유경식석검·석부·돌끌·숫돌·대팻날·반월형석도·방추차 등이 출토되었다.
고인돌은 상석 밑에 바닥은 강돌을 깔고 네 벽은 판석으로 조립해 매장시설을 만든 형태이며, 유물은 출토되지 않았다.
석교리유적은 유물출토상으로 미루어볼 때 신석기시대말기 문화층인 금탄리(金灘里) 2문화층에서 팽이형토기로 발전해나가는 과도기에 해당하고 있어, 팽이형토기문화의 이른 시기 유적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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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교리유적 자료번호 : isea.d_0001_0040_0070_0010_0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