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충분한 사과와 보상을 하였는가?
5. 일본은 충분한 사과와 보상을 하였는가?
2007년 6월 26일 미 하원 외교위원회는 찬성 39표, 반대 2표라는 압도적 지지로 미국 하원의 위안부 결의안 제121호를 통과시켰다. 이 결의안은 “어린 여성을 성노예로 만든 일본제국주의 군대의 강제성에 대해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사과하고 역사적 책임을 질 것”을 일본에게 요구하였다.
1992년 관방장관 가토 고이치[加藤統一]가 일본군이 위안소 설치와 운영·감독에 관여했다고 처음 공식적으로 인정하였으나, ‘위안부’ 강제 동원은 분명하게 인정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제기되어 이듬해인 1993년에 고노 담화가 나왔다. 고노 담화에서 일본정부는 ‘위안부’ 강제 동원에 대한 시인과 일본군의 개입을 인정했으며 사과했다.
그러나 일본정부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 여성들에 대한 정부차원의 배상 책임을 회피한 채 인도주의적인 차원에서 ‘위안부’에 대한 도덕적 책임을 지겠다는 아이디어를 기초로 1995년 여성을 위한 아시아 평화 국민 기금(이하 아시아여성기금)을 창설했다.
아시아여성기금은 ‘위안부’ 피해 여성들에게 지급할 보상금을 일본 시민들에게 모금하여 배상 사업을 수행했다. 그러나 ‘위안부’ 피해 여성의 상당수가 일본정부가 아닌 민간단체의 지원을 받을 수 없다는 이유로 보상금 수령을 거부하였으며 결국 아시아여성기금은 주목할 만한 성과 없이 2007년 3월에 사업운영을 중단했다.
‘위안부’ 문제의 해결을 위해 일본정부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비난하는 것은 온당치 못할 수 있으나, 일본정부가 “최선의 노력을 보여주었다”라는 말 또한 적절하지 못하다.
일본정부는 왜 아직까지도 이웃국가들과 화해와 협력을 이루지 못하는지 그리고 고노 담화와 아시아여성기금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위안부’ 피해 여성들에 대한 보상을 끝내지 못했는지에 대해 반성할 필요가 있다.
일본정부가 적절한 방식으로 충분한 사과와 보상을 했는가에 대한 문제점들은 미 연방 하원의원 마이크 혼다(Mike Honda, 민주당 캘리포니아 주 출신의원)가 제의한 미국 하원의 위안부 결의안 제121호에 잘 드러나 있다.
다음은 미국 하원의 위안부 결의안 제121호의 주요 내용이다.
- 일본정부는 1930년대부터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아시아 태평양 제도를 식민통치하고 이를 점령하는 동안 일본 제국주의 군대가 ‘위안부’로 알려진 젊은 여성들을 강제로 성노예로 만든 사실에 대한 역사적 책임을 확실하고 분명한 태도로 공식 인정, 사과하고 수용해야 한다.
- 일본정부는 총리가 공식적인 입장에서 공식 성명을 통해 사과한다면 종전에 발표한 성명의 진실성과 지위에 대해 되풀이되는 의혹을 해소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 일본정부는 일본군들이 ‘위안부’를 성노예로 삼고 인신매매를 한 사실이 결코 없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분명하고 공개적으로 반박해야 한다.
- 일본정부는 ‘위안부’에 대한 국제사회의 권고에 따라, 현 세대 및 미래 세대를 대상으로 잔혹한 범죄에 관한 교육을 해야 한다.
- 일본정부는 1930년대부터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아시아 태평양 제도를 식민통치하고 이를 점령하는 동안 일본 제국주의 군대가 ‘위안부’로 알려진 젊은 여성들을 강제로 성노예로 만든 사실에 대한 역사적 책임을 확실하고 분명한 태도로 공식 인정, 사과하고 수용해야 한다.
- 일본정부는 총리가 공식적인 입장에서 공식 성명을 통해 사과한다면 종전에 발표한 성명의 진실성과 지위에 대해 되풀이되는 의혹을 해소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 일본정부는 일본군들이 ‘위안부’를 성노예로 삼고 인신매매를 한 사실이 결코 없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분명하고 공개적으로 반박해야 한다.
- 일본정부는 ‘위안부’에 대한 국제사회의 권고에 따라, 현 세대 및 미래 세대를 대상으로 잔혹한 범죄에 관한 교육을 해야 한다.
일본정부의 여러 수상들이 개별적으로 사과를 했지만, 일본국회 혹은 일본정부는 공식적인 인정과 사과를 하지 않았다. 고노담화 역시 일본 국회에서 채택되지 않았다. 즉 일본은 ‘위안부’ 문제에 대해 전적으로 책임져야 할 나라임에도 어떤 공식적인 사과도 하지 않았다.
