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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고대문화유산

걸망성

契亡城
  • 저필자
    이규호(동국대학교)
  • 시대
    고구려/고려
  • 위치
  • 원소장처
    평안북도 피현군 당후리
  • 시대
    고구려
  • 유형
입지
평안북도 피현군 당후리 쏙새산에 위치한 석축 산성이다. 성의 동, 서, 남 세면은 삼교천이 흐르고 있어 자연 해자의 역할을 하고 있다. 북쪽에 위치한 백마산성과 함께 요동과 평양을 잇는 서해안 남북 교통의 요충지에 위치하고 있다.
유적개관
산성은 「고려사(高麗史)」에 기록된 흥화진성(興化鎭城)으로도 알려져 있다. 1910년대 池內宏이 성을 답사하였으며, 북한 학계에서도 80년대 초까지 여러 차례 현지 조사를 실시하였다. 이를 통해 걸망성은 고구려 시기에 처음 축조되었고, 995년 서희가 여진인들을 축출하고 해당 성을 개축하여 활용한 것으로 파악하였다. 걸망성은 성벽의 전체 둘레가 2,840m이며, 동쪽 2개의 골짜기를 끼고 성을 축조한 포곡식 산성이다. 쐐기형 성돌을 이용하여, 능선에서는 내탁식으로, 평지에서는 협축식으로 성벽을 축조하였다. 현재 성벽은 대부분 허물어져 2~3m 높이만 남아있다. 성문은 총 7개가 확인되고 있는데, 동문이 정문이다. 동문지의 너비는 약 3.5m로, 옹성을 설치하였다. 서문 및 북문 모두 옹성구조이나 시기는 명확하지 않다. 서문지에서는 문확돌도 확인되고 있다. 동문 밖으로는 반원형으로 추가 성벽(겹성)이 축조되어 있다. 치는 길이 8~10m, 너비 6~8m 규모로, 7개가 확인되었다. 장대는 모두 5개가 확인되었다.
출토유물
* 기와편
해설
평안북도 피현군 당후리 쏙새산에 위치한 석축 산성이다. 성의 동, 서, 남 세면은 삼교천이 흐르고 있어 자연 해자의 역할을 하고 있다. 북쪽에 위치한 백마산성과 함께 요동과 평양을 잇는 서해안 남북 교통의 요충지에 위치하고 있다.
『고려사(高麗史)』에 기록된 흥화진성(興化鎭城)으로도 알려져 있다. 1910년대 池內宏이 성을 답사하였으며, 북한 학계에서도 80년대 초까지 여러 차례 현지 조사를 실시하였다. 이를 통해 걸망성은 고구려 시기에 처음 축조되었고, 995년 서희가 여진인들을 축출하고 해당 성을 개축하여 활용한 것으로 파악하였다.
산성은 동쪽 2개의 골짜기를 끼고 성을 축조한 포곡식 산성이다. 남북이 긴 장방형으로 둘레는 2840m이다. 성벽은 쐐기형 성돌을 이용하여 외면축조방식을 기본으로 하면서 평지부분에는 양면축조방식을 사용하였다. 현재 성벽은 대부분 허물어져 2~3m 높이만 남아있다. 성문은 총 7개가 확인되고 있는데, 동문이 정문이다. 동문지의 너비는 약 3.5m로, 옹성(甕城)이 설치되어 있고 밖으로는 반원형으로 반경 105m의 추가 성벽(겹성)이 축조되어 있다. 서문 및 북문 역시 옹성구조이다. 남문은 바깥의 가파른 지형으로 인해 옹성이 없다.
치는 성의 각 모서리에 1개, 북벽에 2개, 서벽에 1개 총 7개가 확인되었는데 길이 8~10m, 너비 6~8m 규모이다. 모서리의 치 위에는 각루(角樓)를 지었던 흔적이 보인다.
장대는 사방에 각 1개, 만세봉에 1개가 있는데 이 중 만세봉에 있는 장대는 고려시기에 거란을 물리치고 세운 것이라 전한다. 2곳의 수문은 삼교천으로 물을 흘려보내는 기능을 한다. 성 안에서는 여러 건물지와 함께 고구려의 붉은 기와가 발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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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걸망성 자료번호 : isea.d_0002_0040_0040_0080_0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