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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고대문화유산

남사리2호고분

南寺里二號古墳
  • 저필자
    문수균(미래문화재연구원)
  • 날짜
    1969
  • 시대
    원삼국~삼국
  • 위치
  • 원소장처
    평양시 낙랑구역 남사리
  • 시대
    상고사
  • 유형
    무덤
규모
남북: 7.54m, 높이: 4.8m, 동서: 5.55m
입지
1969년 북한 사회과학원에 발굴.
유적개관
봉분 크기는 네 밑변이 각각 25m나 되는 방형이고 널길은 남쪽으로 났고 널방은 북쪽에 안칸, 남쪽에 앞칸이 있으며 앞칸 동쪽에 작은 곁칸이 달림. 천장은 궁륭식으로 쌓음.
출토유물
* 금동칠상, 질그릇, 금동장식 14점.
참고문헌
「조선유적유물도감2」
해설
평양시 낙랑구역 남사리에 있는 고구려 초기의 고분군이다. 유적의 위치는 대동강 남안(南岸) 약 2.5㎞ 지점에 위치한 오봉산(五峰山) 주위에 분포해 있다. 이 지역은 낙랑군 시기의 문화유적권에 해당되며, 고분의 성격도 목곽묘(木槨墓)와 전축분(塼築墳)이 주묘제로 이용되었다. 이들 양 묘제의 대표적인 예로 남사리 제1호분과 제2호분을 들 수 있다.
제1호분은 오봉산의 동북쪽 기슭에서 북쪽으로 약 300m 떨어진 지점에 위치한다. 봉토(封土)의 지름이 24m, 높이 3.5m인 원형의 토광목곽묘(土壙木槨墓)이다. 무덤의 구조는 묘광을 긴 타원형으로 파 내려가다가 중간에 단을 만들고 다시 좁게 파 내려가 묘광 상부와 바닥의 넓이가 다르다. 묘광 안에는 장방형 목곽을 설치하고, 목곽의 상부가 묘광 중간에 형성된 단과 같은 높이가 되도록 축조하였다. 목곽 안에는 방형의 주곽을 따로 설치하였다. 부장품은 칠반(漆盤)을 비롯한 약간의 칠기와 토기류 등이 출토되었다.
제2호분은 오봉산의 주봉(主峰)에서 동남쪽으로 약 600m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전실(前室)과 후실(後室), 그리고 전실에 감실(龕室)이 딸린 전형적인 전축분으로 지면에서 약 1m 가량 판 뒤 묘실을 만든 반지하식이다. 봉토의 크기는 남북 26m, 동서 24m이고, 고분의 동·서·북변은 경사가 매우 심한 편이고, 특히 북쪽은 낭떠러지를 이루고 있다. 남쪽에 있는 연도는 안으로 들어갈수록 조금씩 좁아지고 낮아지는 구조이다. 바닥과 벽 모두 벽돌로 축조되었으며, 상부로 갈수록 점점 좁아지도록 정연하게 쌓아올린후, 그 위에 두꺼운 화강암 판석을 덮은 다음 다시 벽돌을 세겹 정도 더 쌓았다. 전실은 바닥에 벽돌을 두겹 정도 깔고, 천장은 궁륭식천장(穹窿式天障)으로 축조하였다. 바닥에서 가장 높은 곳까지는 5m 높이에 이른다. 부장품은 후실에서는 말재갈(轡)모형을 비롯해 주로 거마구(車馬具)가 출토되었다.
전실에서는 제단 위에 놓인 금동칠반(金銅漆盤)·금동이배(金銅耳杯)처럼 부분적으로 금도금을 한 칠기류와 일상용품, 토기류 등이 수습되었다. 특이한 것은 감실에 한 점의 유물도 부장되지 않은 점인데, 그 이유는 알 수 없다. 남사리 2호분의 축조연대는 대개의 이 지역 전축분에서와 같이 2세기 중엽∼3세기 초로 편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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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사리2호고분 자료번호 : isea.d_0001_0040_0010_0010_0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