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제국대학에 기증된 경위에 대해서
우선 교토제국대학이 야마다 세이지로에게서 평양 주변에서 채집한 고구려 기와를 기증받은 경위를 정리해 본다. 교토대학에 남아 있는 『표본수리지(標本受理誌)』에 따르면, 이번에 정리한 고구려 기와는 1916년 11월 5일 야마다 세이지로가 기증한 유물로 등록되어 있다. 당시 등록된 내용은 아래와 같다.
등록번호 1283 朝鮮土城주 001發見樂浪瓦破片
등록번호 1284 同 塼
등록번호 1285 高句麗瓦(破片)
등록번호 1286 平壤發見瓦(破片)
등록번호 1287 酒岩주 002發見瓦(同)
등록번호 1288 蘆梅洞주 003發見瓦
등록번호 1289 大城山附近주 004發見瓦
등록번호 1284 同 塼
등록번호 1285 高句麗瓦(破片)
등록번호 1286 平壤發見瓦(破片)
등록번호 1287 酒岩주 002發見瓦(同)
등록번호 1288 蘆梅洞주 003發見瓦
등록번호 1289 大城山附近주 004發見瓦
이 유물들 가운데 분명히 낙랑 유물이라고 판단되는 등록번호 1283, 1284 유물은 이번 정리 대상에서 제외하였다.주 005또 야마다 기증 기와에는 대성산(大城山) 부근 채집 기와(등록번호 1289)와 같이 고구려 기와가 아닐 가능성이 논의되어 있는 자료와 현재의 연구상황으로 보아 통일신라시대 이후의 기와라고 생각되는 자료도 적지 않다.주 006이들 자료에 관해서는 고구려 기와와 함께 보고하면서, 그 시기에 대해 필자들의 의견을 밝히고자 한다.
야마다 기증 기와에는 교토대학에 기증되었을 때의 등록번호가 기입되어 있다. 또 출토지가 밝혀져 있는 등록번호 1287·1288·1289 기와에는 출토지도 기입되어 있다. 이들 문자와 별도로 주자(朱字)가 기입된 예도 있다. 1287 기와에는 ‘酒’, ‘酒西’, 1288 기와에는 ‘芦’주 007가 기입되어 있기 때문에, 이들 글자가 주암리(酒岩里)와 노매리(蘆梅里)의 약호임을 알 수 있다. 1286 기와에도 같은 글자가 기입된 유물이 있어, 이들은 원래 1287과 1288에 등록되어야 할 유물이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이외에 ‘助王’, ‘江’ ‘, 鐵’, ‘永’, ‘岸’, ‘崇’자도 지명의 약호일 가능성이 있다. ‘南’, ‘北’, ‘西’, ‘西北’자는 지명의 약호인지, 어느 유적 내의 채집 지점을 표시한 것인지 알 수 없다. 따라서 이번 정리에서는 출토지 별로 정리하지 않고, 기입된 내용을 관찰표에 표시하였다.
기증자인 야마다 세이지로에 대해서는 세키노 다다시[關野貞]와 후지타 료사쿠[藤田亮策]가 간략히 경력을 소개한 적이 있다(關野外, 1927; 藤田, 1932). 이들 글에 따르면, 야마다는 평양에 살았던 일본인이며, 세키노 다다시가 낙랑토성을 조사한 것을 계기로 1913년경부터 대동강면 일대의 유적을 답사하면서 낙랑과 고구려를 중심으로 하는 수천 점의 유물을 수집했다고 한다. 이들 자료 가운데 낙랑과 고구려 기와 수백 점은 1916년에 총독부박물관, 도쿄제국대학, 교토제국대학, 평양 진열소에 기증되었다(關野外, 1927, 5~6). 이번에 보고할 고구려 기와는 당시 교토제국대학에 기증된 것으로 판단된다.주 008그 후 당시 평양 복심법원 검사장이었던 세키구치 나카바[關口半]주 009의 알선으로 1922년과 1923년에 그 수집품의 대부분이 총독부박물관 소장품이 되었다. 이들 수집품 목록(榧本, 1932) 가운데 고구려 기와를 열거하면 아래와 같다.
