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내용 바로가기하단 바로가기
상세검색
  • 디렉토리 검색
  • 작성·발신·수신일
    ~
근세 한일관계 사료집

구보님의 조선인 포로를 돌려보내라는 분부와 조선 칙사의 출항

一. 조선국의 봉행(奉行)들로부터 혼다 사슈에게 서한이 왔다.주 001
각주 001)
예조참판 오억령(吳億齡)이 혼다 마사노부(本田正信)에게 보낸 서한. 일본에 통신사를 파견한다는 사실을 고하고 조선인 포로의 송환을 요청하는 내용.
닫기
그 서한은 예전에 잡혀 간 포로를 사면해 달라는 내용이었다.주 002
각주 002)
임진왜란 때 일본군에 의해 일본으로 연행된 조선인들을 조선에 데려갈 수 있게 조처해 달라는 뜻이다. 막부는 이 요청에 동의했고 통신사에 의해 이른바 피로인(被虜人) 쇄환이 시작되었다. 초기에는 귀국을 원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1607년 통신사는 남녀 합해 1,418명의 조선인을 쇄환하였다. 그러나 귀환자 수는 그 후 점차 감소하여 1643년 통신사에 의해 쇄환된 인원수는 겨우 14명이었고, 이로써 피로인의 쇄환은 사실상 일단락되었다.(윤유숙, 「조서후기 조일외교」)
닫기
서한을
  구보님께서 일람(一覽)하시고, 조선인 포로 남녀 모두 그 나라로 돌려보내라고 분부하셨다. 일본 국중(國中)에 원란(遠亂)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혼다 사슈에게 말씀하셨다.
一. 조선의 여러 관인들은 5월 29일 무라사키노(紫野)에 도착, 6월 8일 교토에서 오사카로 내려가 도착했으며, 11일에 오사카에서 출항했다.

  • 각주 001)
    예조참판 오억령(吳億齡)이 혼다 마사노부(本田正信)에게 보낸 서한. 일본에 통신사를 파견한다는 사실을 고하고 조선인 포로의 송환을 요청하는 내용.
     바로가기
  • 각주 002)
    임진왜란 때 일본군에 의해 일본으로 연행된 조선인들을 조선에 데려갈 수 있게 조처해 달라는 뜻이다. 막부는 이 요청에 동의했고 통신사에 의해 이른바 피로인(被虜人) 쇄환이 시작되었다. 초기에는 귀국을 원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1607년 통신사는 남녀 합해 1,418명의 조선인을 쇄환하였다. 그러나 귀환자 수는 그 후 점차 감소하여 1643년 통신사에 의해 쇄환된 인원수는 겨우 14명이었고, 이로써 피로인의 쇄환은 사실상 일단락되었다.(윤유숙, 「조서후기 조일외교」) 바로가기
오류접수

본 사이트 자료 중 잘못된 정보를 발견하였거나 사용 중 불편한 사항이 있을 경우 알려주세요. 처리 현황은 오류게시판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전화번호, 이메일 등 개인정보는 삭제하오니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구보님의 조선인 포로를 돌려보내라는 분부와 조선 칙사의 출항 자료번호 : kn.k_0004_0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