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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고대문화유산

경주 조양동 유적

  • 저필자
    최재도(한성백제박물관 백제학연구소)
  • 날짜
    1979~1983
  • 시대
    원삼국
  • 위치
  • 원소장처
    경상북도 경주시 조양동 일대
  • 시대
    상고사
  • 유형
    무덤
입지
1979~1983년까지 국립경주박물관에서 5차에 걸쳐 발굴조사를 시행
유적개관
조양동 유적은 영남지역에서 목관묘와 와질토기의 존재가 확인된 최초의 유적임. 지석묘군, 무문토기산포지, 삼국~고려시대유적 등이 분포하여 유적의 전체적인 시기는 청동기~고려시대이지만, 원삼국시대 목관묘가 중심임. 목관묘는 2차~5차 발굴에서 24기가 확인이 됨. 한 두기를 제외한 대부분을 판재식 목관묘로 판단되고 있으며, 목개의 존재는 확인되지 않고, 대부분의 목관이 칠이 되었던 것으로 파악하고 있음. 일부 유구에서는 주칠이 있는 니질점토가 출토된 것으로 미루어 칠기가 부장되었을 가능성도 있음.
출토유물
* 삼각형점토대토기, 변형 점토대옹, 조합식우각형파수부호, 세문경, 청동마탁, 철과, 주머니호, 완, 단경호, 판상철부, 철부, 철검, 검파두식, 청동검파반부금구, 청동제 반지, 이체자명대경, 파수부호 등
참고문헌
「慶州朝陽洞遺蹟Ⅰ」
해설
경상북도 경주시 조양동 일대에 위치하는 원삼국시대의 고분군이다. 이 유적은 조양동의 동서로 뻗은 낮은 구릉지대에 입지한다.
1978년 20여 점의 토기가 출토되어 신고되었고, 1979~1983년까지 국립경주박물관에서 5차례에 걸쳐 발굴조사를 실시하였다. 조사 결과 널무덤[목관묘(木棺墓)] 39기, 덧널무덤[목곽묘(木槨墓)] 13기, 독무덤[옹관묘(甕棺墓)] 20기, 돌덧널무덤[석곽묘(石槨墓)] 8기와 주거지 1기가 확인되었다.
널무덤은 동~서가 길고, 길이 3m, 너비 1m 내외이며 머리방향은 동쪽이다. 구덩이의 형태는 평면이 긴 타원형 또는 너비가 좁은 장방형(長方形)으로, 구덩이의 길이 2∼3m, 너비 1.5m 깊이 1∼2m 정도이다. 출토유물은 검은간토기[흑색마연토기(黑色磨硏土器)], 덧띠토기[점토대토기(粘土帶土器)] 등의 토기류, 청동기류, 철기류, 중국 한대의 거울[한경(漢鏡)]이 출토되었다.
덧널무덤의 구덩이는 길이 약 4m, 너비 2m, 깊이 60㎝ 내외인 장방형으로 널무덤보다 규모가 크다. 출토된 토기는 모두 회색토기[와질토기(瓦質土器)]로 굽다리[대각(臺脚)]가 붙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청동기는 전혀 보이지 않고 철기는 많이 껴묻었다. 그 밖에 수정으로 된 목걸이 등이 출토되었다.
독무덤은 널무덤·덧널무덤 등과 함께 같은 시기에 유아 또는 소아용 무덤으로 사용되었던 것이다. 모두 이음식[합구식(合口式)]으로 가로놓여 있으며, 관으로 사용된 토기는 일상 용기로 사용되었던 시루를 그대로 사용한 것도 있다. 동~서 방향이 길고, 동쪽 독이 크고 서쪽 독이 작다. 독무덤은 돌덧널무덤보다 빠른 묘제로 생각되는데 널무덤과의 선후관계는 아직 불분명하다.
돌덧널무덤은 뚜껑돌[개석(蓋石)]을 덮고 바닥에 자갈돌을 깐 1호분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뚜껑돌이 없으며, 머리방향은 동~서이고 동쪽에 주로 유물을 묻었다. 유물은 긴목항아리[장경호(長頸壺)], 굽다리접시[고배(高杯)], 굽다리단지[대부호(臺附壺)] 등의 신라토기와 함께 낫, 화살촉, 칼 등의 철기가 소량 출토되었다. 이곳에서 출토된 토기는 5세기∼6세기의 경주 돌무지덧널무덤[적석석곽분(積石木槨墳)] 출토 토기와 같은 것들이다.
조양동 유적은 영남지역에서 널무덤과 회색토기[와질토기(瓦質土器)]의 존재가 확인된 최초의 유적이다. 한편, 이 유적의 연대를 추정할 수 있는 유물로는 널무덤인 38호분에서 출토된 4장의 중국 전한시대(前漢時代) 거울을 들 수 있다. 중국 낙양(洛陽)의 출토품들과 비교하면, 이 고분의 연대는 서력기원 전후의 시기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가장 빠른 5호분을 기준으로 하면 이 고분군은 기원전 1세기 후반부터 조성되기 시작하였음을 알 수 있다. 덧널무덤의 경우는 묘의 구조 이외에 껴묻거리[부장품(副葬品)]인 회색토기[와질토기(瓦質土器)]와 철기 등에서도 널무덤의 전통이 그대로 이어져, 대체로 2세기 중엽 정도에 덧널무덤으로 전환이 이루어졌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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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주 조양동 유적 자료번호 : isea.d_0001_0030_0040_0020_00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