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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고대문화유산

노하심말갈고분

老河深靺鞨墓葬
  • 저필자
    정동준(충남대학교)
  • 시대
    발해
  • 원소장처
    吉林省 楡樹市 大坡鎭 后崗村 老河深屯
  • 시대
    발해
  • 유형
유적개관
노하심말갈묘장(老河深靺鞨墓葬)은 노하심유지(老河深遺址) 지층 퇴적의 가장 윗부분에 있으며, 모두 37기의 고분이 발견되었다. 고분은 3가지 유형이 있는데 토갱수혈석관묘(土坑竪穴石棺墓), 토갱수혈목관묘(土坑竪穴木棺墓), 토갱묘(土坑墓)이다. 목관묘(木棺墓) 1기(M23)는 석관묘(石棺墓, M24) 위에 중첩되어 있다. 장식은 앙신직지(仰身直肢)이고, 두향은 규칙이 없으나, 동서향이 비교적 많다. 석관묘(石棺墓)목관묘(木棺墓), 토갱묘(土坑墓)는 모두 몇 기에서 불로 태운 흔적이 있다.
유물개관
부장품의 종류가 비교적 적고, 그릇의 형태가 비교적 단순하다. 도기, 철기, 동기와 옥기 등이 있다.
참고문헌
문물지
해설
길림성(吉林省) 유수시(楡樹市) 대파진(大坡鎭) 후강촌(后崗村)에 있는 노하심(老河深) 유적 지층 퇴적의 가장 윗부분에 있으며, 모두 37기의 고분이 발견되었다.
고분은 3가지 유형이 있는데 흙구덩이식 돌널무덤, 흙무덤이다. 널무덤 1기(M23)는 돌널무덤 (M24) 위에 중첩되어 있어, 시간적으로 보면 돌널무덤이 널무덤과 흙무덤보다 앞선다고 할 수 있다. 3종류의 무덤에서 흙무덤이 가장 많으나, 부장품은 오히려 가장 적으며 심지어 부장품이 없는 것도 있다. 이것은 일반인들의 공동묘지로 생각된다. 매장 방식은 몸을 펴서 묻었고, 머리의 방향은 규칙이 없으나 동서향이 비교적 많다. 돌널무덤, 널무덤, 흙무덤은 모두 몇 기에서 불로 태운 흔적이 있다. 얼마 되지 않는 고분 중에는 화장한 것도 있고 2차장과 2차장 이후 재차 화장한 것도 있는데, 이것은 서로 다른 부족 또는 동일 부족이 외부의 영향을 받아서 격렬한 변화가 일어났음을 반영하는 것이다.
이곳에서 출토된 겹입술의 개인 키가 큰 단지는 흑룡강성(黑龍江省) 동녕(東寧) 단결(團結) 유적, 길림성(吉林省) 돈화(敦化) 육정산(六頂山) 발해 고분, 길림성 영길(永吉) 양둔(楊屯) 대해맹(大海猛) 유적 상층에서 출토된 토기 항아리와 대체로 같아서, 동일시기 동일민족에 속한 문화임을 설명한다. 고고학계는 발해의 유물에 대해서 문왕(文王) 대흠무(大欽茂)가 상경(上京)으로 천도한 것을 기준으로, 그 이전은 초기 그 이후는 후기로 나뉘는데, 위에 서술한 유적의 연대는 초기이다. 따라서 노하심(老河深) 유적의 상층 유구의 연대는 고구려 말기부터 발해 초기에 해당하는 약 7세기 초에서 8세기 중엽 이전으로, 바로 대흠무 천도 이전이다.
고분의 형식, 장례 풍속과 특징적인 부장품은 그 주인이 수(隋)·당(唐) 시기(581∼907) 제2송화강(松花江) 중류에서 생활했던 속말말갈인(粟末靺鞨人)임을 설명한다. 『북사(北史)』에 기록된 2차장 이후에 다시 화장하는 풍속과 서로 같다. 부장품에 반영된 사회경제는 그다지 발달하지 않았다. 비록 철기가 있으나 무기로 국한되어 있었는데, 이것은 당시 사회가 어렵을 위주로 하고 농업과 축목업이 아직 경제의 주요한 근간으로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나타낸다. 또한 이것은 말갈인들의 발해 건국 전과 건국 초기 경제발전의 상황을 반영한다.
널무덤과 돌널무덤 중에는 토기조각 약간이 매납되어 있고, 갑옷조각은 작은 쇠를 깎아 만든 형태의 유물이다. 부장품의 종류가 비교적 적고 그릇의 형태가 비교적 단순한데, 토기, 철기, 동기, 옥기 등이 있다. 토기는 항아리가 대부분인데, 그릇 모양은 주로 겹입술의 키가 큰 단지이고, 전체 토기의 제작 수준은 비교적 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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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하심말갈고분 자료번호 : isea.d_0003_0010_0080_0050_0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