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토가 상서로움을 처음 [가져오니], 건무 연간부터 인을 품었다.
백토가 상서로움을 처음 [가져오니], 건무 연간부터 인을 품었다.
『후한서』에 다음과 같이 전한다. “광무제가 중흥하였을 때, 석광을 교지[태수]로 삼고, 임연을 구진 [태]수로 [삼았다]주 001. 이때 그들에게 농사짓는 법을 가르치고 관리주 002를 제정하였으며, 처음으로 매빙을 설치하여, 비로소 [예에 맞게] 혼인하는 것을 알게 하였으며, 학교를 건립하여 그들에게 예와 의를 가르쳤다. 건무 12년(36), 구진[군] 요외의 만 장유가 종인을 이끌고 [황제의] 덕화를 사모하여 내속해오니, 봉하여 귀한리군으로 삼았다. 이듬해(37), 남월 요외의 만이가 백토를 바쳤다.”
• 참고
『後漢書』 卷86 南蠻西南夷列傳76 光武中興 錫光爲交阯 任延守九眞 於是教其耕稼 制爲冠履 初設媒娉 始知姻娶 建立學校 導之禮義 建武十二年 九眞徼外蠻里張游 率種人慕化內屬 封爲歸漢里君 明年 南越徼外蠻夷獻白雉白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