이상의 목록을 집계해 보면, 기증된 고구려 기와의 총수는 1,515점이며, 이들 가운데 완형의 수막새가 115점, 1/2이상의 파손품이 136점, 1/2정도 남아 있는 파손품이 171점, 1/2이하의 파손품이 809점이다. 1929년에 간행된 『고구려시대의 유적[高句麗時代之遺蹟, 도판 상책]』에 게재된 수막새 239점 가운데, 총독부박물관 소장품은 137점이다. 이들의 대부분은 완형품 혹은 1/2이상 남아 있다. 구체적인 대응관계는 알 수 없으나, 기와의 기증시기와 책의 간행시기를 생각해 보면, 이 책에 게재된 고구려 기와 가운데 야마다 기증품이 많이 포함되었을 가능성이 높을 것이라 추측할 수 있다.
반면 교토대학에 기증된 고구려 수막새는 218점으로, 이들 가운데 1/2정도 혹은 그 이상 남아 있는 기와는 15점(약 7%)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수막새 1331점 가운데 1/2 정도 혹은 그 이상 남아 있는 것이 총 422점(약 32%)인 총독부박물관 기증분과 비교할 때, 교토대학 기증 기와는 야마다가 수집한 기와 가운데 주로 작은 파편 자료가 선택된 것으로 생각된다. 또 이번 정리 결과 야마다 기증 기와에는 다양한 문양의 고구려 수막새가 골고루 몇 점씩 포함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교토대학 소장 야마다 기증 기와는 야마다가 채집한 것을 그대로 받은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그 크기와 종류를 선택한 것이 기증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된다.
이상과 같은 기증 경위를 통해 떠올려지는 것은 1913년에 세키노 다다시와 이마니시 류[今西龍]가 집안을 조사했을 때 채집된 와전류의 일부가 도쿄제국대학, 도쿄제실박물관, 교토제국대학으로 기증된 사실이다(吉井, 2001). 1910년대의 낙랑과 고구려연구는 세키노 다다시를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1913년의 경우와 같이 1916년에 야마다 채집 기와가 기증될 때에도 세키노의 의지가 반영되었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을 것이다. 앞으로 관계 자료의 수집과 검토가 필요한 과제이다. 또 이상과 같은 추측이 타당하다면 교토대학의 야마다 기증 기와의 분석이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을 것이라 생각되는 야마다 기증 고구려 기와를 분석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판단된다.
야마다 기증 기와에는 교토대학에 기증되었을 때의 등록번호가 기입되어 있다. 또 출토지가 밝혀져 있는 등록번호 1287·1288·1289 기와에는 출토지도 기입되어 있다. 이들 문자와 별도로 주자(朱字)가 기입된 예도 있다. 1287 기와에는 ‘酒’, ‘酒西’, 1288 기와에는 ‘芦’주 007가 기입되어 있기 때문에, 이들 글자가 주암리(酒岩里)와 노매리(蘆梅里)의 약호임을 알 수 있다. 1286 기와에도 같은 글자가 기입된 유물이 있어, 이들은 원래 1287과 1288에 등록되어야 할 유물이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이외에 ‘助王’, ‘江’ ‘, 鐵’, ‘永’, ‘岸’, ‘崇’자도 지명의 약호일 가능성이 있다. ‘南’, ‘北’, ‘西’, ‘西北’자는 지명의 약호인지, 어느 유적 내의 채집 지점을 표시한 것인지 알 수 없다. 따라서 이번 정리에서는 출토지 별로 정리하지 않고, 기입된 내용을 관찰표에 표시하였다.
기증자인 야마다 세이지로에 대해서는 세키노 다다시[關野貞]와 후지타 료사쿠[藤田亮策]가 간략히 경력을 소개한 적이 있다(關野外, 1927; 藤田, 1932). 이들 글에 따르면, 야마다는 평양에 살았던 일본인이며, 세키노 다다시가 낙랑토성을 조사한 것을 계기로 1913년경부터 대동강면 일대의 유적을 답사하면서 낙랑과 고구려를 중심으로 하는 수천 점의 유물을 수집했다고 한다. 이들 자료 가운데 낙랑과 고구려 기와 수백 점은 1916년에 총독부박물관, 도쿄제국대학, 교토제국대학, 평양 진열소에 기증되었다(關野外, 1927, 5~6). 이번에 보고할 고구려 기와는 당시 교토제국대학에 기증된 것으로 판단된다.주 008그 후 당시 평양 복심법원 검사장이었던 세키구치 나카바[關口半]주 009의 알선으로 1922년과 1923년에 그 수집품의 대부분이 총독부박물관 소장품이 되었다. 이들 수집품 목록(榧本, 1932) 가운데 고구려 기와를 열거하면 아래와 같다.