아시아여성기금
아시아여성기금은 1995년 태평양 전쟁 중 일본에 의해 강제로 일본군 ‘위안부’로 동원되어 피해를 입은 여성들에 대한 보상을 위해 설립된 민간기구다. 한국, 대만, 필리핀 등의 ‘위안부’ 피해 여성들에게 보상금과 하시모토[橋本龍太郎] 총리의 사과편지를 전달하였다. 하시모토 총리는 “나는 일본 수상의 자격으로서, 헤아릴 수 없는 고통스러운 경험을 간직했으며, 그리고 ‘위안부’로서 치유할 수 없는 물리적, 정신적 부상을 겪었던 모든 여성들에게 다시금 진정어린 사과와 심심한 유감의 뜻을 전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아시아여성기금의 보상금은 일본 정부가 아닌 민간에서 나온 기부금이었고, 일본정부가 ‘위안부’ 문제에 대해 국제적·법적 책임을 회피하는 수단이라고 비난을 받았다. ‘위안부’ 피해 여성들의 대부분은 아시아여성기금의 보상금 수령을 거부하였고, 계속해서 공식적인 사과와 배상을 요구하고 있다.
일본정부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Korean Council for the Women Drafted for Military Sexual Slavery by Japan)는 일본정부가 법적 배상에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며 1992년 유엔인권위원회에 일본군 ‘위안부’ 문제 상정을 이끌어내어 국제적으로 큰 호응을 얻었고, 1996년 1월에는 유엔인권위원회 결의문에 의거, ‘일본군 성노예문제에 관한 보고서’가 채택되었다.
이후 유엔 산하의 여러 단체들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 여성들에 대한 일본정부의 공식적인 사과와 법적 책임 이행을 권고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은 여전히 이를 외면하고 있다. 전 세계는 일본이 자국의 과거를 정면으로 맞닥뜨리고 잘못된 과거사에 대해 일본의 젊은이들에게 어떻게 교육시킬 것인지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다.
유엔인권위원회 특별보고관 레디카 쿠마라스와미 보고서
1996년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인권위원회 총회는 유엔인권위원회 특별보고관의 군‘위안부’ 문제에 대한 특별보고서를 여성 폭력에 관한 결의의 일부로 채택하였다.레디카 쿠마라스와미는 군‘위안부’ 문제에 대한 법적 책임을 인정하고 공식적인 사과와 배상할 것을 일본정부에 권고하였고 또 역사적 진실을 반영하기 위해 교과서를 수정하고 가해자를 처벌할 것을 촉구했다.
레디카 쿠마라스와미 보고서에 기록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 여성들의 요구사항
다음은 유엔특별보고관의 특별보고서에 기록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 여성들의 요구 사항이다.(a) 생존해 있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 여성에 대해 군‘위안부’로서 감수해야 했던 고통에 대해 개별적으로 사과할 것. … 그 외에도, 대다수 일본군 ‘위안부’ 피해 여성들은 일본 무라야마[村山富市] 총리의 사과 및 담화에 대해 일본 국회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진정성이 없다고 생각한다.
(b) 대략 20만 명의 한국 여성이 일본군의 성노예로 동원되었고, 일본 제국주의 군대의 편의를 위해 설치된 위안소가 일본정부와 군 당국의 인지아래 체계적이고 강제적인 방식으로 운영되었다는 것을 인정할 것
(c) 성노예를 목적으로 한 여성들의 체계적인 동원은 반인간적인 범죄이자, 국제 인권법에 대한 위배이고, 평화에 대한 범죄행위일 뿐 아니라 노예 범죄, 인신매매와 강제성을 띤 성매매였음을 인정할 것
(d) 이러한 범죄행위에 대한 도덕 및 법률적 책임을 다음과 같이 수용할 것
(e) 생존한 ‘위안부’ 피해 여성들에게 일본정부의 재원으로 배상할 것. 일본의 지방 법원은 민사 소송을 통한 배상으로 ‘위안부’ 피해 여성 개개인의 요구사항이 이루어지도록 특별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제의했다.
그 외에도, 일본군 ‘위안부’ 피해 여성들은 일본정부가 다음과 같은 조치들을 취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a) 제2차 세계대전 시기에 일본군의 성노예 문제라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철저한 조사, 특히 일본 기록문서보존소와 일본 내에 현재까지 남아있는 일본군 성노예 문제에 대한 모든 정부 문건 및 공적 자료들을 공개할 것
(b) 일본 역사서 및 교육 교과목에 조사를 통해 드러난 역사적 사실들을 반영할 것
(c) 일본 국내법하에서, 일본군의 성노예 모집과 성노예 제도에 관련된 모든 가해자를 상대로 신원 확인 및 기소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