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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대문궤

간사한 화친의 논의를 끊고 왜적을 초멸(剿滅)하기를 청하는 조선 의정부(議政府)의 자문(咨文)

72. 請絶和事速行征進呈文
  • 발신자
    의정부
  • 발송일
    1593년 3월 24일(음)(만력 21년 3월 24일)
발신: 의정부
사유: 화친의 논의를 끊고 속히 나가 진격해 정벌해 주십시오.
 
조선국 의정부 좌의정 윤두수 등 삼가 목욕재계하고 백번 절하며 제독 노야태위에게 서신을 올립니다. 삼가 생각해 보건대 군대가 오래 머물자 지치니 적이 장기적으로 간사한 일을 펼치려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기세가 피폐하면 다시 앞일을 도모하기란 쉽지 않고 간사함이 펼쳐지면 흉측한 계책이 더욱 방자해지는 것 역시 형세 상 그러합니다. 지금 보건대 적이 주둔하며 떠나지 않고 간사한 소리로 화친을 청하니 이것이 과연 대군을 두려워해서겠습니까? 아니면 첨병을 기다리는 것이겠습니까? 대군을 두려워하는 것이면 저들의 피폐한 상황을 이용하면 될 것이고 첨병을 기다리는 것이면 마땅히 빨리 공격해야 할 것입니다. 삼가 생각해 보면 대군의 병마는 죽거나 병으로 넘어진 자를 제외하고 생존한 수가 얼마인지 모르겠습니다만 군사가 나온 지 이미 오래됐기에 처음 왔을 때처럼 성대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노야께서 후병을 기다리는 것도 큰 계획입니다. 다만 생각하건대 저 적이 평양에서 놀라 달아난 뒤 여기저기 오랫동안 흩어졌습니다. 저들이 아직 경성을 점거하고 있는 이유는 왕사가 후퇴하여 머무르는 것을 보고 한숨 호흡 간에 엿볼 틈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지금 대군이 몰래 다시 진격한다면 저들은 반드시 후속 부대도 또한 이르렀다고 생각하면서 이 사이에 허다한 기모를 내겠지만 형세 상 장차 허황되고 오락가락해서 스스로 넘어질 것입니다. 하물며 유정 등이 통솔한 포수와 계주와 보주에서 조발된 군마가 강을 건너오고 것이 또한 머지않습니다. 그리고 소방의 경기도 지역을 둘러싼 관병과 의병이 비록 참으로 피폐하고 약하나 협조하고자 함이 유독 팔공산의 초목엔들 못 미치겠습니까.주 001
각주 001)
전진의 부견이 동진을 치고자 군대를 일으켰다가 패전하자 (동생) 부용과 함께 적진을 보며 놀라서 한 말에서 유래했다. 『晉書』 卷114, 苻堅載記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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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참으로 다시 오기 힘들고 잃으면 안 되는 기회인 것입니다. 비직(卑職) 등이 들은 듯한데 영중(營中)에 화의(和議)가 성행하되 감히 처음부터 이를 위해 사리를 따지지 못했다고 합니다. 송 시랑은 큰 계획과 세상을 안정시킬 이치를 지녔고, 노야는 지팡이와 부월을 받았으니 한 가지 꾀를 부리려는 책사의 운운하는 바를 결코 행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전에 배신 한응인이 국왕에게 치계한 것을 보니, 노야가 써서 배신에게 보여 준 것도 (화의를) 받아들이려는 일단의 의사가 있었습니다. 비직(卑職) 등은 참으로 이루 다 놀라 서로 바라보며 기가 끊어지는 듯한 느낌을 이길 수 없었습니다. 소방은 저 적과 맹세컨대 같은 하늘 아래 사는 것을 용납할 수 없습니다. 만약 화친을 말하는 자가 있으면 저희는 산초나무 독초를 찧어 스스로 죽는 길을 따를 뿐일 것입니다.주 002
각주 002)
이 고사는 후한 영제(재위 168~189)의 친모인 동태후 사망 후 환제(재위 148~168)의 묘정에 위패를 배향하는 일을 두고 환관과 대신 간 갈등에서 유래했다. 동태후 부친인 동무는 진번과 함께 환관 세력을 제거하고자 하다가 오히려 환관 조충이 거짓으로 조서를 꾸며 동무와 진번을 살해했다. 조충은 동무의 딸인 동태후가 사망하자 동태후의 위패를 귀인으로 격하시키고자 했다. 영제는 이 사안에 대해서 조정의 의견을 모을 것을 조충에게 명했는데 와병으로 궐석한 태위 이함시가 산초나무로 찧은 독초를 마시고 자결하면서 아내에게 만약 동태후가 배향되지 않으면 살아 돌아오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 『後漢書』, 烈傳, 卷56, 張王种陳列傳 第46, 陳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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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야를 위해서도 헤아려 보면 유리하지 않습니다.주 003
각주 003)
『오봉집』에는 ‘亦未見其和也’가 ‘亦未見其利也’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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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으로 화친하는 척 하면서 뒤로 싸우는 것이 이 적들의 원래 모습입니다. 오늘 이마가 땅에 닿도록 절하다가 내일 창을 돌려잡을 것이니 저들에게 있어서는 먼저 기회를 틈타는 것이요, 우리에게 있어서는 더욱 군색함이 더해지는 것이므로 따를 수 없는 이야기이니 황위를 손실함이 매우 크지 않습니까? 하물며 청정(加藤淸正)의 말이 반드시 공손하지는 않고 행장(小西行長)과도 협력하지 않고 있으니 이는 우리가 바로 진평(陳平)과 같은 기책을 펼칠 때인데 도리어 그들과 함께 화친을 살피십니다. 설령 대군이 뒤따라 부산에 이르러 저들이 바다를 뒤덮어 돌아가는 것을 본다고 해도 저들은 천병이 일시에 돌아가는 것을 보면 다시 포를 고치고 검을 담금질해서 바다를 덮어 올 것이고, 그런즉 그
화가 필시 발굽이 마르기 전에 미칠 것이니 마땅히 어떻게 적을 막겠습니까? 최근 여러 도의 척후를 통해서 들으니 경성에 주둔한 적이 동쪽으로 양주․포천․가평 등지를 약탈하고 강원도 춘천부 지역으로 침략해 들어가고 서쪽으로 금천․안산․남양․인천․수원․진위 등을 노략하면서 충청우도로 들이닥치고 있다고 합니다. 근근이 살아남은 백성 중 죽임을 당한 자가 어찌 끝이 있겠습니까? 적은 분명 서쪽으로는 화의에 기대면서 동쪽으로는 노략살상을 일삼고 있는 것입니다. 마치 작년 평양에서 50일 동안의 일과 같습니다. 작년에는 다행히 가을 때인지라 그 밭고랑에 쌓인 것을 거두고 수풀에 의지했기에, 혹 칼날을 면할 수 있었지만 올해는 그렇지 않으니 손이 묶인 채 도륙되기에 이르렀고 또한 농시를 거의 놓쳐 파종과 밭 갈기도 할 수 없으니 형세 상 거의 궤멸된 것에 가깝습니다. 삼가 배신이 의주에서 경략 군전으로부터 배겨 써 보내온 것을 살펴보니 성지가 간곡합니다. 다시 군대와 군량을 더함을 허락하시면서 왜적을 모조리 초멸하기를 힘쓰라는 것이었습니다. 황제의 뜻이 이와 같은데도 소방이 보전돼 살아나지 못한다면 바다 한 모퉁이의 생령은 한갓 덕에 감격하다 죽는 귀신이 될 것입니다. 풀을 묶어서라도 보은을 생각하며 죽겠다고 생각한 것이 하루 이틀이 아닙니다. 삼가 노야께서는 화의에 흔들리지 마시고 속히 대병을 진격시켜 여얼을 섬멸하기를 마쳐 황은을 다하십시오. 하릴없이 슬퍼 울고 급하게 간절히 바라는 지경이라 도독의 위엄에 누를 끼쳤으니 죽어 마땅한 죄입니다.
 
