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내용 바로가기하단 바로가기
상세검색
  • 디렉토리 검색
  • 작성·발신·수신일
    ~
동아시아 고대문화유산

포항 성곡리 유적

  • 저필자
    황재훈(서울대학교)
  • 날짜
    2008~2010
  • 시대
    청동기~조선
  • 위치
  • 원소장처
    경상북도 포항시 흥해읍 성곡리 1036번지 일대 2008~2010년 한빛문화재연구원
  • 시대
    상고사
  • 유형
    기타
입지
2008~2010년 한빛문화재연구원에서 발굴조사 시행.
유적개관
청동기시대 주거지, 원삼국시대 주거지, 목관묘, 옹관묘, 삼국시대 건물지, 통일신라시대 건물지, 우물, 조선시대 경작지와 수로 등이 확인됨. 이 유적에서 주목되는 것은 12호 옹관묘로, 주옹은 파수부호를 사용하였고, 부옹은 작은 장란형 옹을 사용하였는데, 이 옹관에서 각종 철기류와 청동 부속구 등과 함께 표면에 직조물이 부착된 성운문경이 확인된 것인데, 원삼국시대 영남지역의 옹관묘에서 이처럼 유물부장이 이루어진 것은 흔치않음.
출토유물
* 주머니호, 조합식우각형파수부호, 파수부배, 파수부시루, 단경호, 옹, 청동제 소환, 동검, 동경, 철검, 철모, 철제단검, 검파두식, 청동 부속구, 철부, 고배, 완, 부채, 성운문경 등
참고문헌
「포항 성곡지구 원삼국시대 분묘유적」
「유적발굴성과 발표자료집」
해설
포항시는 경상북도 동남부 동해안에 위치한다. 동쪽은 동해, 서쪽은 영천시, 남쪽은 경주시, 북쪽은 영덕군, 청송군과 경계를 이룬다. 북서부는 태백산맥의 남단으로 고도가 높고 기복이 심한 편이다. 해발 1,113m의 면봉산을 비롯하여 수석봉, 자초산, 구암산, 동대산, 비학산 등의 높은 산들로 둘러싸여 있다. 시의 중앙을 동에서 서로 관류하는 형산강은 칠성천과 합류하여 동해에 이른다. 홍해읍은 포항시 중앙부에서 약간 북쪽에 위치하는데 해발 384m의 도음산에서 동쪽으로 뻗어 내린 지맥들 가운데 학림천을 따라 뻗은 구릉지대에 해당한다.
성곡리유적은 초곡천 주변지역에 위치한 구릉지대이다. 초곡천은 직선거리 10㎞, 폭 10~25m 정도의 소하천이다. 초곡천 주변에서는 초곡리유적, 대련리유적, 지곡동유적, 남송리유적, 대련리유적 등 청동기시대 유적이 조사된바 있다. 이 외에도 마산리 고분군, 옥성리 고분군, 남미질부성, 초곡리 고분군, 학천리 고분군 등 역사시대 유적들도 다수 분포한다.
성곡리 1036-1번지 도시개발사업 부지에 해당하여 2006년 한빛문화재연구원에 의해 정밀지표조사가 실시되어 유적의 존재가 확인되어 2007년 동 기관에 의해 시굴조사가 실시되었다. 조사 결과 청동기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다양한 유구가 확인되어 2008년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다. 조사결과 청동기시대 집자리를 비롯하여 원삼국시대~삼국시대의 집자리와 건물지, 가마, 널무덤, 우물, 구덩유구, 경작유구, 도로유구, 도랑유구 등 수많은 유구가 확인되었다. 이후 2008년~2009년, 포항 영일만 신항 배후도로구간인 성곡리 149전 일원, 성곡리 1006답·산 210-2임 일원에 대한 발굴조사가 경상북도문화재연구원에 의해 실시되어 청동기시대 집자리 5기를 비롯한 여러 유구가 추가로 조사되었다.
청동기시대 집자리는 Ⅰ구역에서 57기, Ⅱ지구에서 3기로 총 60기가 조사되었다. 구릉 정상의 평탄면에서부터 사면에 걸쳐 등고선과 나란한 방향으로 조성되었다. 집자리는 모두 방형계로 방형, 장방형, 세장방형으로 구분된다. 바닥은 굴착한 생토면 위에 입자가 고운 진흙을 깔아 다져 생활면으로 활용한 것과 별다른 시설 없이 그대로 사용한 것으로 구분된다. 집자리 내부에는 화덕자리, 주혈, 벽도랑, 저장공 등의 시설이 확인된다. 화덕자리는 무시설식 화덕자리, 위석식 화덕자리, 부석식 화덕자리, 점토식 화덕자리로 다양한 편인데 1~2기가 내부 중앙 또는 한쪽에 치우쳐 시설되어 있다. 기둥구멍은 직경 12~30㎝ 크기로 2×3의 6주식, 2×4의 8주식, 2×6의 12주식의 배치를 보이지만 정연성을 갖추지 못하거나 기둥구멍이 없는 것도 다수이다. 장벽과 단벽에는 단면 U자형의 벽도랑이 시설되어 있는데 내부에는 벽체를 세우기 위한 기둥구멍이 열을 지어 시설되어 있다. 모서리 벽면에는 평면 원형의 저장공이 확인된다. 가장 큰 집자리는 Ⅲ구역 1호 집자리로 760×446×17㎝ 크기로 면적은 33.8㎡이다. 일부 집자리는 바닥에 다량의 목탄이 확인되는 것으로 보아 화재 폐기된 것으로 보인다. 마을의 조성연대는 집자리에서 검출된 방사성탄소연대를 기준으로 기원전 12세기~8세기(2640±50 BP~3130±60 BP) 정도로 편년된다.
유물은 구멍무늬토기, 단사선토기, 골아가리, 겹아가리토기, 흔암리식토기, 민무늬토기, 항아리형토기, 민무늬토기, 깊은바리형토기, 그물추 등의 토기류와 원판형석기, 간돌도끼, 대팻날도끼, 갈돌, 갈판, 숫돌, 갈돌, 반달돌칼, 삼각형돌칼, 돌창, 가락바퀴, 간돌화살촉, 간돌검, 홈자귀 등의 석기류가 출토되었다.
성곡리유적에서 조사된 서로 다른 문양의 민무늬토기와 다양한 구조의 주거 형태와 같이 양적・질적으로 풍부한 고고 자료는 한반도 동남해안일대 청동기시대 물질문화의 변화상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기 확보되었다. 또한 해안과 평야, 하천과 접해 있는 유리한 환경 조건과 배경을 기반으로 등장한 대규모 마을의 취락 패턴을 비롯한 전반적인 생활상을 파악할 수 있는 유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오류접수

본 사이트 자료 중 잘못된 정보를 발견하였거나 사용 중 불편한 사항이 있을 경우 알려주세요. 처리 현황은 오류게시판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전화번호, 이메일 등 개인정보는 삭제하오니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포항 성곡리 유적 자료번호 : isea.d_0001_0030_0040_0010_0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