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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찬성씨록

고전수(高田首; 다카타노오비토)

고전수(高田首; 다카타노오비토)
 고려국(高麗國) 사람 다고자사주(多高子使主)로부터 나왔다.
 
【주석】
1. 고전수(高田首)
고전(高田)의 씨명은 『일본서기』 무열기(武烈紀) 3년(501) 11월조에 “백제 의다랑(意多郞)이 죽었다. 고전구(高田丘) 위에 묻었다”라고 하듯이 고전(高田)의 지명에서 유래한다. 현재의 나량현(奈良縣) 대화고전시(大和高田市) 일대이다.
고전씨 일족으로는 『일본서기』 효덕기(孝德紀) 백치(白雉) 4년(653) 5월조에 견당사 제2선의 대사로서 대산하 고전수근마려(高田首根麻呂)가 보인다. 동 천무(天武) 원년(672) 6월조에는 임신의 난의 경과를 기술하는 중에 고전수신가(高田首新家)가 기록되어 있다. 그는 『속일본기』 대보(大寶) 3년(703) 6월조에 임신년의 공으로 정6위상에서 정종위상으로 사후 추증되었다. 또 동 경운(慶雲) 원년(704) 7월조에는 종5위상 고전수신가(高田首新家)의 공봉(功封) 40호 중 4분의 1은 아들 수명(首名)에게 증여한다는 기록이 있다. 『속일본기』 천평보자(天平寶字) 7년(763) 10월 정묘조에 고전비등족인(高田毗登足人)이 고전사(高田寺) 승려를 살해한 죄로 하옥되고, 임신의 난의 공으로 조부로부터 받은 봉호를 빼앗겼다는 기록이 나온다. 고전사라는 절은 고전수씨(高田首氏)의 씨사(氏寺)로서 일족의 번영을 말해 준다. 『일본후기』 홍인(弘仁) 2년(811) 4월에는 고전수청족(高田首淸足) 등 7인이 전촌신(田村臣)의 씨성을 받았다.
2. 다고자사주(多高子使主)
이 인명은 기타의 사료에는 보이지 않는다. 고전비등족인(高田毗登足人)의 조부가 임신의 난 때의 인물이면, 시조로 나오는 다고자사주(多高子使主)는 고구려 멸망 이전에 건너왔을 가능성이 높다. 사주(使主)라는 인명 어미를 붙이는 표기법은 적어도 대화(大化)전대일 가능성을 말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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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수(高田首; 다카타노오비토) 자료번호 : ss.k_0002_0020_0040_05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