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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고대문화유산

능등객원

能登客院
  • 저필자
    한영화(성균관대학교)
  • 시대
    발해
  • 위치
  • 원소장처
    일본 이시카와[石川]현 하쿠이[羽咋]시
  • 시대
    발해
  • 유형
    건축지
유적개관
능등객원(能登客院)은 발해사(渤海使)를 맞이하기 위한 숙박 장소이다. 축자(筑紫)에 있던 외교시설(外交施設)·홍려관(鴻臚館)과 같은 역할을 수행하였다. 능등객원(能登客院)은 연력23년(延暦23年, 804) 6月 27日 환무천황(桓武天皇)의 칙(勅)에 의해서 福良津(羽咋郡富来町福浦)에 조성되었다고 전한다. 이와 관련하여 일본 후기 804년 6월 27일조에 “발해국사가 많이 능등에 도착하였다. 숙소가 협소했기 때문에 신속히 객원을 지으라는 명령이 내려졌다”라는 기록이 보인다. 교통의 요충지인 기다신사(氣多神社) 근처에 객원이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그러나 772년 일만복 일행이 복량진에 안치 공급된 기사를 믿는다면, 복량진에 어떠한 시설이 있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참고문헌
윤재운, 일본소재 발해 유적유물의 종합적 검토, 한국사학보41, 2010년 11월
해설
노토[能登] 객원은 일본 이시카와[石川]현 하쿠이[羽咋]시에 위치한다. 대체로 게타[氣多]신사(神社) 주변으로 추정된다. 노토 객원은 발해 사신단이 머무를 수 있는 숙박 장소였다. 규슈[九州]의 츠쿠시[筑紫]에 있던 외교 시설인 홍려관(鴻臚館)과 같은 역할을 수행했던 것으로 보인다.
노토 객원은 『일본후기(日本後紀)』에 의하면 804년(연력 23) 6월 27일, 발해의 사신들이 일본에 도착하여 노토에 있는 경우가 많은데, 숙소가 협소하니 신속히 객원을 지으라는 간무[桓武]의 명에 의해서 조성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위치는 후쿠라[福良]진으로 비정하기도 하였으나, 교통의 요충지인 게타 신사 근처에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후쿠라진은 고대의 항구 조건으로서는 더할 나위 없지만, 항구 주위에 평지가 적고 산과 바로 붙어 있어 공간이 협소하다. 그렇기 때문에 항구 근처에 발해 사절단을 머무르게 할 수 있는 시설을 조영하기가 힘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배후 구릉에는 건물을 세울 수 있었을 것으로 보여, 유적이 나타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772년 일만복(壹萬福)을 비롯한 발해의 사신단이 본국으로 돌아가다가 폭풍을 만나 노토국에 표착하여 후쿠라진에 머물렀던 것을 보았을 때는 후쿠라진에 어떠한 시설이 있었을 것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게타 신사의 신(神)은 노토의 국신(國神)으로 외적을 물리치고 항해를 수호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신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게타 신사에서 약 800m 떨어진 모래사장에 있는 지케[寺家] 유적은 아스카시대부터 무로마치시대 사이의 게타 신사와 관련된 유적으로, 발해의 사신단과 연관이 있는 유적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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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능등객원 자료번호 : isea.d_0003_0020_0120_0030_0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