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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고대문화유산

쌍립산성

雙砬山城
  • 저필자
    표영관
  • 시대
    고구려/진-당(晋~唐)
  • 위치
  • 원소장처
    요녕성 무순시 청원현 영액문진 장춘둔촌(中國 遼寧省 撫順市 淸原滿族自治縣 英額門鎭 長春屯村)
  • 시대
    고구려
  • 유형
규모
남북: 100m, 동서: 220m
입지
무순시 청원현 영액문진 장춘둔촌 서쪽 1.5km 떨어진 산에 위치
유적개관
동서 길이 220m, 남북 폭 100m인 산성으로, 성벽은 토석혼축이다. 성벽의 잔고는 2.5m, 기저부 폭은 4~6m이다. 서문과 남문이 있으며, 성 내의 서부 중앙에는 건물지들이 확인된다.
유물개관
철기(삽, 화살촉 등), 도금 장식 등
참고문헌
遼寧文物 1982-3
해설
쌍립산성은 영액문산성(英額門山城), 장춘둔산성(長春屯山城), 산성자산성(山城子山城), 성자산산성(城子山山城) 등으로 불리고 있다.
청원현 영액문진 동쪽 장춘둔촌 서쪽 1.5㎞ 지점의 성자산(산성자산) 위에 위치한다. 산 정상부에서는 동쪽과 남쪽, 북쪽으로 먼 곳까지 조망이 가능하다.
혼하(渾河)의 상류에 해당하며 혼하를 따라 양쪽으로 용강산맥(龍崗山脈)과 합달령산맥(哈達嶺山脈)이 동서 방향으로 펼쳐져있는데, 두 산줄기의 골짜기를 따라 형성된 좁다란 하곡평지에 위치해 있다.
1963년 청원현 영액문공사(淸原縣英額門公社)가 변문(邊門)유적 조사시 장춘둔대대(長春屯大隊)를 방문하고 현지주민의 제보로 산성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후 1982년 요녕성 박물관에서 조사를 통해 실측을 하고 유물을 수습하였다. 현재까지 개인자격의 조사 보고와 학술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산성자산은 성 정상부는 비교적 평탄하지만, 동, 남, 북 세면은 가파른 절벽지형이다. 성벽은 자연지형을 이용하여 절벽의 가장자리를 따라 축조하였다. 성벽을 흙으로 쌓은 토축으로 보는 견해와 돌과 흙을 함께 이용한 토석혼축이라는 견해로 나뉜다. 이렇듯 성격규명이 곤란한 이유는 잔존 성벽의 상태가 좋지 않을 뿐 아니라, 발굴조사와 이에 대한 보고가 미진해서이다.
성의 둘레에 대해서도 동서 220m, 남북 약 100m로 보는 견해, 500m로 보는 견해, 600여 m로 보는 견해 등 편차가 크다.
잔존한 성벽의 최대 높이는 2.5m이며, 성벽의 너비는 4-6m 두께로 조사되었다. 남쪽과 서쪽에 문터가, 서쪽 문 근처에는 숨겨진 작은 문이 확인되었다. 두 성문터는 성벽보다 안쪽에 위치한 옹성(甕城)구조이다.
산성의 남쪽에는 현재 과수원으로 사용되는데, 많은 철기와 적은 수의 벽돌, 기와 등이 일괄적으로 출토되었다. 철기들은 그 형태가 무순(撫順) 고이산성(古爾山城)에서 출토된 유물과 유사하다. 고이산성은 고구려의 신성(新城)으로 비정되기도 하는 유적으로 쌍립산성 역시 고구려의 방어성 중의 하나로 추정되고 있다.
산성의 축조시기에 대해서는 견해가 분분한데, 진(晉) 축조설, 고구려 초기 축조설, 고구려 말기 축조설, 진대에 축조되어 당(唐)시기에 사용되었다는 설 등 견해가 다양하다. 다만 성의 지정학적 입지와 형태 등을 볼 때 고구려의 산성으로 추정하는 학자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쌍립산성은 요하(遼河)의 상류를 거슬러 혼하(渾河) 방면으로 넘어오는 적군을 조망하고 방어하는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즉 고구려 국내성(國內城)으로 들어가는 두 개의 길 중 북로에 위치하여 방어기능을 한 것으로 보이는데, 성의 규모가 작아, 인근 대형 방어시설인 무순 고이산성 혹은 유하(柳河) 나통산성(羅通山城)을 보조하는 위성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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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쌍립산성 자료번호 : isea.d_0002_0010_0090_0040_0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