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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의 역사

북한

2. 북한

북한에서는 이 사건에 대한공식적인 명칭으로 ‘임진조국전쟁’을 사용하고 있다. 1977년 북한 사회과학원 역사연구소에서 편찬한 『조선통사』에는 제9장의 제목으로 「16세기 대토지소유의 발전. 1592~1598년 임진조국전쟁」으로 하였고, 제3절의 소제목 또한 「1592~1598년 임진조국전쟁」으로 기술하였다. 전반적인 서술 경향을 보면, 이순신 장군이 이끄는 수군의 승리와 의병투쟁의 전과를 상세히 소개하는 반면, 명군의 내원(來援)에 대해서는 아주 소략하게 서술하고, 그 효과에 대해서도 소극적으로 평가하였다. 그리고 “7년간에 걸친 임진조국전쟁은 조국의 독립과 영예를 위해 싸운 우리 인민의 승리로 끝났다.”로 하면서 승리한 전쟁으로 간주하였다. 전쟁의 성격에 관해서는 “임진조국전쟁은 일본 침략자들의 침략으로부터 조국의 안전을 지켜낸 정의의 조국방위전쟁이었다.”라고 규정하였다.
또 1980년 간행된 『조선전사』 9권에서도 제7장의 제목을 「1592~1598년 일본침략자를 반대한 조선인민의 임진조국전쟁」으로 설정하였다. 서술내용은 앞의 『조선통사』보다 자세한데, 명칭과 성격규정은 동일하다. “참으로 임진조국전쟁은 중세기 우리 인민의 반침략투쟁사를 크게 빛내인 승리한 전쟁의 하나였다.”라고 하여 승전관을 명확히 하였다. 또 서술의 특징으로는 객관적 국제정세와 전황에 대한 내용보다는 수군과 의병투쟁의 승전보를 설명하는데 대부분의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현재 북한의 공식적인 역사인식을 대표하는 두 저서에서 왜 명칭을 ‘임진조국전쟁’이라고 하였는지에 대한 직접적인 설명은 없다. 그러나 위의 내용으로 유추해 보면, 외적의 침략에 대항에 조국의 자주권을 지켜낸 점을 강조해 ‘임진전쟁’ 안에 ‘조국’이라는 용어를 넣었다고 여겨진다. 이 사건을 ‘왜란’이 아니라 ‘전쟁’으로 인식하였다는 점에서는 진일보했다고 여겨진다. 그런데 ‘조국’이란 단어는 한 당사국의 애국심을 호소하는 용어로서 인식의 객관성을 떨어뜨린다는 문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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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자료번호 : edeah.d_0004_0010_0020_0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