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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고대문화유산

신암리유적

龍川 新岩里遺蹟
  • 저필자
    문수균(미래문화재연구원)
  • 날짜
    1965
  • 시대
    신석기~삼국
  • 위치
  • 원소장처
    평안북도 용천군 신암리
  • 시대
    상고사
  • 유형
    복합
규모
청동칼: 길이 18.6cm, 너비 1.9cm
입지
1965년 북한 사회과학원 고고학연구소에서, 1966년 신의주역사박물관에서 발굴조사.
유적개관
용천군 소재지에서 동북으로 4㎞ 정도 떨어져 있는 신암리 부락의 서·남·북쪽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구릉에 위치한 신석기시대 만기에서 고구려시대까지의 집터와 유물포함층 유적. 청동칼은 다섯 조각으로 부러져 나왔는데 본디 모습을 보면 자루 끝에 고리가 달리고 등이 약간 휜 채 한쪽에만 날이 있는 것이며, 청동단추는 얇은 청동판으로 만들었고 안쪽으로 휘어져 원판 모양을 이루고 있으며 가운데 고리가 하나 붙어 있음.
출토유물
* 청동칼, 청동단추, 긴목단지, 굽단지, 바리, 보시기, 접시, 옥돌, 돌도끼, 달도끼, 반달돌칼, 돌칼, 대패날, 숫돌, 그물추
참고문헌
「평안남북도 고대집자리」
해설
평안북도 용천군 신암리에 있는 신석기시대 만기(晩期)에서 고구려시대까지의 집터와 유물포함층 유적이다. 유적은 용천군 군소재지에서 동북으로 4㎞ 정도 떨어져 있는 신암리 부락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구릉에 위치한다. 서쪽은 청등말래 유적, 남쪽은 공동묘지, 북쪽은 모래산 유적으로 각각 명명되어 있다. 1964년에서 1965년에 김용간·리순진 등이 3차에 걸쳐 모래산과 청등말래 유적의 3지점을 발굴 조사하였다.
청등말래 유적의 층위는 표토층(30㎝) 밑에 문화층인 검은모래층(30∼50㎝)과 생토층인 황색모래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검은모래층에서는 신석기시대에서 청동기시대로 넘어가는 시기의 파괴된 주거지 1기가 조사되었다.
주거지는 남쪽은 서벽 9m, 깊이 30㎝인 장방형 수혈주거지로서 바닥은 진흙을 깔아 다졌다. 이 곳에서는 복원 가능한 토기 15점과 반달돌칼(半月形石刀)·돌살촉·돌도끼·달도(環狀石斧)·대팻날·돌낫·숫돌·그물추·가락바퀴(紡錘車)·팔찌 등 많은 유물이 출토되었다. 이가운데 토기는 쌍타자 유적 3기층의 토기와 시기적으로 서로 맞물린다.
모래산 유적의 층위는 표토층 밑에 황갈색사질토층과 검은모래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황갈색사질토층에서는 고구려시대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검은모래층은 청동기시대층으로서 화분형 토기가 출토되는 초기철기시대의 구덩이로 인해 일부 교란되어 있다. 검은모래층에서는 미송리형 토기가 출토되는 주거지 5기 등이 조사되었다.
주거지는 장축방향이 서남에서 동북인 길이 20m, 규모 20∼40㎡의 장방형 수혈주거지이다. 점토를 펴 다진 바닥에서는 위석식(圍石式), 진흙과 모래를 섞어 만든 화덕이 조사되었다. 이들 주거지에서는 미송리형 토기·겹아가리〔二重口緣〕토기·외반아가리단지(壺) 등의 토기와 미늘식〔逆刺式〕돌살촉·돌도끼·반달돌칼·돌끌·숫돌·달도끼·가락바퀴 등의 여러 석기들이 출토되었다.
이 유적에서는 6개의 문화층이 확인되었다. 신석기시대 만기에서 민무늬토기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1기)·민무늬토기 조기(2기)·민무늬토기 초기(3기)·민무늬토기 중기(4기)·초기철기시대(5기)·고구려시기(6기)로 구분된다.
각 시기의 유물상으로 볼 때, 1기는 서기전 2000년기 말, 2기는 서기전 1000년기를 전후하는 시기, 3기는 서기전 8∼7세기, 4기는 서기전 6∼5세기, 5기는 서기전 2∼1세기, 6기는 5∼6세기로 편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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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암리유적 자료번호 : isea.d_0001_0040_0050_0040_0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