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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고대문화유산

북대고성

北大古城
  • 저필자
    정동준(충남대학교)
  • 시대
    발해
  • 원소장처
    吉林省 延吉市 依蘭鎭 北大村
  • 시대
    발해
  • 유형
규모
둘레: 2,000m, 남: 500m, 북: 500m, 동: 500m, 서: 500m
입지
남쪽은 이곳에 주둔하고 있는 어떤 부대의 숙소이고, 북대촌 주민들은 고성의 북쪽에 모여 살며, 동쪽으로 연길--도문간 도로까지는 400m 정도 떨어져 있고, 동북 200m 지점에는 연변농약창(延邊農藥廠)이 있다.
유적개관
북대고성의 성벽은 이미 없어져 버렸다. 동쪽은 넓은 밭이고, 서·남·북 3면은 거주지역과 부대의 병영이다. 밭과 병영 안에 분포한 유물은 비교적 많고, 거주지에서 볼 수 있는 것은 드물다. 유지에서 남쪽으로 치우친 부분에는 높게 솟은 흙 두둑이 있는데 고성 가운데 규모가 비교적 큰 건축물의 기단 같다.
유물개관
유지에서 연꽃무늬 와당, 지압문 기와, 수키와, 녹유기와 등이 수집되었다.
참고문헌
문물지
해설
북대(北大) 고성(古城)은 연집하(煙集河) 동쪽 강가 하곡평지에 있는데, 의란진(依蘭鎭) 북대촌(北大村)에 속한다. 남쪽은 이곳에 주둔하고 있는 어떤 부대의 숙소이고, 북대촌 주민들은 고성의 북쪽에 모여 살며, 동쪽으로 연길(延吉)∼도문(圖們) 간 도로까지는 400m 정도 떨어져 있고, 동북쪽 200m 지점에는 연변농약창(延邊農藥廠)이 있다.
1937년 도리야마 기이치[鳥山喜一](1887∼1959)가 이 성을 조사한 후 『간도성 고적조사보고』에 논문을 발표하면서 연길가(延吉街) 북고성(北古城)으로 이름지어졌다. 1985년 연변조선족자치주(延邊朝鮮族自治州) 문물조사팀이 두 차례 조사하고 고성의 위치·규모와 출토유물을 종합 분석하여, 북대(北大) 고성(古城)으로 명명하였다. 북대 고성의 성벽은 이미 없어져 버렸다. 동쪽은 넓은 밭이고, 서남북 3면은 거주지역과 부대의 병영이다. 밭과 병영 안에 분포한 유물은 비교적 많고, 거주지에서 볼 수 있는 것은 드물다. 유적에서 남쪽으로 치우친 부분에는 높게 솟은 흙 두둑이 있는데 고성 가운데 규모가 비교적 큰 건축물의 기단 같다. 유물 분포범위에 근거하면, 이 성은 동서·남북이 각각 500m 정도로 중간 규모의 성지이다.
북대 고성은 발해 시기의 평지성이다. 성 안에는 건축자재들이 폭넓게 분포하는데 이것은 당시 성 안에 건축물이 즐비하고 생활하던 백성들이 비교적 많았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주목할 점은 성 안에서 녹유(綠釉)기와가 출토된 것이다. 녹유기와는 연변(延邊) 지역 발해 유적 중에서 동경(東京)으로 추정되는 혼춘(琿春)의 팔련성(八連城), 중경(中京)으로 추정되는 화룡(和龍)의 서고성(西古城)과 몇몇 발해 사지(寺址)를 제외하고 다른 유적에서는 거의 보이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역적으로 중경현덕부(中京顯德府)에 가까운 북대 고성은 아마도 중경의 관할지역인 노(盧)·현(顯)·철(鐵)·탕(湯)·영(榮)·흥(興) 6주(州) 가운데 어떤 주 또는 현(縣)의 치소로 생각된다.
유적에서 연꽃무늬 막새기와, 지압문(指壓紋) 기와, 수키와, 녹유(綠釉)기와 등이 수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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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대고성 자료번호 : isea.d_0003_0010_0050_0040_0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