8464 | 고구려 와당 | 完形 | 평안남도 평양부내 | 64 |
8465 | 고구려 와당 | 破損品(1/2 이상) | 평안남도 평양부내 | 47 |
8466 | 고구려 와당 | 파손품(1/2 정도) | 평안남도 평양부내 | 67 |
8467 | 고구려 와당 | 파손품(1/2 이하) | 평안남도 평양부내 | 182 |
8468 | 고구려 菴주 010付 | 완형 | 평안남도 평양부내 | 3 |
8469 | 고구려 菴瓦 | 완형 | 평안남도 평양부내 | 1 |
8470 | 고구려 平瓦 | 殘片 | 평안남도 평양부내 | 90 |
8471 | 고구려 平瓦 | 완형 | 평안남도 평양부내 | 1 |
8472 | 고구려 悉瓦 | 파손품(1/2이상) | 평안남도 평양부내 | 2 |
8473 | 고구려 平瓦 | 파손품(1/2이하) | 평안남도 평양부내 | 5 |
8474 | 고구려 悉尾 | 파손품(1/2정도) | 평안남도 철교 부군 | 2 |
8475 | 고구려 와당 | 완형 | 평안남도 平川里 | 5 |
8476 | 고구려 와당 | 파손품(1/2이상) | 평안남도 平川里 | 13 |
8477 | 고구려 와당 | 파손품(1/2정도) | 평안남도 平川里 | 4 |
8478 | 고구려 와당 | 파손품(1/2이하) | 평안남도 平川里 | 6 |
8479 | 고구려 와당 | 완형 | 평안남도 大同郡林原面淸岩里 | 7 |
8480 | 고구려 와당 | 파손품(1/2이상) | 평안남도 大同郡林原面淸岩里 | 4 |
8481 | 고구려 와당 | 파손품(1/2정도) | 평안남도 大同郡林原面淸岩里 | 9 |
8482 | 고구려 와당 | 파손품(1/2이하) | 평안남도 大同郡林原面淸岩里 | 35 |
8483 | 고구려 와당 | 완형 | 평안남도 大同江面猿綠里주 011 | 3 |
8484 | 고구려 와당 | 파손품(1/2정도) | 평안남도 大同江面猿綠里 | 1 |
8485 | 고구려 와당 | 파손품(1/2이하) | 평안남도 大同江面猿綠里 | 14 |
8486 | 고구려 悉瓦 | 파손품(1/2이상) | 평안남도 大同江面猿綠里 | 1 |
8487 | 고구려 와당 | 완형 | 평안남도 大同江面土城부근 | 3 |
8488 | 고구려 와당 | 파손품(1/2이상) | 평안남도 大同江面土城부근 | 2 |
8489 | 고구려 와당 | 파손품(1/2정도) | 평안남도 大同江面土城부근 | 14 |
8490 | 고구려 와당 | 파손품(1/2이하) | 평안남도 大同江面土城부근 | 102 |
8491 | 고구려 와당 | 파손품(1/2이상) | 평안남도 林原面北四里安鶴宮址 | 3 |
8492 | 고구려 와당 | 파손품(1/2정도) | 평안남도 林原面北四里安鶴宮址 | 8 |
8493 | 고구려 와당 | 파손품(1/2이하) | 평안남도 林原面北四里安鶴宮址 | 34 |
8494 | 고구려 華瓦 | 파손품(1/2이상) | 평안남도 林原面北四里安鶴宮址 | 40 |
8495 | 고구려 와당 | 완형 | 출토지 불명 | 1 |
8496 | 고구려 와당 | 파손품(1/2이상) | 출토지 불명 | 3 |
8497 | 고구려 와당 | 파손품(1/2이하) | 출토지 불명 | 3 |
8498 | 문자가 있는 平瓦殘片 | ‘上’字, 型이 있음 | 평안남도 대동강면 토성리 | 4 |
8499 | 문자가 있는 평와 잔편 | ‘上’字, 음각 | 평안남도 대동강면 토성리 | 1 |
8500 | 문자가 있는 평와 잔편 | ‘念云云’자, 양각 | 평안남도 대동강면 토성리 | 1 |
8501 | 문자가 있는 평와 잔편 | ‘人云云’자, 양각 | 평안남도 대동강면 토성리 | 1 |
8502 | 문자가 있는 평와 잔편 | ‘老’자, 음각 | 평안남도 대동강면 토성리 | 1 |
8503 | 문자가 있는 평와 잔편 | ‘元作云云’, 양각 | 평안남도 대동강면 토성리 | 1 |
8504 | 문자가 있는 평와 잔편 | ‘樂’자, 型 | 평안남도 대동강면 토성리 | 5 |
8505 | 문자가 있는 평와 잔편 | ‘西’, 양각 | 평안남도 대동강면 토성리 | 1 |
8506 | 문자가 있는 평와 잔편 | ‘官’, 양각 | 평안남도 대동강면 토성리 | 18 |
8507 | 문자가 있는 평와 잔편 | 문자 불명 | 평안남도 대동강면 토성리 | 3 |
8508 | 문자가 있는 평와 잔편 | ‘申’, 음각 | 평안남도 대동강면 토성리 | 1 |
