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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고대문화유산

만천리고분

萬泉里古墳
  • 저필자
    표영관
  • 시대
    삼국시대
  • 위치
  • 원소장처
    강원도 춘천시 동면 만천3리 산15-16
  • 시대
    고구려
  • 유형
    무덤
입지
춘천시 동면 만천 3리의 뒷모탱이 마을의 뒷편 야산의 구릉 하단부에 위치한다.
유적개관
1995년 한림대학교박물관에 의해 발굴조사 된 석실분으로, 2기가 확인되었다. 연도는 우편재 되었으며, 말각조정의 천정구조를 가지고 있다.
참고문헌
「춘천시 동면 만천리고분 발굴보고서」
해설
만천 3리 뒷모퉁이 마을 뒤편 야산의 구릉에서 발견되어 2000년에 한림대학교 박물관이 발굴조사를 시행하였다. 조사 결과 삼국시대의 석실분으로 추정되는 고분 2기를 확인하였다.
조사당시 이미 2기의 고분이 모두 도굴되어 석실의 바닥면까지 노출된 상태였다. 인근에서 깨어진 천장돌이 발견된 것으로 보아 도굴당시에 옮겨진 것으로 추정하였다. 도굴과정에서 두 기의 무덤이 모두 심하게 파손되었고 유물은 전혀 발견하지 못하였다.
두 무덤은 동서로 나란히 위치해 있고 모두 입구에서 석실에 이르는 연도를 가진 횡혈식(橫穴式) 석실이다.
서쪽 무덤은 석실의 크기가 128cm, 159cm이며 높이는 파괴되어 알 수 없다. 연도(羨道)는 길이가 156m, 폭이 68m이다. 동쪽 무덤은 석실의 크기가 110cm, 160cm이며 높이는 80cm 정도가 남아있다. 연도는 80cm 폭으로 약 200cm가 이어져 있다.
두 무덤 모두 축조 당시 회(灰)를 발라 마무리를 한 흔적이 확인되었으나, 도포 범위나 두께 등은 정확히 알 수 없다.
두 묘 모두 석실 벽 상부에 모서리각을 죽인 것이 확인되었다. 고구려 묘제의 대표적 특징인 모줄임구조 천장으로 볼 수 있는데, 이를 모줄임구조라기보다는 단순히 천장에 판석을 얻기 위한 받침으로 사용한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만천리 고분과 유사한 형태의 고분이 서면 신매리, 방동리, 신북읍 천전리에서도 발견된 바 있어서 이들과의 상관관계도 주목된다. 다만 방동리 고분과 신매리 고분은 모줄임구조 천장이 거의 확실하게 확인되고, 더욱이 방동리 고분에서는 고구려계 토기 파편이 출토되어 이들의 묘제가 고구려계통이라 추정할 수 있지만, 만천리 고분은 이렇다 할 증거가 없는 실정이다.
반면 동일한 구조의 무덤이 나란히 조성되었다는 점은 방동리 고분과 동일한 특징이며, 대체로 6세기를 전후한 시점의 고구려, 혹은 삼국시대의 묘제를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임에는 틀림없다.
고분이 위치한 춘천 지역은 고구려가 남진을 본격화 하던 5세기 무렵 남진의 교두보 지역 중 하나였다. 북한강과 소양강이 합류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때문에 고구려의 진출과 함께 남하 정착한 고구려인의 흔적으로 볼 개연성이 크다.
한편 가평, 춘천지역은 이미 고구려의 영역이었는데, 6세기 중엽 무렵 신라가 죽령을 넘어서 한강유역으로 진출하면서 이후로 신라의 영역이 되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또한 묘제는 갑자기 바뀌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 지역에서 고구려 계통의 묘제가 나타나는 것은 당연하며, 특히 세력가들은 이후로도 한동안 고구려 묘제를 사용했을 것이라는 추정을 하기도 한다.
만천리 고분은 인근 방동리 고분, 신매리 고분, 천전리 고분 등과 함께 고구려의 영역과 남진정책과 춘천 지역의 주인공을 밝힐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역사자료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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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천리고분 자료번호 : isea.d_0002_0030_0010_0020_00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