만력 21년 3월 24일.

  • 각주 001)
    전진의 부견이 동진을 치고자 군대를 일으켰다가 패전하자 (동생) 부용과 함께 적진을 보며 놀라서 한 말에서 유래했다. 『晉書』 卷114, 苻堅載記下. 바로가기
  • 각주 002)
    이 고사는 후한 영제(재위 168~189)의 친모인 동태후 사망 후 환제(재위 148~168)의 묘정에 위패를 배향하는 일을 두고 환관과 대신 간 갈등에서 유래했다. 동태후 부친인 동무는 진번과 함께 환관 세력을 제거하고자 하다가 오히려 환관 조충이 거짓으로 조서를 꾸며 동무와 진번을 살해했다. 조충은 동무의 딸인 동태후가 사망하자 동태후의 위패를 귀인으로 격하시키고자 했다. 영제는 이 사안에 대해서 조정의 의견을 모을 것을 조충에게 명했는데 와병으로 궐석한 태위 이함시가 산초나무로 찧은 독초를 마시고 자결하면서 아내에게 만약 동태후가 배향되지 않으면 살아 돌아오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 『後漢書』, 烈傳, 卷56, 張王种陳列傳 第46, 陳球. 바로가기
  • 각주 003)
    『오봉집』에는 ‘亦未見其和也’가 ‘亦未見其利也’로 되어 있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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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사한 화친의 논의를 끊고 왜적을 초멸(剿滅)하기를 청하는 조선 의정부(議政府)의 자문(咨文) 자료번호 : sdmg.k_0001_0720