8522 | 고구려 와당 | 완형 | 평안남도 평양부내 | 24 |
8523 | 고구려 와당 | 파손품(1/2이상) | 평안남도 평양부내 | 39 |
8524 | 고구려 와당 | 파손품(1/2정도) | 평안남도 평양부내 | 39 |
8525 | 고구려 와당 | 파손품(1/2이하) | 평안남도 평양부내 | 91 |
8526 | 고구려 半瓦 | 파손품(1/2정도) | 평안남도 평양부내 | 2 |
8527 | 고구려 와당 | 완형 | 평안남도 平川里 | 4 |
8528 | 고구려 와당 | 파손품(1/2이상) | 평안남도 平川里 | 9 |
8529 | 고구려 와당 | 파손품(1/2정도) | 평안남도 平川里 | 3 |
8530 | 고구려 와당 | 파손품(1/2이하) | 평안남도 平川里 | 40 |
8531 | 고구려 와당 | 완형 | 평안남도 大同郡林原面淸巖里 | 1 |
8532 | 고구려 와당 | 파손품(1/2이상 | 평안남도 大同郡林原面淸巖里 | 8 |
8533 | 고구려 와당 | 파손품(1/2정도 | 평안남도 大同郡林原面淸巖里 | 4 |
8534 | 고구려 와당 | 파손품(1/2이하) | 평안남도 大同郡林原面淸巖里 | 64 |
8535 | 고구려 와당 | 파손품(1/2이상) | 평안남도 大同郡大同江面土城부근 | 8 |
8536 | 고구려 와당 | 파손품(1/2정도) | 평안남도 大同郡大同江面土城부근 | 18 |
8537 | 고구려 와당 | 파손품(1/2이하) | 평안남도 大同郡大同江面土城부근 | 198 |
8538 | 고구려 와당 | 파손품(1/2정도) | 평안남도 林原面北四里安鶴宮址 | 4 |
8539 | 고구려 와당 | 파손품(1/2이하) | 평안남도 林原面北四里安鶴宮址 | 40 |
8540 | 고구려 唐草瓦 | 파손품(1/2이하) | 평안남도 林原面北四里安鶴宮址 | 65 |
8541 | 명문 平瓦잔편 | ‘官’양각 | 평안남도 大同江面土城里 | 40 |
반면 교토대학에 기증된 고구려 수막새는 218점으로, 이들 가운데 1/2정도 혹은 그 이상 남아 있는 기와는 15점(약 7%)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수막새 1331점 가운데 1/2 정도 혹은 그 이상 남아 있는 것이 총 422점(약 32%)인 총독부박물관 기증분과 비교할 때, 교토대학 기증 기와는 야마다가 수집한 기와 가운데 주로 작은 파편 자료가 선택된 것으로 생각된다. 또 이번 정리 결과 야마다 기증 기와에는 다양한 문양의 고구려 수막새가 골고루 몇 점씩 포함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교토대학 소장 야마다 기증 기와는 야마다가 채집한 것을 그대로 받은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그 크기와 종류를 선택한 것이 기증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된다.
이상과 같은 기증 경위를 통해 떠올려지는 것은 1913년에 세키노 다다시와 이마니시 류[今西龍]가 집안을 조사했을 때 채집된 와전류의 일부가 도쿄제국대학, 도쿄제실박물관, 교토제국대학으로 기증된 사실이다(吉井, 2001). 1910년대의 낙랑과 고구려연구는 세키노 다다시를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1913년의 경우와 같이 1916년에 야마다 채집 기와가 기증될 때에도 세키노의 의지가 반영되었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을 것이다. 앞으로 관계 자료의 수집과 검토가 필요한 과제이다. 또 이상과 같은 추측이 타당하다면 교토대학의 야마다 기증 기와의 분석이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을 것이라 생각되는 야마다 기증 고구려 기와를 분석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판단된다.
- 각주 001)
- 각주 002)
- 각주 003)
- 각주 004)
- 각주 005)
- 각주 006)
- 각주 007)
- 각주 008)
- 각주 009)
- 각주 010)
- 각주 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