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내용 바로가기하단 바로가기
상세검색
  • 디렉토리 검색
  • 작성·발신·수신일
    ~
동아시아 고대문화유산

고성 송천리 솔섬 석관묘

  • 저필자
    최재도(한성백제박물관 백제학연구소)
  • 날짜
    1974
  • 시대
    원삼국
  • 위치
  • 원소장처
    경상남도 고성군 하일면 송천리 솔섬 189번지
  • 시대
    상고사
  • 유형
    무덤
입지
1974년 12월 동아대학교 박물관에 의하여 조사됨.
유적개관
수십기의 분묘 중, 상태가 양호한 10개를 골라 조사하였는데, 유구의 특징은 10개 모두 판석 여러 매를 이용해서 조립한 상자식 석관묘임. 공통적으로 여러 장의 긴 판석으로 장벽을 쌓고, 1장의 판석으로 양쪽 단벽을 막은 후에 상석을 깔았으며 끝으로 여러 장의 판석을 이용하여 개석을 덮는 형태를 하고 있음.
출토유물
* 적갈색 무문토기, 와질토기, 철검, 홈자귀 등
참고문헌
「고성송천리솔섬석관묘」
해설
경상남도 고성군 하일면 송천리 솔섬 189번지에 있는 원삼국시대의 돌널무덤[석관묘(石棺墓)]이다. 이 일대는 향로봉(해발 578m), 백암산(해발 300m) 등의 산줄기가 북쪽을 병풍처럼 가려주고 있으며, 남쪽에 비교적 넓은 농경지가 전개되어 있다. 유적은 해발 27.4m인 섬의 정상부에서 동남쪽 경사면의 5부 능선까지 수십 기가 분포되어 있었는데 대부분이 노출되어 파괴되어 있었다.
1974년 12월부터 동아대학교박물관이 조사를 실시하였는데, 파손된 무덤 가운데 상태가 양호한 10기를 골라 조사하였다. 조사 결과 유구는 모두 단독으로 형성되어 있었는데 봉토(封土)의 유무는 전혀 파악할 수 없으나 지하 60~70㎝의 깊이에서 유구가 노출된 것으로 미루어 어느 정도는 흙을 쌓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무덤은 여러 장의 긴 판돌[판석(板石)]로 좌우를 쌓고, 1장의 판돌로 양쪽 위·아래를 막은 후에 주검받침돌[시상석(屍床石)]을 깔았으며 끝으로 여러 장의 판돌을 이용하여 뚜껑돌[개석(蓋石)]을 덮는 형태를 하고 있다. 그러나 세부적인 면에서 각각 형태를 달리하고 있다. 즉 뚜껑돌과 바닥돌을 모두 갖추고 있는 것, 바닥돌은 있어도 뚜껑돌이 없는 것, 뚜껑돌은 있으나 바닥돌이 없는 것, 뚜껑돌이 있고 바닥돌은 판돌 대신 작은 돌을 깔고 있는 것, 뚜껑돌과 바닥돌이 모두 없이 벽석만 있는 것 등이다. 주로 북북동~남남서 방향이 긴 것이 대부분이며, 가끔 북동~남서로 향한 것도 있으나 이곳 지형의 등고선을 따라 남~북 방향이 기본이 된 것으로 보인다. 돌널의 규모는 길이 1.28∼1.95m, 너비 0.3∼0.7m, 깊이 0.2∼0.38m의 크기로 장방형(長方形)의 형태를 하고 있다. 제9호 돌널무덤은 출토된 철검(鐵劍)의 위치로 보아, 머리 방향이 북쪽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유물은 적갈색 민무늬토기[무문토기(無文土器)] 2점, 회색토기[와질토기(瓦質土器)] 1점, 철검 1점이 돌널 안에서 출토되었고, 주위에서 홈자귀[유구석부(有溝石斧)] 몇 점이 수습되었다. 민무늬토기는 아가리가 벌어진 납작바닥[평저(平底)]이며, 회색토기[와질토기(瓦質土器)]는 아가리가 벌어지고 둥근바닥[원저(圓低)]의 주판알 모양 몸통을 가지고 있는 주머니형 단지이다. 철검은 길이 42.2㎝의 비교적 큰 검으로 검의 표면에 나무 흔적[목질흔(木質痕)]이 남아 있어, 나무로 만든 칼집을 사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형태적으로 한국식 동검[세형동검(細形銅劍)] 말기형식과 비슷하여, 대략 기원전 1세기 경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유적은 출토된 유물로 한반도 남부 지방에 분포한 돌널무덤의 편년을 가늠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초기철기시대의 진행 과정을 분석할 수 있는 중요한 고고학적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오류접수

    본 사이트 자료 중 잘못된 정보를 발견하였거나 사용 중 불편한 사항이 있을 경우 알려주세요. 처리 현황은 오류게시판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전화번호, 이메일 등 개인정보는 삭제하오니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고성 송천리 솔섬 석관묘 자료번호 : isea.d_0001_0030_0030_0090_0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