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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고대문화유산

고강동유적

  • 저필자
    황재훈(서울대학교)
  • 날짜
    1995·1996·2002
  • 시대
    청동기~통일신라
  • 위치
  • 원소장처
    경기도 부천시 오정구 고강본동과 작동 일대
  • 시대
    상고사
  • 유형
    기타
입지
1995년 여름 홍수로 처음 확인되었으며, 학술조사의 일환으로 1996년부터 2002년까지 한양대학교박물관과 문화인류학과가 5차례 발굴 조사.
유적개관
일대는 낮은 구릉지 사이로 평야가 펼쳐져 있는데 유적은 구릉 정상부의 평탄지에 입지한다. 현재까지의 조사 결과 경인고속도로 북쪽(A지구) 해발 68.9m의 주 능선부를 따라 완형의 주거지 7기와 파괴된 주거지 1기가 조사되었으며, 남쪽(B지구) 해발 91.9m의 구릉 정상부를 중심으로 주거지 3기와 청동기시대에서 초기철기시대에 이르는 적석유구, 원형도랑유구, 돌덧널무덤 6기가 조사되었고, 구릉의 사면에서 돌덧널무덤 4기가 조사되었으며 그 밖에 통일신라시대 돌덧널무덤 10기 등이 확인되었다.
출토유물
* 골아가리구멍무늬토기, 구멍무늬토기, 붉은간토기, 점토대토기, 반달돌칼, 바퀴날도끼, 톱니날도끼, 가락바퀴, 간돌도끼, 대팻날도끼, 간돌검, 일단슴베있는돌창, 돌끌, 삼각만입돌화살촉 등
참고문헌
부천 고강동 선사유적 제1~5차 발굴조사 보고서, 한양대학교박물관·문화인류학과·문화재연구소, 1996~2002
해설
부천은 서울시 상서구와 김포시와 접해있는 지역이다. 한강하류 경기평야의 일원으로 부평평야 주위의 하천곡안의 일부 퇴적지는 한강의 범람원이 발달한 지역이다. 남부와 동부는 성주산, 노고산, 원미산 등 해발 100~250m 사이의 낮은 산지가 분포한다. 심곡천, 굴포천, 상리천, 비니내천 등의 하천 주변으로 구릉지와 저지대가 발달해 있다. 유적은 부천시 오정구 고강동과 작동에 위치한 해발 61.6m의 청룡산 일대로 부천시의 북동쪽 끝쪽에 해당한다.
고강동 유적 주변의 구릉지대와 충적대지에는 김포 고정리, 석모리, 운양동, 시흥 계수동, 조남동, 군자동, 광명 가학동, 철산동, 소하동, 안산 양성동, 월피동유적, 안양 평촌동, 의왕 이동 등 청동기시대 취락과 고인돌이군 등이 다수 분포한다.
1995년 홍수시 드러난 반달돌칼과 돌창 등의 유물이 발견・신고되어 1996년부터 2002년에 걸쳐 총 5차례의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다. 1~3차(1996~1998년)의 발굴조사에서는 경인고속도로의 북쪽 능선 정상부인 A지구, 1999년 4차 조사에서는 고속도로 남쪽 정상부일대인 B지구, 2002년 실시된 5차 조사에서는 서쪽 능선일대에 대한 발굴을 비롯하여 고강동 유적 전체 지점을 대상으로 한 유구의 분포범위와 상태가 확인되었다. 조사결과, 청동기시대 집자리 13기를 비롯하여 적석유구, 환구유구, 도랑유구, 통일신라시대 돌덧널무덤 등의 다양한 유구가 확인되었다.
집자리는 구릉 정상 평탄면과 사면에 걸쳐 조성되었다. 모두 평면 방형, 장방형, 세장방형으로 청동기시대 전기~중기에 해당한다. 생활면은 정지 후 진흙을 이용하여 불다짐한 부분도 일부 발견되지만 대부분 별다른 시설 없이 생토면을 그대로 이용한 것으로 구분된다. 바닥면 중앙에는 원형으로 얇게 굴착하여 조성한 화덕자리가 2~4기가 열을 지어 조성되어 있다. 바닥면 중앙과 벽가, 벽가 내측에는 기둥구멍이 열을 지어 배치되어 있다. 모서리 벽면에는 평면 원형의 저장공이 확인된다. 자연 폐기된 것과 화재 폐기된 것으로 구분할 수 있다. 7호와 13호는 대형의 세장방형 집자리이다. 7호는 길이 1,684㎝, 너비 360㎝, 면적은 60.62㎡. 13호는 길이 1,750㎝, 너비 440㎝, 면적은 77㎡이다. 제사유로 보이는 적석환구유구는 B지구 정상부인 해발 91.60m 지점에서 확인되었다.
환호시설은 평면 원형으로 총 길이 63m(직경 30m), 너비 1~4m 정도이다. 단면은 U자형이다. 도랑의 서쪽에 폭 1m 너비의 입구시설이 위치한다. 적석부는 환구유구의 중심부 평탄부에 위치한다. 평면 방형으로 길이 600㎝, 너비 600㎝, 높이 100㎝이다. 외곽에는 50㎝ 크기의 할석을 둘렀고 내부에는 10~30㎝ 크기의 소형과 중형 석재를 쌓았다. 적석유구와 도랑내부에서는 구멍무늬토기를 비롯하여 점토대토기, 두형토기 등의 유물이 혼재하고 있어 청동기시대에서 초기철기시대에 걸쳐 존속된 것으로 보인다. 마을의 조성연대는 토기와 주거지 구조, 방사성탄소연대(2690±50 BP, 2910±70 BP)로 보아 기원전 10~5세기 정도로 판단된다.
골아가리구멍무늬토기, 골아가리토기, 구멍무늬토기, 붉은간토기, 점토대토기, 흑색마연장경호, 항아리형토기, 손잡이 달린 토기, 토제 그물추 등의 토기류와 반달돌칼, 바퀴날도끼, 자귀, 환상석부, 별도끼, 가락바퀴, 간돌도끼, 대팻날도끼, 간돌검, 돌창, 돌끌, 돌화살촉, 홈자귀, 숫돌 등 석기류가 출토되었다.
고강동유적에서 발견된 초대형의 집자리는 파주 교하리, 옥석리, 당하리, 군포 대야미동유적에서 조사된 세장방형 집자리와 성격을 같이 하는 것으로 한강 하구유역의 청동기시대 문화상을 밝힐 수 있는 학술적 가치가 높은 유적이다. 또한 집자리에서 공반된 점토대토기는 중부지역 무문토기문화와 점토대토기문화의 관계를 추정하는데 있어 중요한 자료가 되며 유적의 하한연대가 기원전 5세기 아래까지 하향될 수 있는 결정적인 근거를 제공하고 있다.
환호는 방어용 장벽 또는 제의와 관련된 상징적 경계로 구분해 볼 수 있다. 고강동유적의 환호 및 적석환구유구는 제기형 토기를 근거로 제사유적으로 해석할 수 있으며 이는 청동기 사회의 복합화과정을 반영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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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강동유적 자료번호 : isea.d_0001_0030_0020_0020_0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